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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9〉 한국해의 다른 이름 동해(東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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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2-16 20:46:32 수정 : 2014-03-17 13: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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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는 장엄의 공간이자 끝없이 영감주는 정다운 곳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여 꽃 좋고 열매 많으니라. 샘이 깊은 물 가뭄에 아니 그치니 시내 이루어 바다에 이르니라.’

현대어로 고친 이 아름다운 말씀, 우리글의 원형인 훈민정음으로 처음 지은 글이다. 세종대왕과 그의 학자들은 당신들의 ‘발명품’을 보여주기 위해 “해동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로 시작하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썼다.

용이 하늘[天]을 날아가는[飛] 것을 노래한[歌] 문장이다. 어(御)자는 따로 ‘제어(制御)하다’ ‘다스리다’의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임금의 존엄에 대한 존경의 개념을 나타내는 문자로 쓰였다. ‘어제(御製) 훈민정음’은 임금님이 훈민정음을 지었다는 말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여섯 용 춤추는 바다의 나라 해동(海東)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그 기쁨을 보인 첫 번째 글이 ‘용비어천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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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동쪽 해동(海東) 또는 동쪽 바다 동해(東海), 장엄의 공간이면서 우리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는 정다운 이름이다. 꿈결에서도 우리는 떠난다. 동해 바다로, 고래 잡으러. 모질고 심술 많은 왜(倭)나라의 도적질은 현재진행형이지만 국제질서는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한때 빼앗긴 이름 동해(East Sea)를 우리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되찾고 있다.

‘해동 육룡이 나르샤’는 우리의 이 땅 하늘을 용 여섯이 날았다는 것, 여섯 마리 용은 태조와 태종을 포함한 세종대왕의 여섯 선조(先祖)의 비유다. 서양의 용은 잠자리(dragonfly)에도 그 이름자(드래건)가 들어 있는 ‘별 것 아닌’ 상상의 동물이지만, 동양의 용은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의 상징이다. 하늘의 아들 천자(天子)이고 황제였다.

이 이름도 톺아 봐야 한다. 진단(震檀)은 고대로부터 우리나라 또는 우리 민족을 이르는 웅숭깊은 이름이다. 떨칠 진 또는 벼락 진(震)자, 세상 주름잡는 기개(氣槪)다. 지진과도 같이 산하를 온통 뒤흔드는 위대한 기상을 품은 박달나무(단군·檀君의 상징)의 땅 또는 사람들을 이른다. 진단(震壇) 진국(震國) 진단(震旦) 진역(震域) 등으로도 칭했다.

왜국의 압제 하에서 우리 학자들이 만든 한국학 연구조직 ‘진단학회(震檀學會)’는 그래서 더 의미롭다. 한글도 역사도 지키고자 했다. 1957년 초판을 발행한 ‘진단학회 한국사’(을유문화사 펴냄)도 우리 모두의 귀중한 재산이다. 역사는 겨레의 혼을 담는다.

a선배 학자들의 피땀 서린 ‘진단학회 한국사’ 7권. 진단(震檀)은 ‘동쪽 단군의 땅’이라는 뜻을 품는다.
‘시민의자연’ 제공
문자의 뜻도 범상치 않지만, 동양문화의 ‘비밀의 정원’인 주역(周易)이 보듬은 뜻으로도 이 이름 진(震)은 존귀하다. 주역의 풀이인 설괘(說卦)에 나오는 진방(震方)은 동쪽, 즉 동방(東方)이다. 동쪽은 동서남북의 첫째, 해 뜨는 곳이다. 옛사람들 생각의 중요한 기준이었던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치로 봄(춘·春)이다. 참 상서로운 이미지다.

그래서 동(東)은 우리나라의 이름인 것이다. 치우천왕(蚩尤天王)처럼 무서운 눈 부릅뜬 바위(독)섬 독도를 품은 동해가 한국해(Sea of Korea)인 까닭이다. ‘독’은 돌(석·石)의 남해안 사투리다. 그 바위섬을 ‘독섬’이라 불렀고, 독섬에 나중에 편의상 독도(獨島)라는 한자어를 붙였을 것이다. 외롭다고 독도가 아니다. 잊지 말아야 할 동해 또는 해동의 뜻이다.

동해(MER DE L’EST)와 일본해(MER DU JAPON)를 병기(倂記)한 프랑스 아틀라스 세계지도. 원래 동해(東海)였던 저 바다를 왜적(倭賊)들이 총칼 들고 자기 이름을 새겼다. 역사의 한 장면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상 지리서), 해동가요(海東歌謠), 동인시화(東人詩話),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상 문집), 해동통보(海東通寶·동전) 등 우리 문화유산에 약방의 감초처럼 붙는 글자 ‘동’의 정체다.

동국(東國)은 우리나라, 대동(大東)은 동국을 높인 말이다. 바다 건너 동국을 뜻하는 해동(海東)은 신라 때 문호 최치원의 글에서도 보인다. 공자님이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며 그 ‘동국(東國)’에서 살고 싶다고 했대서 좀은 기꺼운 이름이기도 하고, 큰 활[大弓(대궁) 즉 夷]이란 뜻 담은 또 다른 겨레 이름 동이족(東夷族)에도 들어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다. 가슴 벅찬 이 이름은 현대사의 마케팅 개념이 아니다. 이미 고대에 ‘진단(震旦)’이란 이름을 썼다. 지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양을 연상케 하는 이 멋진 글자 아침 단(旦)자도 동쪽을 표상하는 벼락 진(震)자와 함께 쓰여 우리 역사에서 우리를 나타내는 이미지였던 것이다.

동(東) 글자의 어원은 짐 보따리에서 찾아야 한다. 갑골문(甲骨文)의 동(東)은 짐 자루의 양쪽 끝을 묶은 그림이다. 처음엔 ‘물건’의 뜻으로 만들어졌을 터, 그러다가 소리가 비슷한 다른 말의 기호(글자)로 이용되면서 ‘동쪽’ 뜻의 글자가 된 것으로 문자학은 해석한다.

동(東)자의 어원을 그린 중국학자 이락의 저(著) ‘한자정해’(박기봉 번역·비봉출판사)의 삽화. 짐을 매단 자루 양쪽을 묶은 그림이 오랜 세월 동(東)으로 다듬어졌고, ‘동쪽’이란 뜻도 매겨졌다.
동(東)의 어원이 ‘나무(목·木)에 걸린 해(일·日)라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이는 지금의 모습, 즉 글자의 구조(構造)를 어원과 혼동한 것이다. 물론 갑골문 발견(1899년) 이전에는 설문해자의 풀이에 기대어 그렇게 이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서(東西)란 말을 지금도 중국에서 ‘물건’이란 뜻으로 쓰는 이유를 그 풀이는 설명하지 못한다.

문자는 이렇게 본디를 가리킨다. 역사가 혼을 품는 것과 같다. 바로 배워야 하는 것이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장 ceo@citinature.com

■ 사족(蛇足)

문자를 우리보다 먼저 썼던 고대 중국 대륙의 문명이 만든 개념이기도 할 것이다. 중국은 스스로를 가운데[中]의 꽃[花/華] 즉 중화(中華)라 칭하고, 사방의 다른 겨레를 각각 동이·서융·남만·북적이라 불렀다.

하(夏), 상(商) 또는 은(殷), 주(周) 등 고대 대륙(중국) 국가들의 신화와 역사를 살필 때 동이가 반드시 우리 겨레를 이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문명의 새벽, 황하(黃河) 일대에서 밀고 밀리며 삶을 지었던 여러 겨레들 중의 한 이름이었음을 시사(示唆)하는 장면들은 여럿 있다. 현대사에서는 동이족을 우리 겨레와 동일시하는 분위기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은 고대 신화와 역사부터 심하게 흔드는, 현재 그들 영토의 동북쪽 역사를 거의 새롭게 만들다시피 하는 ‘작전’이다. 그들의 통치 이데올로기와 관광 안내서를 위해 진실이, 역사가 스러지고 있는 것이다.

활을 잘 쏜다는 동이(東夷)다. 서융(西戎)은 창[戈(과)]을 잘 써서 붙은 이름이겠다. 남쪽에는 더운 날씨의 특징인 벌레[?(충)] 글자를 넣은 남만(南蠻) 이름을 붙였고, 북쪽 겨레에게는 사나운 동물의 이미지인 개[?(견)]와 불 화(火)를 합친 글자 북적(北狄)을 붙였다. 족속들의 특징 또는 특장(特長)을 구분하기 위한 이름 짓기였다.

무서운 무기 활은 우리 겨레가 고대로부터 매우 잘 썼다. 유전이겠다. 세계 최강의 우리 남녀 궁사들은 스포츠 영역을 굳게 지킨다. 그 치명적(致命的)인 활은, 또 한 편으로는 명상이나 참선과도 같이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수도(修道)의 연모이기도 하다. 활 잘 쏘면 오랑캐인가? ‘동쪽 오랑캐’ 풀이는 역사가 왜곡한 잘못된 이미지다.

‘큰 활’ 이(夷)는 ‘도(道)에 밝은 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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