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도종환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발간

“내 생은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 황홀한 황혼을 기다리는…”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서)

‘접시꽃 당신’의 시인 도종환(57)씨는 5년 만에 펴낸 열 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 펴냄)에서 자신의 인생 시간을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쯤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질풍노도’의 12시와 오후 1시 사이를 기억하면서도 황홀한 황혼을 맞이할 수 있는 은은한 성찰의 시간쯤 되겠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 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중)

도종환씨는 이번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서 자신의 여러 인생 굴곡을 찬찬히 반추한다. 그래서 시의 정조는 계절로 보면 가을 오후쯤 될 터. 질풍노도의 분노를 넘어서고, 죽음 앞에 이른 절망 또한 아직 이른.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고/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서늘해진 손으로 내 볼을 만지다/ 내 품에 머리를 기대오는 가을의 어깨 위에/ 나는 들고 있던 겉옷을 덮어주었다/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걸/ 나도 알고 가을도 알고 있었다/ 늦은 가을 오후”(‘가을 오후’ 전문)

그는 1980년 광주민주항쟁 당시 군인 신분으로 언덕에서 M16 소총 가늠자를 들여다보며 광주시민군이 다가오기를 기다린 경험 이후 시대와 정면으로 맞섰다. ‘분단시대’ 동인 결성과 민족문학운동, 아내의 죽음, 해직과 구속과 복직 등. 또 심신피로로 쓰러진 뒤 교직을 그만두고 속리산에서 칩거하기도 했다. 이 같은 굴곡의 시간은 그에게 온유한 성찰을 선사했다. 

‘접시꽃 당신’의 시인 도종환씨가 5년 만에 열 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를 펴내고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고 노래한다.
창비 제공
“지금도 내 마음의 마당 끝에는 꽃밭이 있다/ 내가 산맥을 먼저 보고 꽃밭을 보았다면/ 꽃밭은 작고 시시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꽃밭을 보고 앵두나무와 두타산을 보았기 때문에/ 산 너머 하늘이 푸르고 싱싱하게 보였다/ 꽃밭을 보고 살구꽃 향기를 알게 되고/ 연분홍 그 향기를 따라가다 강물을 만났기 때문에/ 삶의 유장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꽃밭’ 부분)

도종환씨는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서서 예순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큰 바람이 지나갔지만, 이제는 오히려 자잘한 바람에 흔들리는 ‘풍치의 나날’이 기다리고 있다.

“바람이 사소하게 불어도 흔들릴 풍치의 나날과/ 둘 다 연금도 퇴직금도 없이 견뎌야 할 불안한/ 노후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허전해지는 삶의 한 모서리”(‘발치(拔齒)’ 부분)

그는 2008∼2009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아 집필실인 충북 보은의 구구산방과 서울을 오가기고 했다. 아마 때로는 막차를 잡아타고 가면서 총총한 별 하나 되기를 꿈꿨을 지도 모르겠다.

“흐린 차창 밖으로 별 하나가 따라온다/ 참 오래되었다 저 별이 내 주위를 맴돈 지/ 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 내가 별을 떠날 때도 있어도/ 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 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 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별 하나/ 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있고 싶다”(‘별 하나’ 전문)

김용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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