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문화로 읽기] 〈9〉 정치영화와 정치현실

선거철 쏟아지는 정치영화… 흥행과 현실 왜 따로 갈까

선거철을 맞아 정치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다. ‘남영동 1985’가 정치권의 관심 속에 개봉됐고, 요즘엔 ‘26년’이 네티즌의 찬사 속에 상영 중이다. 이 영화들은 군사독재 정권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그들이 기득권층이 되어 여전히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다시 말해 ‘야권(개혁) 성향’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도 최근에 화제가 됐다. 이 영화는 육영수 여사의 일대기로, 박정희 대통령과의 로맨스를 그릴 예정이라고 한다. 이건 ‘여권 성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 대한 네티즌의 시선은 따갑기 그지없다. 부정적인 여론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주인공 남자 배우가 하차를 선언하기도 했다. 얼마나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들었으면 하차선언까지 했겠는가? 그의 하차선언에 대한 네티즌 반응은 환영일색이었다. 그럴 정도로 영화가 네티즌에게 미운털이 박혔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흥행도 위험하다. 내년에 제작할 거라면서 일단 제작발표회는 했지만, 결국 제작이 무산되지 않겠느냐는 루머까지도 인터넷에서 돌고 있다.

이렇게 보면 야권 성향으로 구 독재세력과 기득권세력에게 공격적인 영화는 네티즌 대중과 관객의 사랑을 받고, 여권 성향의 영화는 차가운 냉대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선거철만의 특징이 아니다. 언제나 이래왔다.

5·18민주화운동 26년 뒤 유가족들이 책임자를 처벌하러 나서는 내용을 담은 영화 ‘26년(왼쪽 첫번째)’은 8일까지 관객 158만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1985년 당한 고문을 다룬 영화 ‘남영동 1985(가운데)’가 선거철을 맞아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오른쪽)’에 나오는 광해군은 대중문화 속에서 개혁세력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최근 영화들의 정치적 성향


2007년 대선 때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화려한 휴가’가 일부 언론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700만 관객을 돌파했었다. 바로 그 전해에는 ‘괴물’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괴물’은 미군과 한국 당국이 국민을 속이는데, 민초들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으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권의 시각이 연상되는 영화였다. 이 작품엔 80년대 민주화 시위대의 상징이었던 화염병까지 등장했다. 관객은 이런 작품들에 뜨거운 지지를 보냈는데, 정작 2007년에 당선된 건 이명박 후보였다. 영화 분위기와 정반대로 간 것이다.

육영수 여사의 일대기를 그리는 영화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가 내년 개봉을 목표로 최근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요즘 들어선 영화들의 성향이 더 뚜렷해졌다. 2010년 최고의 영화라고 할 수 있는 ‘부당거래’는 검찰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의 부패상을 그린 작품이었다. 이 영화로 류승완 감독은 장인의 경지에 올랐다는 찬사까지 받았다. 또 그해에 국내외에서 주목받은 ‘하녀’는 돈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구조의 잔인함을 고발한 영화였다.

2011년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찬사를 받은 ‘최종병기 활’은 병자호란 당시 고통받은 민초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는데, 이 ‘인조-병자호란’ 테마도 야권성향에 가깝다. 올해 흥행작인 ‘광해’에서 광해군은 명·청 교체기를 맞아 등거리 외교를 하려다가, 명나라를 섬기는 기득권 세력 때문에 좌절한다. 그 때문에 일어난 환란사태가 바로 병자호란이다. 이런 배경에서 광해군과, 인조가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소현세자는 대중문화 속에서 개혁세력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반대로 인조와 반정세력은 기득권세력의 상징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최종병기 활’은 인조 세력의 실정으로 고통받은 민초의 이야기이므로,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마찬가지로 야권 성향인 것이다.

야권 성향의 또 다른 키워드로 개혁군주 정조를 꼽을 수 있는데, 2011년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 그 시대를 다뤘다. 이 테마는 올해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이어진다. 둘 다 흥행에 깜짝 성공했다. 그해엔 또 ‘도가니’가 등장해 부패한 한국사회를 통타했고, 네티즌은 새삼 사학개혁에 소극적인 새누리당을 원망했다.

올해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광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개혁적 사극으로 등장했고, ‘돈의 맛’이나 ‘피에타’는 자본주의 기득권 구조를 고발했다. 연초엔 ‘부러진 화살’, ‘댄싱퀸’,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등이 한국사회를 고발하며 개혁을 열망했다. 하지만 웬걸! ‘댄싱퀸’ 이후에 치러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선전했고, 지금은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1위를 달리고 있다. 아무리 네티즌이 ‘26년’에 환호하고 있어도 말이다.

◆왜 영화와 정치가 따로 갈까

왜 흥행하는 영화 따로, 당선되는 정치인 따로인 것일까? 영화 흥행도 일종의 투표결과다. 국민이 회당 8000원씩 내고 하는 투표다. 왜 유료 투표 결과와 무료 투표(총선, 대선) 결과가 다른 것일까?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영화는 2030세대가 주로 보기에 그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개혁성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제작자가 보수성향이라 해도 그렇다. 문제는 2030세대가 돈 내고 극장에는 가도, 투표는 안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제작자들은 2030세대의 눈치를 보지만, 기존 정당은 그렇지 않다. 2030세대는 그런 기존 정당이 밉다며 선거날 극장에나 간다. 따라서 한국정치는 2030세대로부터 더욱 멀어진다. 대신에 2030세대의 분노를 대리표현해주는 영화가 더욱 흥행한다. 바로 이것이 한국정치가 처한 비극적 악순환 구조다. 올해는 이 구조가 깨어질까? 아직은 비관적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문화평론가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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