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초대석] 강봉균 '건전재정포럼' 총괄대표

“대선후보 ‘장밋빛’ 공약, 증세나 빚내지 않으면 실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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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마다 ‘장밋빛 공약’이 쏟아진다. 18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여야 후보가 앞다퉈 복지·의료·교육·가계부채 공약을 내놓았다. 어려워진 경제 탓에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다. 정치권의 공약 릴레이에 ‘스톱(STOP)’ 사인을 든 이가 있다. ‘건전재정포럼’ 총괄대표를 맡고 있는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다. 지킬 수 있는 약속인지, 국민 부담은 없는지, 나라살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따져 보자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은 “4·11 총선 이후 새누리당이 반값 등록금 등 민주통합당의 공약을 따라가면서 여야 가릴 것 없이 공약 실현에 임기 내 160조∼170조원의 재정이 필요해졌다”며 “나랏빚을 내서 지원할 수밖에 없는데 일본처럼 순식간에 국가재정이 망가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 복지 재정을 늘리겠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정도다. 증세를 하지 않겠다면 빚을 내서 하진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전 장관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한국금융연구원 사무실에서 한 시간 남짓 진행됐다.

-건전재정포럼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새누리당 복지 관련 공약을 실현하려면 75조원, 민주당은 165조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돼 있다.

“그 통계는 4·11 총선 당시 공약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최근 박 후보가 발표하는 것을 보면 민주당을 자꾸 따라간다. 75조원에서 100조원 정도가 더 늘었다. 정당이 대선이나 총선 공약을 발표할 때 이를 재정적으로 통제할 시스템을 선거관리위원회가 만들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다. 기획재정부 같은 예산전문 기관들이 재정 소요가 얼마나 될지 발표하지 못하도록 했다. 국회의원이 법안 하나를 제출해도 소요 예산을 붙이는데 대선 주자들이 자기 약속에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박 후보는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것 아닌가. 그럼 갈 길은 둘 중 하나다. 세금을 올리든지, 아니면 빚을 내는 것이다.”

-박 후보는 증세를 마지막 수단이라고 하고, 문 후보도 중산층과 서민에게 세금 부담을 지우진 않겠다는 입장인데.

“세금을 더 걷어서 복지를 늘리는 게 정도다. 국민들이 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동적인 재정 규율이 이뤄진다. 여야 후보들이 필요 재원의 절반 이상을 불필요한 예산을 줄여서 충당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거짓말이다. 그런 식으로 줄여야 할 예산이 15조원가량 되는데 지금 국회에서 1년에 깎는 예산 규모가 1조원 안팎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당장 내년 예산부터 깎아봐라.”

-박, 문 후보가 복지, 의료, 교육, 국방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공약을 내놓았는데 가장 국가 재정에 부담되는 공약은 무엇이라고 보나.

“많은 돈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를 발생하는 기준으로 보면 가장 걱정이 되는 공약이 문 후보가 내놓은 ‘연간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다. 의료비가 싸지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일로도 병원을 간다. 특히 고령화하면서 병원을 찾는 노인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의료 복지를 풀어놓으면 수요가 고무줄처럼 늘어나 그 부담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국민 세금으로 지원할 것이냐, 건강보험 시스템 안에서 소화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데 보험 원리가 작동하는 건보 재정 프레임 안에서 추진하는 게 수익자부담 원칙에 맞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한국금융연구원 사무실에서 18대 대선 주자들의 선심성 공약 경쟁이 국가 재정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편이지 않나.

“순식간에 나빠질 수 있다. 일본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0%를 넘는데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60%밖에 안 됐다. 일본 국가예산을 들여다 보면 60% 정도가 빚으로 충당하게 돼 있다. 세입세출이 이렇게 빚 투성이가 되면 국가가 꼭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못한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위기가 몰려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명박정부 5년 동안 당초 공약한 7% 성장의 절반도 달성 못했다. 앞으로 5년간 3%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큰 차이가 없다. 국가재정을 걱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 2년 정도 국가가 적자 내고 빚을 지더라도 경기가 회복되면 빚을 갚을 여력이 생긴다. 문제는 앞으로 5년간 경기가 좋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본지 여론조사에서 후보를 선택할 때 주요 선택 기준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정치쇄신, 정권교체보다 경제 살리기를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후보들이 다뤄야 할 이슈로도 경제민주화보다 경제성장이라는 응답률이 많았다. 경제 여건이 나빠지면서 유권자들이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이 큰 것 같다.

“그렇다. 박근혜 후보는 소위 경쟁 질서를 공정하게 만드는 것, 대기업이 횡포를 부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목표라고 말한다. 문재인 후보는 기본적으로 재벌이 너무 많은 기업을 거느리는 구조인 만큼 순환출자 해소 등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국민은 묻는다. 우리한테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냐고. 순환출자 문제에 관심 갖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 공정거래 질서가 만들어지고 대기업이 불법, 탈법 안 하고 기업이 성장하면서 사람을 많이 뽑으면 국민들에게 나쁠 것이 없다. 이런 공정한 경제를 만드는 데 새로운 제도가 거의 필요 없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공정거래위, 국세청, 검찰 등 공권력을 갖고 있는 기관들이 공정하게 법집행을 하면 경제민주화 목적의 80%는 저절로 달성된다. 그런데 안 되는 이유가 뭐냐. 대통령이 인사권을 갖고 있으니 청와대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의 청와대, 내각에서 죽 일을 해 오면서 그런 경험을 많이 하셨겠다.

“공권력을 갖는 기관의 장은 절대 선출직이 좌지우지하지 않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바꿀 수 있고 국회의원들이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이니 다운계약서니 이런 문제로 딴죽을 거는 수준으로는 안 된다. 국정원장, 국세청장,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 주요 기관장은 대통령이 임기를 보장하고 국회 동의 절차를 반드시 밟도록 인사청문회법 등 관련법을 고쳐야 한다. 지금은 음으로, 양으로 (권력 기관장이) 청와대와 상의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박, 문 후보는 차기 정권에서는 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주고 인사권도 상당 부분 넘겨주겠다고 하는데.

“내가 총리실에서 (행정조정실장·차관으로) 일했지만 총리에게 권한을 준다는 건 이론적으로 맞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틀린 말이다. 총리에게 권한을 주려면 총리가 정권을 만드는 데 기여할 때 가능하다. 지역 배려 차원에서 총리로 선출된 사람과 권력을 나눠 갖는다고? 총리실에서 일 좀 하려고 하면 청와대에서 ‘시키는 일이나 해!’라고 한다.”

-미국의 재정절벽 문제가 심각하고 일본,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 경제도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저성장 체제에서 후보들의 성장 담론은 눈에 띄지 않는데.

“미국은 재정절벽을 얘기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성장절벽’이 다가오고 있다. 저성장 체제가 되면 선순환하던 것들이 악순환하면서 금융부실, 자영업 도산, 실업자 양산 등 여러 문제가 터져 나온다. 잠재성장률의 변수는 노동, 자본, 혁신이다. 노동력은 저출산 문제로 앞으로 좋아지지 않는다. 자본도 국내 여러 가지 투자 규제가 많아 크게 기여하기 어렵다. 혁신이 가장 중요한데 공정한 경쟁 질서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절대 기술혁신의 동기가 생겨나질 않는다. ‘보편적 복지’를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경쟁 의욕은 더 줄어든다. 노력하지 않아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없어도 돈을 준다는데 누가 경쟁하려 하겠나. 대학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직업·기술 훈련을 받아 전문가로 일할 수 있도록 지원 시스템을 갖추는 데 돈을 쓰는 게 맞다.”

-민주당 의원 시절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당론에 반대했는데 문 후보는 당선되면 재협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지정학적 위치가 기술 수준이 높은 일본, 엄청난 규모의 중국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중국을 누비고 다녔지만 이제 웬만한 제조업은 중국이 다 따라왔다. 중국 같은 거대 나라에 눌리지 않으려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강력한 경제강국이 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미 FTA는 물론이고 한·중·일 FTA가 필요하다.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선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한·중·일 간 군비 경쟁이 없어진다. 경제공동체에 대만, 북한을 넣어 지역안보 문제를 풀 수도 있다. 남북 쌍방 간 경제협력만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지난 10년간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배우지 않았나.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는 길은 동북아,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대담=황정미 부국장 겸 정치부장, 정리=김예진 기자

강봉균 대표는? 

▲1943년 전북 군산 ▲서울대 상과대학, 미국 윌리엄스대학원 석사(경제학), 한양대 박사(〃) ▲경제기획원 차관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 ▲정보통신부 장관 ▲청와대 정책기획,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 ▲KDI 원장 ▲16·17·18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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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