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NO, 10만원 OK"… 택시들, 너무 하네

연말 택시 승차거부에 승객들 ‘귀갓길 전쟁’

직장인 이모(39)씨는 지난 주말만 떠올리면 지금도 울분이 끓어오른다. 때 이른 한파에 폭설까지 내린 8일 새벽 1시,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부근에서 ‘빈차’라는 붉은색 불빛을 반짝이며 다가오는 택시들을 향해 끊임없이 “일산”을 외쳤다. 그러나 영하의 매서운 추위에 한 시간이 넘도록 발만 동동 굴렀다. 그는 결국 “일산, 5만원”을 부른 뒤에야 택시를 탈 수 있었다. 평소보다 2배나 높은 금액. 그는 “기사들의 횡포가 너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면서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두고 봐야 하느냐”고 분을 삼키지 못했다.

연말을 맞아 송년회 등의 모임이 잦아지면서 심야시간 택시기사의 승차거부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 해를 뜻깊게 마무리하려는 시민들은 택시들의 승차거부에 송년 분위기까지 망친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날로 지능화하는 승차거부에 단속공무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여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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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고 쫓기는 단속반과 택시기사들

세계일보 취재팀은 6일 저녁부터 8일 새벽까지 강남역과 홍대입구역 등 서울의 고질적인 택시 승차거부 지역 2곳에 대한 당국의 단속을 동행 취재한 결과, 각각 4시간 동안 총 13건이 적발됐다. 이틀간 서울 전체 단속 건수는 20곳에서 모두 46건이 적발됐다.

8일 자정 무렵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 지난해 택시 승차거부 적발 및 신고 건수가 1165건으로 가장 많았던 곳이다. 도로 곳곳에는 시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관 10여명은 도로에서 택시를 잡으려는 시민들을 제지했고, 서울시 단속반원 3명은 오가는 택시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단속이 시작된 지 약 1시간 만에 택시기사 한 명이 적발됐다. 승객 앞에 잠시 섰던 택시가 곧바로 지나치자 단속반원 2명이 쏜살같이 달려갔다. 1명이 택시를 막아섰고, 다른 1명은 기사에게 경위를 따져물었다.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니까! 교대시간인데 손님이 차고지 반대 방향으로 가자고 했다고요.” 기사는 극구 부인했다. 차를 막아섰던 단속반원이 해당 승객을 붙잡고 확인했다. 목적지는 차고지 방향인 종로 3가였다. 승객은 “1만원도 안 되는 거리는 태우지도 않는다”며 “처벌해달라”고 쏘아붙였다. 기사 얼굴에 낭패감과 짜증이 스쳤다. 과태료 20만원 처분이 떨어졌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택시 승차거부 행위는 1차 적발 시 과태료 20만원, 2차 땐 20만원 또는 자격정지 10일, 3차 땐 20만원 또는 자격정지 20일이 부과된다. 1년간 4번 이상 적발되면 택시운전자격이 취소된다.

강남역 일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7일 자정, 술자리를 마친 시민들이 강남대로 곳곳으로 몰려들면서 택시와 승객이 뒤엉켜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심지어 “더블이요…더블…”을 외치며 정상가보다 웃돈을 줘서라도 택시를 잡으려는 승객들도 많았다. 기사들은 살짝 열린 택시 창틈 사이로 승객의 목적지를 묻고는 방향이 다르면 바로 차를 움직여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단속반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택시들은 단속반을 보면 언제라도 도망갈 태세를 갖추고, 단속반원이 다가가면 잠시 자리를 이동했다가 단속반원이 사라지면 또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을 반복했다. 30분 넘게 길바닥에서 택시를 잡고 있다는 시민 김모(30)씨는 “집이 지하철 3호선 잠원역 인근인데, 여름에는 택시 잡는 것을 포기하고 걸어간 일도 많지만 오늘은 너무 추워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서 “어쩔 수가 없다. 돈을 더 줘서라도 빨리 택시를 잡고 싶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 8일 밤 서울 마포구 동교동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단속공무원이 승차거부를 한 택시의 번호를 기록하고 있다.
◆경기도, 서울 외곽 지역 방향은 한 번에 10만원도…


택시기사들은 승객의 목적지가 근거리이거나 또다시 차고지 또는 번화가로 돌아오는 길에 손님을 태우기 어려운 지역일 때 대부분 승차를 거부하고 있다. 단속에 적발된 한 택시기사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고, 잠시라도 쉬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며 “이용하는 승객이 많은 코스에서 최소 1만원 요금으로 왕복 운행하는 것과 목적지 인근에 예비승객도 없는 4000∼5000원 코스를 가는 것은 택시기사들 입장에서는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강남역이나 홍대입구역뿐 아니다. 승차거부가 기승을 부리는 곳은 서울에만 10여 군데가 넘는다. 특히 지하철 사당역과 가산동, 강남역 등은 수원이나 안양, 일산 등 경기도나 서울 외곽지역으로 가는 승객들에 대한 호객행위와 요금 과잉청구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수원이나 안양 등지로 가는 마지막 열차나 버스가 끊어지면 택시가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승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수 없이 택시를 이용하고 있다.

기사들은 동일 목적지로 가는 손님 3∼4명을 합승시켜 운행하면서 1번 운행에 10만원 이상의 폭리를 취한다. 하지만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10조에 따라 서울시와 협약을 맺은 광명시, 김포·인천공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단속대상에도 포함돼있지 않다. 택시기사들은 이 점을 악용해 버젓이 승객들을 합승시키며 이득을 취하고 있다. 서울지역 택시기사조차 “경기도 손님이어서 승차를 거부했다”는 등 거짓해명으로 단속에 애를 먹이고 있었다. 강상욱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선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승차거부 대책은 일시적이기 때문에 보완이 시급하다”며 “승차거부 없는 택시인증제도, 심야 택시정류소 확대 방안 등 대책을 마련하고 시간대·거리별 할증제도 등 택시기사에게 혜택을 주는 방안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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