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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국가 전시회에 참여했더니 남는 건 빚과 한숨뿐”

입력 : 2012-11-05 10:29:35 수정 : 2012-11-05 10: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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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쥐꼬리’… 대부분 작가 작품 제작환경 열악 미디어아티스트 김창겸(51)은 현역 최고의 영상설치미술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업은 가상의 오브제와 영상 이미지를 중첩해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데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어머니 엄윤주(82)씨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녀를 훌륭한 예술가로 키운 어머니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의 올해 수상자다.

국내외서 12년간 활동해온 미디어아티스트 김창겸의 ‘Water shadow four seasons’. 2012 대구사진비엔날레 특별전 ‘도시의 비밀’에 전시된 작품으로, 실제 물인 듯한 영상에 사계절 풍경이 나타난다.
이렇듯 작가로서 역량을 인정받으며 예술세계를 펼쳐온 그지만, 12년 작가 생활 동안 남은 것은 ‘빚과 한숨’뿐이다. 그는 국가 차원의 기획전, 비엔날레 등 대규모 전시에 초청작가로 활발히 활동해 왔다. 국내 정상급 작가로서 주최 측의 초청에 응한 결과였다. 하지만 초청작가를 위한 주최 측의 대우는 가혹했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는 비엔날레들이 출품 작가들에게 최소한의 인건비는 물론 작품 제작 중 발생하는 재료비와 교통비, 식사비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이 문화·예술국가를 지향한다면서 작가들을 문화사업을 위한 도구로 부려먹고 있습니다. 대다수가 전시의 핵심인, 일을 제일 많이 하는 작가에게는 인건비는커녕 작품 제작 중 발생하는 교통비와 식사비도 지급하지 않습니다. 인건비는 고사하고 재료비조차 건질 수 없습니다.”

김 작가는 지난 10년간 국내 대형 전시에 참여하면서 겪은 울분을 토해냈다.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광주시에 있는 전시공간을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비 7만원을 요구했다가 예술감독에게 불쾌하다는 말을 듣고 전시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2009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신호탄’전에 참여했는데, 미술관 측이 작가들에게 지원금을 준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지원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작가들 몇 명이 함께 항의했고, 결국 50만원씩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2012년 대구사진비엔날레에 참여했는데 전시가 끝난 뒤 주최 측으로부터 작품 반송비를 부담하지 않으면 공간 사정상 작품을 ‘파기’하겠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전시 뒤에는 작품이 남는다지만 주최 측의 요구에 맞추다 보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많다. “2003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물 위를 걷다’전에 동원돼 만든 작품은 청계천이라는 주제의 제한성 때문에 자료로도 못 씁니다. 주최 측은 새 작품을 만들라고 주문하고는 경비도 주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열린 ‘강남대로 미디어 폴 프로젝트-헬로! 미디어 폴’도 마찬가집니다. 강남구청 요구에 따라 변형된 스크린을 사용했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을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전시도 불가능합니다.”

매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수많은 미술 전시가 열린다. 국공립 미술관 기획전이나 국내 비엔날레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전시 기획자는 자신이 선정한 작가들에게 개별적으로 작품을 요청한다. 대형 전시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기회가 흔치 않은 작가들은 이 요청을 거절하기 힘들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작품 제작에 따른 비용 대부분을 작가가 떠안기 때문이다.

현재 전시 주최 측이 제작비로 주는 돈은 많아야 100만원을 넘기기 힘든 수준. 새 작품을 위해 평균 3∼4개월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한 달에 30만원 안팎의 돈이 지원되는 것이다. 2012년 현재 근로기준법에 따른 최저임금인 시간당 4580원, 월 95만7220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다.

문제는 작가가 한 전시를 준비하며 쓰는 비용이 5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든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작가는 “최근 지방 비엔날레에서 다섯 점을 전시했는데 액자 하나 가격이 60만원이라 액자 값만 300만원이 들었다. 재료비와 보정비, 프린트 비용 등을 포함하면 전체 제작비는 더 늘어난다. 게다가 전시를 하려면 대여섯 번은 지방에 왔다갔다하는데 지원금 100여만원으로는 교통비와 숙박비밖에 충당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전시 요청에 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작가는 “대형 전시에 이름이 올라가면 이력에 도움이 되고, 꾸준히 작품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적자가 나도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모(32) 작가는 “주최 측으로서는 전시를 하고 싶어하는 작가들이 널렸기 때문에 굳이 작가들에게 좋은 대접을 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작가는 철저히 약자의 입장에서 주최 측의 요구에 맞춰 작업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작가는 대형 전시에 초대됐을 때 욕심낼 수밖에 없고 작품에 투자하다 보면 출혈이 커지게 된다. 현재 시스템은 작가들이 비용을 알아서 충당해야 하고, 후원금이라고는 기업의 도움을 기대해보는 수준이다. 시원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시를 진행하는 측도 어려움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방 시립미술관의 이모 학예사는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돈은 뻔한데 한정된 돈으로 전시를 진행하다 보니 작가들에게 만족스러운 수준의 지원금을 줄 수 없는 건 사실이다. 구조적인 문제로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rb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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