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노래, 통과의례처럼 만나다

식을 줄 모르는 ‘김광석 노래’
영혼을 한 줌씩 뜯어 부르는 그 노래…삶의 문턱에서 통과의례처럼 만나다

청춘의 고비를 넘을 때마다 그의 노래가 들렸다. 애써 찾아 들은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김광석이 누군지 몰랐다. 언뜻 이름은 들었지만 그 노래의 절절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김광석을 만난 건 군에 입대하면서였다. 새벽 2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등병의 편지’는 일등병의 마음을 울렸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 보초병의 귓가에 김광석의 노래가 맴돌았다. 이내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이등병의 편지’ 구절구절은 그대로 고경민(33)씨의 심정이었다. 1999년 겨울 고씨는, 전남 장성에서 홀로 어둠과 외로움을 응시하던 일등병이었다. 그는 “그 노래는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일등병의영혼을 울렸다”면서 “어느 정도 공감하는 노래 정도가 아니라 들으면 바로 눈물이 났던 노래”라고 술회했다. 시대가 변해도 그 노래를 부른 김광석(1964∼1996)은 여전히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가객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추모 열기가 뜨거워지는 가수 고 김광석.
통과의례로 전승되는 노래


김광석이 떠난 지 16년이 지났지만 그의 노래는 여전히 사람들 곁에서 숨 쉰다. 각종 추모 앨범 발매에 이어 올해는 2월11일 제2회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도 열린다. 박학기, 동물원, 한동준 등 김광석과 한 시대를 같이했던 동료 가수들 외에도 아이유, 알리, 장재인 등 젊은 친구들이 새롭게 참여한다. 김광석의 기일인 지난 6일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린 ‘김광석 따라 부르기’의 우승자인 김건우씨도 특별 게스트로 무대에 오른다.

음악평론가들은 김광석의 노래를 ‘전승되는 노래’로 평가한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씨는 “인간의 정서를 건드리는 노래는 대를 이어서 전승된다”면서 “한 세대의 공감을 얻은 노래는 라디오, TV와 같은 대중매체뿐만 아니라 입소문을 타고 다음 세대로 흘러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씨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김광석의 노래를 삶의 문턱에서 통과의례처럼 만난다. 어느 순간 김광석의 노래가 인생의 한 갈피에 끼어드는 것이다. 특히 군 입대라는 인생의 중대한 고비를 넘는 대한민국 남성은 누구나 한번쯤 ‘이등병의 편지’를 듣는다. 그리고 제대 후 사랑의 꽃이 질 때면 ‘사랑했지만’을 찾는다. 좀 더 성숙한 영혼들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들으면서 황망한 가슴을 쓸어내린다.

통과의례의 절정은 ‘서른 즈음에’다. 동대문표 티셔츠에 붙은 ‘체 게바라’의 얼굴처럼 ‘서른즈음에’는 청춘을 돌아보는 하나의 절차이자 아이콘이 되었다. 체 게바라가 자유와 투쟁을 상징하듯 ‘서른 즈음에’는 듣지 않아도 그 자체로 때 묻은 청춘의 회한을 불러일으킨다.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씩 김광석의 CD를 꺼내 듣는다는 직장인 서윤석(43)씨는 “서른이 되면 인생의 방향이 어느 정도 결정되기에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면서 “그때 김광석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고 위로의 한마디를 던진다”고 말했다. 서씨는 지금도 삶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면 노래방에서 ‘서른 즈음에’를 부른다.

‘서른 즈음에’ 김광석 노래 중 1위


실제로 지난 한 해 김광석의 노래 중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린 곡은 ‘서른 즈음에’였다. 금영에 따르면 해당 곡은 전국 4만5000여개 노래방에서 22만5000여회 불렸다. 하루에 600번 이상 노래방에 울려퍼진 것이다. 금영(점유율 약 75%) 외에 다른 기기까지 합치면 하루 평균 800번 이상으로 추산된다.

‘사랑했지만’(15만5000여회), ‘이등병의 편지’(7만1000여회), ‘일어나’(4만7000여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4만3000여회) 등이 뒤를 이었다. 음악평론가들이 통과의례 성격을 지닌 김광석의 노래로 꼽은 곡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TV, 라디오, 공연, 노래방, 일반 매장 등에서 김광석이라는 이름으로 저작권료 수입 1위를 차지한 곡은 ‘일어나’였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자유롭게’ 등 상대적으로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이 2∼5위를 차지했다. 그 이유는 ‘서른 즈음에’(강승원 작사·곡) ‘사랑했지만’(한동준 작사·곡) 등은 김광석이 아닌 다른 사람이 쓴 곡이기 때문이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김광석은 탁월한 보컬리스트이자 기획자였다”며 “숨은 명곡을 자신의 경험과 몸으로 육화해 다시 불렀다”고 말했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이정선) 등이 다른 가수의 곡임에도 김광석의 노래로 기억되는 것은 그만큼 절절한 감성으로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김광석에 열광하는 이유


김광석은 한국 포크 음악의 대부이자 전설, 신화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밥 딜런’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삶의 고독감에 몸부림치다가 자살한 ‘엘리엇 스미스’와 비교하기도 한다. 공통점은 진정성 있는 노래를 들려주었다는 점이다. “들으면 눈물이 났다”는 고경민씨의 말처럼 김광석의 노래는 공감하는 이의 영혼을 울린다. 삶의 애잔함에 눈물 나게 한다. 부르는 이가 자신의 영혼을 한 줌 씩 뜯어 부르는 것처럼 스스로 그 노래의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김광석은 자신이 썼든 남의 곡이든 자신의 절박하고 순수한 정감을 실어 노래했다”며 “가수의 진정성은 듣는 이가 노래를 들으며 그 자신의 슬픔을 꺼내놓고 공감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진정성은 세대를 뛰어넘어 가객의 노래를 듣고 부르게 만드는 원동력인가. 서른세 살의 나이에 세상을 버린 김광석의 노래는 이미 영원히 오염되지 않을 전설의 반열에 올라선 것일지 모른다.

이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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