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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 중동]〈20〉 요르단 거대한 고대도시 페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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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4-04 21:04:04 수정 : 2013-04-04 2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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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바위산 깎아 만든 카즈네,‘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영화 ‘인디아나 존스3’ 주요 무대이기도
붉은 돌산에 세워진 성전·노천극장·마을…
파란 하늘과 대비돼 강렬
요르단(Jordan)은 현지어로 ‘조르단’이라고 부른다. 요르단은 ‘페트라’라는 세계문화유산을 가졌고, ‘암만’이라는 재미난 이름의 수도도 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이스라엘, 북쪽으로는 시리아, 동쪽과 남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접해 있다. 동쪽 국경선 일부는 이라크와도 만난다. 주변 국가들 이름만 죽 보면 왠지 ‘안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든다.

나는 요르단으로 가겠다고 생각했을 때 집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요르단·시리아를 지나 터키에 도착할 때까지는 어디에 있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손가락이 가리킨 길들이 요르단·시리아를 지나고 있었을 뿐 나는 안전에 대해서나 이 나라들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파키스탄·예멘 등은 확신을 가지고 갔었을까. 물론 그들도 미지의 나라였다. 비록 파키스탄과 예멘은 테러가 많은 나라인 건 분명하지만, 여행지로서 충분히 훌륭하고 세계 여행객들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나라로 꼽는 곳이다. 요르단과 시리아는 나에게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어쨌든 가보지 않고서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요르단이라는 나라에 발을 내디뎠다.

페트라에 살고 있는 낙타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방문자를 반긴다.
내가 묵은 작은 호텔은 지하에 주방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여행자용 호스텔 같은 곳이었다. 여행자들끼리 모여 놀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방에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방마다 비디오가 설치돼 있는 건 아니고, “영화를 보겠다”고 하면 임시로 설치해준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는 이곳에서는 의무처럼 봐야 한다. 왜냐하면 요르단의 자랑거리이기 때문이다. ‘인디아나 존스’ 세 번째 시리즈의 주요 무대가 바로 페트라이니 당연히 자랑스러울 것이다.

페트라를 따라다니는 주요 수식어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영화 ‘인디아나 존스3’의 배경”,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 등이다. 2007년 세계인을 상대로 인터넷과 전화 투표를 해 뽑은 ‘신 세계 7대 불가사의’에서 페트라는 2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신기하고 또 멋있을까 생각하면서 ‘인디아나 존스3’를 봤다. 예전에 본 영화이지만 ‘의무감’에 다시 본 것이다. 다시 본 옛날 영화는 특히나 액션 부분은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연속이다. 그래도 추억을 떠올리기엔 좋았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페트라까지 갈 수 있다. 어제 영화를 보다가 늦게 잠들어 그런지 닭 울음소리에 겨우 깨어나니 벌써 7시 반이다. 어차피 셔틀은 놓쳤다. 천천히 도시락을 싸서 길을 나선다. 히치하이킹을 통해 페트라 앞에 내린다. 티켓 가격이 비싸기에 대부분의 여행자는 이틀 관람권 한 장을 사 둘이서 반씩 나눈다. 이틀 관람권과 하루 관람권의 가격차가 얼마 안 나는 만큼 이틀권 한 장을 사 다른 여행자와 둘이 나누면 한결 부담을 덜 수 있다.

협곡을 지나는 좁다란 길에는 길게 뻗은 신기한 색깔의 바위들이 줄지어 서 있다. 페트라는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지만, 이곳의 바위들은 사실 몇 천년도 더 된 것들이다. 지층의 구조가 바뀐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늘 높이 뻗은 협곡의 바위들 사이로 익히 보고 들은 그 장면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두운 협곡 중 가장 좁은 길과 그 틈으로 보이는 성전이 신비롭기만 하다. 저 건너편과 이곳이 마치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사진이나 화면으로 보던 것보다 몇 만 배는 더 감동스럽고 신비로웠다. 한참을 숨죽여 본 후에야 그 협곡을 지나갈 수 있었다.

어두운 협곡에서 나오니 환한 세상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바위산을 깎아 만든 카즈네(El Khazneh Treasury)가 보인다. 이렇게 큰 바위산을 어떻게 깎아 이런 것들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걸 보니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게 확실하다. 카즈네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각진 공간과 세 방향으로 나 있는 문이 있을 뿐이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미로 같은 곳이 나오고, 저주가 걸려 있는 곳곳의 함정들이 나오고, 운 좋게 그곳을 통과하면 보물을 찾을 수 있을까. ‘인디아나 존스3’의 영상이 순간 떠올랐다.

페트라의 어두운 협곡 틈으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카즈네. 협곡에서 벗어나면 거대한 바위산을 깎아 만든 카즈네와 마주한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신전과 무덤 등 그들의 삶의 터전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중 돌산 하나를 오른다. 위에서 보는 광경은 어떨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햇볕에 정신이 몽롱해지지만, 오르고 나면 이 힘들었던 것을 모두 보상받을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도 산을 오르는 일은 힘들다. 특히 뜨거운 땡볕 아래 그늘 하나 없는 바위산을 오르는 건 힘들 수밖에 없다. ‘베드윈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이 내게 건넨 청포도가 걸을 힘을 준다. 베드윈족 한 아이가 나에게 선물이라면서 돌 하나를 쥐여준다. 색색의 지층이 선명하게 드러난 돌은 베드윈족이 팔고 있는 상품이다. 그런데 꼬마는 내게 선물이라며 그냥 준 것이다. 돌에는 세월을 말해주는 신비가 담겨 있다. 나도 그런 예쁜 돌을 주워볼 생각으로 찾아봤지만, 이미 그들이 다 주운 듯했다.

산 정상에 섰다. 주위의 산들과 그곳을 깎아 만든 유적지들, 그리고 멀리 주민이 사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람과 파란 하늘, 붉은 돌산이 멋진 풍경을 만드는 데 유적지 못지않게 한몫하고 있다. 아슬아슬한 절벽 바위에 앉아 한참을 감상한다. 챙겨온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잔다. 눈을 떠보니 나타난 풍경들은 나를 행복하게 하였다. 이런 광경을 매일 볼 수 있는 베드윈족이 부럽기만 하다.

페트라 옆 돌산 정상에 올랐다. 주위의 산과 그곳을 깎아 만든 유적지, 그리고 멀리 주민이 사는 마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내려가는 길이 문제가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한없이 감상에 젖어들고만 있었다. 올라온 길 반대쪽으로도 길이 있기에 그 길로 들어섰는데, 문제는 바위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무언가 잡을 곳도, 발을 디딜 데도 없는 그런 바위들을 줄줄이 타고 내려가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 바위를 지나가던 도마뱀이 내가 실수로 밟았는지 꼬리를 자르고 도망쳤다. 힘든 상황에서도 그 도마뱀이 나에게 웃음을 가져다준다. 마지막에 있는 큰 바위가 최대 고비였다. 멀리서 나를 보고 달려와 준 베드윈족 청년 덕분에 마지막 바위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길을 찾아 안전하게 하산했다. 그가 말하길 가끔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길을 못 찾을 때가 있단다.

그 친구는 내가 타고 내려온 바위 아래 동굴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 동굴 위를 걸어다닌 것이다. 동굴 안에는 신기하게도 우물물 같은 물이 있었다. 그 친구가 생활하는 곳을 보여줬는데 동굴 안이지만 집처럼 편안하게 여겨졌다. 그 친구는 또 다른 친구가 있었는데 바로 작은 당나귀였다. 잘 어울리는 당나귀를 타고 달가닥달가닥 내 뒤를 따라왔다. 그러던 중 나처럼 바위 절벽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본 그 친구는 나에게 인사를 하고 그들을 구하러 달려갔다. 이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말하는 고마운 베드윈족 청년을 뒤로하고 나도 걸음을 재촉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페트라는 2007년 세계인이 인터넷과 전화 투표로 뽑은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2위를 차지했다.
고대 유적지인 페트라는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한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였다. 이 거대한 도시가 발굴되기까지 참 많은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로마 원형경기장은 위에서 볼 때에만 온전히 하나로 연결된 전체를 볼 수 있다. 내려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의자 한 개 한 개가 다 돌을 깎아서 만든 것이다. 큰 돌산 하나를 깎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것을 사람이 만들었다는 건 더더욱 믿기지 않는다. 마지막 언덕을 오르니 유적지로 가득한 산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건 탄성을 절로 지르게 한다. 내 뒤에서 해가 지고 있었으므로 내 앞의 산들은 타오를 수밖에 없다. 적절한 시점에 날아오르는 새까지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조화로울 따름이다. 태양의 각도까지 생각해 지은 듯하다. 마치 잘 조각해 놓은 전시장에 들어온 나만 작아진 기분이다. ‘인간이 아니고 외계인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가설에 신뢰가 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긴 하루를 보내고 현실의 세계로 돌아왔다. 그래도 그곳에서 가져 온 물건이 있어 모든 게 꿈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돌멩이 하나와 낙타 이빨이 내 보물상자 안에 아직도 남아 있다. 페트라의 산들처럼 이곳의 지형은 고지대의 언덕이 많다. 그 언덕 위에 집을 지었기에 선선한 바람이 분다. 또 저녁놀은 어느 곳에서나 붉은 산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페트라에서의 하루가 이 노을과 함께 저물어간다.

강주미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 저자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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