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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의 ‘먹고 사랑하고 떠나라’] ⑮ 체코Ⅱ―전통 오리요리 카흐나와 체코 맥주 부데요비체 부드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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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8-19 23:13:06 수정 : 2012-08-19 23: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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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옆 마을’행 열차서 만난 소녀는 실레의 그림서 튀어나온 듯 프라하에 머문 지 나흘째, 여행지에서의 또 다른 여행을 감행했다. 목적지는 프라하 남서쪽 180㎞ 떨어진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에 있는 아름다운 체스키크룸로프. 전날 프라하에서 남동쪽 모라비아 지방의 브루노에 이어 두 번째 행로였다. 체코는 프라하를 중심으로 한 다섯 개의 보헤미아 지방과 브루노를 중심으로 한 모라비아 지방, 그리고 오스트라바를 중심으로 한 북모라비아와 슐레지엔 지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대개 서쪽은 보헤미아, 동쪽은 모라비아로 통한다. 프라하는 중앙보헤미아, 체스키크룸로프는 남보헤미아에 속한다. 크룸로프는 독일어로 ‘구불구불한 강 옆의 풀밭’, 체스키는 ‘체코의’라는 뜻. 그러니까 2012년 8월 2일 아침, 내가 서둘러 프라하 중앙역(Praha Hlavini Nadrazi)으로 향한 것은 ‘체코의 구불구불한 강 옆의 풀밭마을’에 가기 위해서였다.

체코 남서부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에 위치한 중세도시 체스키크룸로프. 고지대의 역에서 마을로 내려가면서 조망한 도시 전경이 마치 한폭의 그림과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름이 다가올 때면 나는 체스키크룸로프라는 길고 낯선 이름을 천천히 읊조리며 보헤미아행을 엿보았다. 강이 마을을 감싸안은 지형에 중세라는 시간에 멈춰져 있는 체스키크룸로프의 형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곳에 가려고 프라하 중앙역에 당도해서 체스키크룸로프라는 시골 역에 도착하기까지 하루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사정이 있었다. 8월 1일 아침, 전철로 중앙역에 도착하자마자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올라 7번 플랫폼으로 갔다. 프라하에 체류하는 동안 두 번의 지방여행을 계획했고, 단연 체스키크룸로프가 우선이었다. 그런데 플랫폼에 뛰어오르자마자 눈앞에서 열차가 떠나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9시17분. 다음 열차는 두 시간 후.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정을 변경하든지,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 했다. 문제는 다음 열차를 타면 체스키크룸로프에서 돌아와야 하는 마지막 열차시간이 너무 일찍 끊긴다는 데 있었다.

차선책으로 직행 열차가 매 시간마다 운행되는 브루노로 일정을 변경했다. 돌발성과 지연, 그리고 우회는 여행의 기본 항목. 십 년 전 바로 이곳 프라하역에서 나는 백 년 만의 대홍수라는 돌발상황에 맞닥뜨려 우회라는 것이 여행의 중요 요소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터득하지 않았던가. 브루노행으로 행선지를 바꾼 뒤, 한 시간 반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 즉시, 프라하에서 방문하려고 했던 장소들의 목록을 꺼내 가장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지척에 체코 국립박물관과 오페라극장, 그리고 안톤 드보르자크 기념관이 있었다. 프라하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 체코필하모닉이 상주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루돌피눔, 매년 5월이면 프라하의 봄 축제를 여는 스메타나홀, 카를교와 옛 시청사의 재즈 악사들과 블타바강변 말라스트라나 뒷골목의 거리의 악사들까지 다양한 멜로디가 울려퍼지는 곳. 체스키크룸로프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전날 7번 플랫폼에 당도해서 떠나가는 열차를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속절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던 순간을 환기했다. 목적지의 순서가 바뀌었을 뿐 오히려 열차를 놓쳤기에 안톤 드보르자크 기념관을 방문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프라하에서 체스키크룸로프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나처럼 열차로 갈 수도 있고, 여행사에서 주관하는 상품을 구입해서 전용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고, 자동차로 자유롭게 갈 수도 있다. 배낭여행을 하는 대학생들이 아니면 대부분 두 번째 여행상품을 이용한다. 버스는 프라하에서 곧바로 체스키크룸로프의 한복판(주차장)으로 진입한다. 그럴 경우 체스키크룸로프 역의 독특한 분위기와 역에서 20여분 걸으면서 내려다보는 전체적인 조망, 그리고 블타바강을 건너 부데요비치문을 통과해 마침내 도시로 들어가는 절차를 놓치고 만다. 이 절차야말로 여행자에게는 본질에 다가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탐색과정과 같은 것. 프라하에서 나흘 동안 머물면서 체스키크룸로프나 브루노로의 여행을 감행하는 것은 프라하를 충분히 보고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다. 프라하는 다음에 또 올 수 있을 수도 있고 영영 올 일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프라하를 등 뒤에 두고 멀리 동으로 서로 떠난 것은 보헤미아의 자연과 그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풍경을 잠시 바라봄으로써 프라하와 체코를, 나아가 세계를 이해하는 눈과 마음이 좀 더 다채롭게 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에곤 쉴레 아트센터.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 에곤 쉴레는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에 자주 와서 체류했고, 현재 양조장을 개조한 에코뮤지엄 형태로 문을 열고 있다.
체스케부데요비체에서 완행열차로 갈아탄 후, 일체의 음악소리를 배제한 채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보헤미아의 초원과 밀밭, 삼림에 빠져들었다. 체스키크룸로프가 가까워지자 삼림이 깊어졌고, 완행열차답게 간이역마다 정차를 했다. 역마다 한두 명 내리는가 싶더니, 열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 둘이 올라탔다. 무엇이 그리 재밌던지, 둘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발작적으로 까르르 웃곤 했다. 소녀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떤 한 생각이 떠올랐다. 가방에 애써 챙겨 넣어온 얄팍한 화집 한 권을 꺼냈다. 십 년 전 빈에서 대홍수로 발이 묶여 있을 때, 프라하로 가는 철길이 재개되기를 호시탐탐 엿보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빈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갤러리와 레오폴트 미술관에서 보내면서 아트숍에서 구입한 타센판 에곤 실레 화집이었다. 실레가 그린,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격렬한 ‘포옹’ 장면을 보면서 나는 ‘살면서 몇 번이나 그림 속 그들처럼 포옹을 할 수 있을까’ 자문하곤 했다.

특유의 에로틱하고 병적인 인물과 표정, 강렬한 색채와 캐리커처적인 선으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는 물론 세계 화단(畵壇)에 일대 충격을 주었던 실레. 흔들리는 열차 안, 맞은편에 앉아 속삭이는 소녀들을 보면서 나는 실레가 화폭에 그린 소녀들이 내 눈앞에 튀어나와 실재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불그스름한 머리칼과 초록색 눈동자, 불안정하게 그러나 폭발하듯 환하게 웃는 눈과 그 눈으로 인해 순간순간 변하는 얼굴 표정. 에곤 실레의 소녀들을 관찰하고 있는 동안 열차는 곧 체스키크룸로프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리니 프라하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찌는 듯한 더위가 엄습했다. 자전거를 앞세운 하이킹족들이 역사를 빠져나가고, 청년 둘이 광장이랄 것도 없는 조그마한 시골 역을 뒤로하고 천천히 햇빛 속을 걸어 내려갔다. 나도 그들을 따라 걸었다. 더위를 견디며 십여 분 땡볕 속을 걷자 저 아래 오렌지색 지붕의 집들이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물 사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앙에 높이 치솟은 성의 원형탑을 확인하고는 내리막길을 십분 여 더 걸어 부데요비체문에 이르렀다. 이 문은 일종의 성안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블타바강 건너 세워져 있었다.

체스키크룸로프성. 프라하성 다음으로 체코에서 규모가 크다.
체스키크롬루프에 가본 사람들은 프라하를 축소해 놓은 듯하다고 평한다. 그런데 부데요비체문을 통과해 내가 받은 인상은 좀 다른 것이었다. 강이 감싸안은 듯 흐르는 지형의 도시는 내게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같은 형태의 도시를 지난 몇 년간 여름마다 프랑스의 브장송에서 경험했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도시인 브장송이 견고한 요새형 도시라면, 체코와 오스트리아의 국경도시인 이곳은 보헤미안, 곧 이방인들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하루 이틀 머물고 가기 좋은 아늑한 피난처 같은 분위기였다.

유럽의 고도(古都)들은 모든 길이 성(城)과 광장으로 통한다. 중세와 르네상스기에 집중적으로 건축되고 단장되어 18세기 이후 전혀 변하지 않은 이 특별한 마을을 돌아보는 데에는 두 시간 안팎이면 충분했다. 모두 성으로 달려가는 것에 반하여 나는 오래된 시로카 거리에 있는 에곤 실레 아트센터로 향했다. 블타바강을 건너 성 안을 걷는 몇 분 동안 이국적이면서도 매우 익숙한 장면과 마주했다. 그것이 의아하게 생각되었는데 에곤 실레 아트센터에 들어서자 곧 해명이 되었다. 체스키크롬루프는 실레 어머니의 고향. 실레는 유년기부터 자주 어머니를 따라 이곳 외가에 들러 머물곤 했다. 화가가 되어서는 한때 이곳에서 작업하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시로카 거리의 옛 양조장 건물은 그의 이름을 딴 아트센터로 탈바꿈했다. 놀랍게도 이곳은 20세기 후반부터 새로운 흐름을 이끌고 있는 에코 뮤지엄 형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퇴폐적이고 성도착적인 에곤 실레의 이미지에서 친환경적인 뮤지엄 형태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한편 4층의 실레 관을 돌아보면서 그동안 내가 보아온 실레의 그림들이 거의 피상적인 수준임을 부끄럽게 자각했다. 동시에 실레가 그린 마을과 집들, 인물들을 표현한 색과 선은 모두 이곳, 어머니의 고향인 중세마을 체스키크롬루프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었다.

보헤미아 전통 오리오븐요리 카흐나. 허브를 얹어 오븐에 구워낸 오리와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와인으로 조리한 사워크라우트와 체코 찐빵 덤플링(크네들리키).
7시 마지막 열차를 타기 전에 조금 일찍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보헤미아 요리로 소문난 라제브니키교 옆의 파르칸으로 찾아갔다. 강변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이곳의 명물인 성이 정면으로 올려다보였다. 발 아래에서는 강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힘차게 흘러갔다. 수시로 두세 사람이 한 조가 된 카누가 물결을 타고 쏜살같이 지나갔다. 파란 하늘을 지루하지 않게 장식했던 하얀 구름이 밀려가고 성 뒤편에서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식사 시간보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지배인과 요리사들이 테라스에 나와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선 그곳 전통맥주인 부데요비체 부드바르를 청했다. 씁쓸한 듯 시원한 여운이 감도는 황금빛의 맥주 한 모금. 이 맥주가 세계적인 맥주 브랜드 버드와이저의 기원이라고 했다. 시원한 부드바르를 서너 모금 주욱 들이켠 후, 메뉴판을 정독하며 굴라쉬와 카흐나를 찾았다. 열차에서 햄버거로 대충 먹었던 점심을 보충할 겸 얼큰한 보헤미아식 비프 수프 굴라쉬와 오븐에 구워낸다는 오리요리 카흐나를 주문하려고 했다. 미소를 띠며 다가온 지배인은 내가 찾는 요리는 건너편 집에서 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맥주는 파르칸에서, 저녁은 건너편 집에서 하기로 유쾌하게 생각을 바꾸었다. 파르칸을 나서면서 지배인과 요리사들을 슬쩍 돌아보았다. 열차에서 만난 소녀들처럼, 실레의 인물들이 그들에게 오버랩되었다.

굴라쉬는 헝가리와 체코의 전통요리. 헝가리에서는 비프 스튜(수프) 형태이고, 체코에서는 메인 요리. 체스키크롬루프에서 맛본 굴라쉬는 큼직한 쇠고기 덩어리가 담긴 수프다.
새로움은 가장 오래된 것, 가장 깊은 것에서 비롯될 때 진정성을 갖는다. 체스키크롬루프가 새삼 나를 사로잡은 것은 과거의 유적지로 머물지 않고 에곤 쉴레라는 현대 예술가의 출발점으로 지금 이 순간과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뼈째 오리 한 마리를 오븐에 구워 내온 엄청난 양의 보헤미아식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밖에서는 천둥번개가 치고 삽시간에 강물이 불어났다. 그러나 지나가는 비였으므로, 식사가 끝날 때쯤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말끔히 그칠 것이었다.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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