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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 고료 제10회 세계문학상] 공동수상작 ‘살고 싶다’의 이동원씨 인터뷰

입력 : 2014-01-28 20:52:56 수정 : 2014-01-29 08: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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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라는 닫힌 공간서 너무도 허망하게 가버린 청춘들
나에게도 군대는 기억 한편에 묻어놓은 장애물과 같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세상 향해 묻고 싶어
삶의 문턱에서 혼잣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살고 싶다, 살고 싶어요….” 제10회 세계문학상 공동수상자 이동원(35)씨는 삶의 중턱에서 이 말을 되뇌었다. 당선작 ‘살고 싶다’에는 한 걸음 나아가고 싶은 무명 작가의 간절함, 글쓰기 자체가 삶의 희망이었던 소설가의 간절함이 반짝인다.

“저는 오래전부터 소설을 써왔던 전공생은 아니에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데 ‘살고 싶다’라는 혼잣말이 심사위원들께 전해졌나 봅니다. 군대를 배경으로 썼지만 군대 이야기만은 아니에요.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놓지 않았어요.”

‘살고 싶다’는 생선 뼈대와 같은 구조를 지녔다. 머리에서 꼬리로 흐르는 큰 뼈는 군에서 일어난 의문사의 진실을 좇는 미스터리 추리 서사를 이룬다. 주인공은 군에서 자살로 결론내린 “살고 싶어했던 한 친구”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죽음의 진실을 캐는 과정은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작은 뼈는 군대에 모인 인간 군상의 맨 얼굴을 생생하게 담았다. 군대뿐만 아니라 그 안의 특수 조직인 국군광주통합병원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상황을 통찰력 있게 그린다. 큰 뼈대는 허구지만 작은 가시는 대부분 경험담이다.

“소설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직접 겪었던 내용이에요. 저는 주인공처럼 무릎을 다쳐 병원에 입원했고 그 일로 고참에게 갈굼당하고 후임에게 무시당하는 신세가 됐죠. 지금도 가끔 군대 가는 꿈을 꿀 정도로 트라우마가 됐어요.”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루는 의문사는 군에서 받았던 ‘자살방지교육’을 계기로 선택하게 됐다. 강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군인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 자체로는 인상적인 경험이 아니었지만 ‘부모님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읽으며 강사가 덧붙인 한 마디가 가슴에 남았다. “죄송할 짓을 왜 해?” 교육생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참 이상했어요. 저는 자살한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다들 재미있다는 듯 웃더라고요. 그 공간에 제가 있는 게 이상했어요. 그날 일기를 썼죠. ‘언젠가 이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겠다’라고요.”

군대는 삶의 그림자이자 기억 한편에 묻어놓은 장애물과 같았다. 그러나 소설로 꺼내놓으며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군대 속 인간 군상의 맨 얼굴을 추리 형식으로 풀어낸 이동원씨. 그는 “죽은 자를 되살리는 글쓰기는 못해도 무덤의 돌을 치우는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수상 소식에 잠을 못 잘 정도로 기뻤다”고 말했다.
허정호 기자
그는 오랫동안 영화계에 몸담았던 시나리오 작가였다. 2009년 글을 써서 처음으로 돈을 벌었고, 얼마 안 되는 금액에 열정을 불태웠다. 그러나 극장에 걸리지 못하는 아픔이 반복됐다.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전까진 마트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손님이 적어 남몰래 책을 읽을 수 있는 야간 업무였다. 소설을 처음 쓴 건 지난해였다. 소설은 제작사·투자사 요구에 개의치 않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쓰는 기쁨을 주었다고 한다.

“영화는 플롯을 정해놓고 퍼즐 맞추듯이 이야기를 수정하는데 소설은 결말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놓으면 그때그때 제 맘대로 풀어갈 수 있어요. 기간은 짧았지만 소설을 쓰면서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소설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시나리오 작가로서 더 가능성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간 어렵게 생각했던 소설에서 빛이 보였다. 처녀작 ‘수다쟁이 조가 말했다’는 지난해 문학동네 청소년소설공모전 본심에 올랐다. 당선 문턱은 못 넘었지만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살고 싶다’는 인생의 세번째 소설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세계문학상 마감일인 12월26일까지 매일 30∼35매씩 써내려갔다. 쓰고 싶을 때, 이야기가 떠오를 때 쓰는 여유는 부릴 수 없었다. 촉박했고, 절박했다. 삶의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다.

“영혼을 일깨우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아요. 죽은 자를 되살리는 글쓰기는 못해도 무덤의 돌을 치우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 이야기를 그렇게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소설가의 말은 무거워도 ‘살고 싶다’에는 시나리오 작가의 숨결이 남아있다. 많은 에피소드가 눈앞에 그려지듯 펼쳐진다. 천상병, 도스토옙스키, 빅토르 위고 등 그가 좋아하는 문인들에 대한 감상과 통찰도 가미했다. “이제 소설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다”는 그는 작품에서 자신의 상황을 빅토르 위고의 말을 통해 전했다. “나는 사랑에 빠진 한 남자를 알고 있다. 그의 모자는 낡고 외투는 해졌으며 구두에는 물이 새고 있었지만 그의 영혼에는 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글쓰기를 하며 밥벌이를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한다. 고단하지만 즐겁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이동원씨는…

●1979년 서울 출생 ●1999년 단국대 경제학과 입학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 영상작가원 시나리오 전문반 수료 ●청소년소설 ‘수다쟁이 조가 말했다’(2013·문학동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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