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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오염 바닥 시트로 덮여… 멜트 다운 맞선 사투 흔적

입력 : 2014-03-11 19:25:18 수정 : 2014-03-11 22: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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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공개된 사고 최전선 현장 르포 미로 같은 계단과 복도를 가로질러 늘어져 있는 검은 소방호스와 원자로 수위계 옆에 깨알 같이 쓰인 냉각수 수위 기록,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낡은 핫라인….

세계를 놀라게 했던 2011년 3월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의 ‘최전선’이었던 1, 2호기 중앙제어실이 한국을 비롯해 해외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바닥은 분홍색 시트로 가려지고 내부도 정돈됐지만, 운전원들이 높은 방사선량과 폭발 위협 속에서 노심 용융(멜트 다운)에 맞섰던 사투의 흔적을 다 가릴 수는 없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던 지난 10일 오후 1시. 공동 취재단을 실은 버스가 후쿠시마 제1원전 1, 2호기 건물 옆에 멈추자 방사선량은 시간당 40마이크로시버트(μSv)를 기록했다. 1호기 앞으로 50m쯤 걸어가자 시간당 80μSv로 치솟았다. 이는 도쿄 신주쿠(0.035∼0.04μSv/h)의 약 2000배에 달하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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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쪽 입구를 통해 10m의 쓰나미가 덮친 서비스실을 거쳐 2층 중앙제어실로 향했다. 좁은 계단과 통로, 복도에는 사고 당시 사용된 검은 소방호스 등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2층 복도엔 제너럴 일렉트릭(GE)으로부터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받은 우수발전소 표창장이 아직 보란 듯이 걸려 있었다.

중앙 제어실은 2층 안쪽에 있었다. 중앙 제어실은 원자로 및 터빈 등의 운전을 24시간 감시하는 원전의 심장부다. 1, 2호기 중앙제어실은 1, 2호기의 터빈 건물 사이에 위치해 두 원자로와 터빈을 동시에 제어했다. 정면에서 볼 때 오른쪽에는 1호기, 왼쪽에 2호기 제어반이 있다. 교실 2∼3개 정도의 넓이쯤 돼 보였고, 창문은 전혀 없었다. 사고 당시 떨어져 나간 천장 패널은 보이지 않았고, 사고 당시 사용한 화이트 보드나 흩어진 메모 등은 정리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바닥은 아직 방사성 물질로 오염돼 분홍색 시트로 덮여 있었고, 면진(免震)중요동의 대책본부와 주고받은 핫라인이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난해 7월 식도암으로 숨진 요시다 마사오(吉田昌郞) 당시 소장은 면진중요동에서 핫라인을 통해 이곳에 각종 명령을 하달했다.

1호기 제어실의 원자로 수위계 옆에는 연필로 시간에 따라 냉각수 수위가 깨알 같이 기록돼 있었다. ‘16시50분 마이너스 50㎝’ ‘16시 55분 마이너스 130㎝’ …. 시간에 따라 원자로 냉각수의 수위가 조금씩 줄어드는 게 기록돼 있었다. 1호기 제어반이 사고 직후 원자로 수위계 수치를 적은 것이다.

도쿄전력은 이날 잠시 실제 조명을 모두 끄고 공동 취재단에게 전원을 완전히 상실하는 ‘스테이션 블랙 아웃(SBO)’의 상황을 재연해줬다. 칠흑 같은 어둠은 상상력을 자극해 사고 당시로 안내했다.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6분, 미야기(宮城)현에서 동남동으로 130㎞ 지점의 깊이 24㎞에서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오후 3시27분 쓰나미 제1파에 이어 오후 3시37분 쓰나미 제2파가 원전을 강타했다. 터빈 건물 지하의 비상 디젤 발전기가 침수됐고, 원전은 스테이션 블랙 아웃이 됐다. 제어반의 표시등도 사라졌다.

당시 중앙제어실에는 24명의 운전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일부 운전원은 사고 직후 손전등으로 직경 30㎝ 정도를 비추면서 냉각수 수위를 체크했고, 일부는 자동차 배터리를 모아 제어반에 연결해 수위계 등을 복구했다. 소형 발전기에서 형광등을 연결해 설계 도면 등을 보면서 기기의 배터리 연결을 시도했다.

이 사이 1호기 원자로에선 멜트 다운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 날 3월12일 오전 2∼3시 중앙 제어실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1000μSv(즉 1밀리시버트)까지 치솟았다. 직원들은 전면 마스크와 보호복을 착용하고 1호기 격납용기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증기를 방출하는 벤트 작업을 벌이면서 멜트 다운과 싸웠다. 공기탱크를 지고 2명씩 원자로 건물로 돌진하기도 했다.

3월12일 오후 3시36분, 1호기 원자로에서 결국 수소폭발이 발생했다. 거대한 방사능 사고의 시작이었다. 사고의 여파로 중앙제어실 천장 패널이 떨어져 나갔다. 사고 5일 후에는 운전원 전원이 중앙 제어실에서 대피하고 일부만이 교대로 데이터 모니터링을 했다. 

일본 도쿄 주재 외신기자들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3주년을 하루 앞둔 10일 처음 외신에 공개된 후쿠시마 제1원전 중앙제어실을 둘러보고 있다.
후쿠시마=연합뉴스
도쿄전력 관계자는 운전원들의 당시 감정에 대해 “그들도 매우 놀랐을 것”이라면서 “피폭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원자로 냉각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사능 유출로 피폭된 초기 운전원 10명은 이후 치료 등을 이유로 모두 퇴직했다. 현재 1, 2호기 중앙 제어실에는 운전원이 상주하지 않고 350m쯤 떨어진 면진중요동에서 원격으로 기기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취재 시 방사선량은 시간당 4.1∼4.3μSv였다.

공개된 중앙제어실은 멜트 다운에 맞선 후쿠시마 운전원들의 건투와 함께 비상 사태를 대비하지 못한 도쿄전력의 기만과 정부의 무능이 아직도 어지럽게 웅크리고 있었다. 1, 2호기 중앙제어실을 빠져나오자, 푸르고 투명한 태평양만 서럽게 넘실댔다. 도쿄전력은 이 밖에도 5호기 원자로 건물 지하에 있는 격납 용기의 압력을 억제하는 도라스실과 지난해 큰 파문을 일으킨 오염수의 지상 저장탱크 건설 현장도 공개했다.

후쿠시마=후쿠시마 제1원전 공동취재단, 김용출 특파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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