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대기업이 투자를 줄인 채 현금성 자산을 크게 늘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 불확실성에 대비해 곳간에 현금을 쌓아두면서도 불투명한 경기회복과 규제 등을 이유로 들어 돈을 푸는 데는 인색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26일 기업경영 평가업체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중 올 1분기 실적을 보고한 302개사의 총투자 규모는 31조원으로 1년 전보다 8.3% 줄었다. 반면 이들 기업의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한 현금성 자산은 총 196조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10.8% 늘었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10대 그룹의 투자 부진은 더욱 심각했다. 10대 그룹 99개 계열사의 1분기 투자는 18조4000억원으로 작년 1분기보다 10.7% 줄었다. 5대 그룹으로 좁히면 투자 감소폭이 16.5%로 확대됐다. CEO스코어는 “덩치가 큰 기업일수록 투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며 “이 같은 투자부진은 경기회복을 더디게 할 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더욱 큰 문제는 이 같은 투자 부진이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중국 경제불안에 따른 경기 불확실성과 맞물리면서 하반기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10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하반기 설비투자 전망을 조사해 이날 발표한 결과 작년 하반기보다 설비투자를 늘리겠다는 응답은 34.4%에 그쳤다. 투자를 늘리겠다는 기업이 3개 기업 중 1개에 불과해 실제로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독려에도 투자를 크게 늘리지 못하는 기업들도 속사정이 있다. 비우호적 기업환경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크다. 한 재계 관계자는 “세계적인 경기침체 외에 대내적으로도 과도한 경제민주화 논의 등이 기업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GS칼텍스 건처럼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국회에서 가로막히는 일이 많아 정부만 믿고 투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세계적인 불황에 투자에 신중해진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대내외적 경제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도 생산 주문량이 늘지 않는 이상 설비투자 규모를 늘리기 쉽지 않다”며 “앞으로도 기업들의 투자계획이 더욱 보수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는 세금부담, 규제를 최소화하고 자금지원, 수출지원을 늘려 투자의욕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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