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에 스며든 ‘선조의 얼’… 고궁·사찰 300곳서 되살아나다 “단청은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단청의 문양과 색깔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제가 창안한 금박고분장구머리초는 조선시대 건축물에 나타난 단청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화려하고 정교한 맛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대의 풍요로운 생활상이 반영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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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장 양용호씨가 보수공사 중인 덕수궁 준명당 단청 작업을 하고 있다. 양씨는 복원작업은 선조들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계승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
경기도 구리시 작업실에서 만난 서울시 무형문화재 31호 단청장 양용호(61)씨의 말이다. 작업실에는 양씨가 전국의 옛 건축물 보수 및 복원 현장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단청 부재 및 기와 등 시대별 유물이 100점 넘게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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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광화문의 봉황도. |
“많은 장인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공방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전남 영광의 농가에서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제가 단청 외길을 걷게 된 데는 배움에 대한 남다른 열정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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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에서 많이 사용되는 금박고분 기법을 단청에 접목시켜 창안한 금박고분 장구머리초. |
양씨는 뭔가 배우고 싶은 욕심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왔고, 68년 한국화와 불화, 단청 등에 두루 능통했던 이인호 선생을 만나면서 전통문화 및 불교문화 전반을 배우게 된다. 전국의 사찰 복원현장을 돌며 단청·불화에 숨어있는 불교교리를 해석하는 재미에 빠져들면서 단청기술도 일취월장하게 된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지금도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이기 위해 각 대학원의 강좌들을 찾아다닌다. 양씨가 단청장으로 단청에 일가를 이루는 동안 동생들과 부인이 문화재청이 시행하는 단청기술자 시험에 합격하는 등 양씨 집안은 단청 집안이 되었다. 양씨가 문화재청으로부터 단청기술자로 인정받은 후 지금까지 시행한 전국의 사찰 및 문화재 복원공사만 300건이 넘는다. 창덕궁 인정전, 속리산 법주사 대웅전, 하동 쌍계사 대웅전, 제주 관덕정 등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도 모두 양씨의 손을 거쳤다. 지난 8·15에 복원공사를 마치고 일반에 공개된 광화문 단청도 양씨의 의해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1968년 지어진 광화문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조선시대 건축양식에서 많이 어긋나 있었다. 양씨는 올바른 복원을 위해 고종 2년(1865년)에 복원된 광화문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조선고적도보를 현미경까지 이용해 철저히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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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나 불교 건축물에서 많이 등장하는 비천도를 새롭게 창안했다. |
“광화문 복원은 선조들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올바르게 전승하는 작업입니다. 올바른 고증을 위해 밤을 지새운 날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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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장 양용호씨가 경기도 구리시 작업실에서 단청 문양 모사작업을 하고 있다. |
최근 천연안료가 화학안료로 대체되면서 궁, 왕릉 등 중요한 국가건축물과 주요 사찰에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단청이 공원, 호텔, 공항 등 현대식 건물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단청이 대중화되면서 기계식 작업으로 기교만 강조된 단청이 양산됐고, 전통적인 단청의 원형이 위협받게 되었다. “최첨단 칠 기술이 발달했지만 전통 단청은 붓으로 칠해야 합니다. 정교하고 선명한 전통 단청에는 우리 선조들의 얼과 기법이 담겨 있습니다. 승려들과 도화서 화원들에 의해 계승되던 우리 단청의 전통이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양씨는 옛 선조들의 정신이 배어있는 단청이 현대인들의 삶에 스며들 수 있도록 전통 단청의 대중화에도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글 이종덕 기자 salmon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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