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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환수, 작전 세우듯 치밀하고 조용하게 해야"

입력 : 2013-12-18 20:46:35 수정 : 2013-12-18 20: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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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대략 15만점이라고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어디에, 누가 소장하고 있는지 모르는 게 꽤 많다. 알려진 것도 상당수가 보관될 뿐이고 활용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환수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지만, 환수 이후에는 급격히 식어 버리는 게 현실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안휘준 이사장이 문화재의 환수, 활용과 관련해 풀어놓은 이야기는 이런 맥락으로 정리된다. 73세의 ‘노장’이 구상하는 재단의 활동 방향도 여기에 맞췄다. 16일 서울 종로구 재단 사무실에서 안 이사장을 만나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외국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의 구체적인 실태 파악은 문화재 환수에서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다.

“국내에 비슷한 사례가 없어 사료적 가치가 뛰어난 문화재, 예술성이 깊은 국보급·보물급의 문화재가 최우선 환수 대상이다. 하지만 실태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 무엇이 환수 대상이고, 무엇이 해외 활용 대상인지 판단할 수 없는 상태다. 실태 파악은 사실상 맹탕이다.”

안 이사장은 문화재를 소장 국가, 제작 시대, 분야, 유출 경위 등으로 나누어 그 실태가 구체적으로 파악돼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했다. 실태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라면 문화재 한두 점의 환수로 ‘북 치고 장구 치며’ 좋아라 할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를 가진 소장자가 환수 압박을 느껴 더욱 꽁꽁 숨겨버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태 파악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재단의 지향점과도 관련이 깊다.

“실태 파악은 문화재에 대한 열정만으로 움직이는 개인,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가만이 할 수 있다.” 재단이 이런 작업을 주도해 보겠다는 의지를 읽게 하는 대목이다.

환수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나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밝혔다.

적극적인 관심이 애국심과 문화재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환수는 “사자가 사슴을 노릴 때처럼” 조용하고, “전쟁에서 장군이 작전을 세우듯” 거시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해외 소재 문화재가 모두 환수 대상이라는 인식 역시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보기에 환수 대상은 약탈, 절도 등의 불법적인 행위를 통해 나라 밖으로 나간 문화재다. 외교나 통상, 선물 등의 우호적인 방식으로 유출되거나 유출 경위가 밝혀지지 않은 문화재는 소장국에서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매개체로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돌려받겠다는 인식을 지적할 때는 냉정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안휘준 이사장이 16일 서울 종로구 재단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문화재 환수와 활용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재문 기자
“외국에 있는 문화재는 돈을 들이지 않고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환수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느끼게 한다. 놓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국제경매에 우리 문화재가 나오면 정부, 개인이 달라붙어 사올 생각을 해야 하는데 냉담하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잘사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문화재에 대한 사랑이 그에 비례해 큰가 하면 그렇지가 않다.”

중국은 경제 발전 이후 정부, 개인할 것 없이 금액에 상관없이 자국의 문화재를 사들이는 데 적극적이라고 소개했다.

안 이사장이 환수 못지않게 무게를 두는 것이 활용이다. 돌려받을 땐 뜨겁던 관심이 이내 식어버리는 게 현실이다. 수십년 전에 환수하고도 소장처의 수장고에 ‘고이 모셔놓기만’ 하는 데도 별다른 지적이 없는 것은 그래서다. 제대로 된 도록 하나 없는 사례조차 있다고 한다. 재단이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영구임차 형식으로 돌려받은 ‘겸재정선화첩’의 영인본과 연구서를 최근 출간하고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것은 환수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자는 취지다.

약탈된 문화재라 해도 돌려받지 못한 상태라면 현지에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탈 문화재에 대해 정부가 직접 나서 협상을 벌여도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 게 현실이니 환수 노력과 별개로 해외에 있는 문화재를 활용해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자는 주장이다. 문화재가 맞게 되는 ‘최악의 상황’, 즉 소장자에 의한 ‘사장(私藏)’ 혹은 전시 등을 통해 공개되지 못하는 ‘사장(死藏)‘은 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재단은 13, 1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그는 “시집을 갔으면 거기서 잘 살게 해주고, 친정을 제대로 알리는 데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 그게 현지 활용이고 환수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 이사장은 종종 ‘사랑론’을 펼쳤다. 인터뷰도 그렇게 마쳤다.

“사람이든 문화재든 사랑하는 쪽으로 간다. 사랑하지 않으면 뺏기고, 뺏겨서 마땅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돌려받아야 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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