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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관객과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청자와 연극을 초대하기도 하고 드로잉을 통해 맨살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계를 떠도는 유목민 같은 다국적 작가들은 소통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작업패턴을 제시한다. 전시장을 찾는 관객에겐 시원한 볼거리가 되고 더위 먹은 미술계엔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승택의 ‘현대화된 허수아비’.
◆미술 청자를 만나다


15일까지 열리는 전남 강진 청자축제는 ‘청자 아트 프로젝트(Celadon Art Project)’를 통해 미술이 잔치 현장에 조용히 스며들게 하고 있다. 참여 작가들도 고영훈과 배병우를 비롯해 이왈종·서용선·김선두·정현·유근택·김억 등 내로라하는 중량급들이다. 작가들은 청자와 현대미술의 만남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 가을부터 강진 곳곳을 답사한 뒤 나름대로 재해석한 작품을 내놨다. 전시공간도 청자박물관·도예문화원·영랑 생가·백련사 등 지역 명소를 고루 활용하고 있다. 자연스레 청자와 어울리는 그림들이 축제 관객들에 노출되는 셈이다.

팥이나 쌀 같은 곡식 낟알들을 깨알같이 그려 작업하는 정정엽은 팥으로 청자의 모양을 그렸고, 미국 만화 속 영웅 캐릭터를 재해석하는 위영일은 청자를 훔쳐 달아나는 외계인을 물리치는 울트라 슈퍼영웅을 위트 있게 표현했다. 미디어아트 작가 이이남은 테트리스 게임에 등장하는 블록을 여러 가지 청자의 모양으로 바꿔놓았다.

시인 영랑 김윤식이 살던 방에는 김근중의 모란 그림과 정종미의 미인도 병풍이 원래 있던 영랑의 초상화와 같이 놓였고, 비취색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백련사 만경루와 차를 마시는 다실에는 유근택과 이종구의 작품이 자리잡고 있다.

◇김선두의 ‘푸른밤의 여로’.
전시는 축제기간과 별도로 11월30일까지 이어진다. 내달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되면 광주와 강진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도 운영된다. (061)430-3710∼2

◆미술에 초대된 연극

전시와 영상 예술이 형식 파괴 연극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공연 제작사인 코르코르디움은 20∼29일 대학로 갤러리에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소재로 한 프랑스 연극 ‘파이의 시간’을 선보인다. 갤러리 입구에 조각과 설치미술 작품을 전시해 관객들이 공연 시작 전 30분 동안 작품을 감상하도록 한 뒤 연극을 시작한다. 갤러리 공간이 주는 느낌에 맞게 대본을 각색하고 연출 방식도 확장했다.

극단 그린피그는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전쟁이 주는 상처를 재조명한 창작극 ‘의붓기억’을 공연 중이다. 미술관의 지하와 1층 전시장을 넘나들며 선보이는 형식 파괴 공연으로, 희곡을 기반으로 하는 연극 형식에서 벗어나 연기와 음악, 영상, 미술 등의 장르를 한데 뒤섞었다.

극연구소 마찰은 지난달 6∼10일 여관을 개조한 전시 공간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이상의 시 ‘오감도’를 각색한 창작극 ‘곶나들이’를 공연해 큰 호평을 받았다. 배우들이 이곳저곳 옮겨다니면서 공연하는 즉흥극으로, 무대뿐 아니라 좌석마저 없애 관객들은 전시를 보듯 서서 관람했다. 미술이 연극적 고정관념을 깨 연극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는 평가다. 

◇서용선의 ‘출항2’.
◆새로운 작업 패턴을 꿈꾸다


대학로의 이웃한 아르코미술관과 옛 문화예술위원회 건물에선 여러 매체의 작업들이 서로 섞이고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달 5일까지 열리는 아르코미술관의 ‘노마딕 파티’는 다국적 작가 공동체인 ‘나인 드래곤 헤즈’와 공동 기획한 전시다. ‘노마드(nomad·유목민)’ 성격을 지닌 14개국 작가 26명의 ‘무대 파티’라 할 수 있다.

소통과 협업을 통해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섞여 들어간다. 뉴질랜드 마오리족 출신인 유진 한센은 전시장을 포함해 주변의 소리를 채집해 사운드 작업으로 구현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17명으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가 열기구를 타며 움직이는 장면을 담은 필 대드슨의 사운드 퍼포먼스 영상이 상영된다. 두 작품에서 나는 소리는 자연스럽게 스위스 작가 막스 뷰헬만이 높이 1.5m 나무합판 우주선 위에서 펼치는 퍼포먼스의 배경 음악이 된다. 퍼포먼스 현장 뒤에는 이승택의 설치 작품이 무대 배경처럼 자리를 잡았다. ‘노마드’ 작가들은 전시 중간 실크로드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둔황과 고비사막, 타클라마칸을 경유해 톈산산맥에 이르기까지 실제 유목민들의 이동가옥인 ‘파오’에서 생활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경험을 다시 작품에 반영할 계획이다. (02)760-4850∼2

◆작가의 내면 들여다 보기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드로잉, 작가들의 방’전은 작가들 내면에 숨겨진 진솔한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참여 작가는 김영미·변웅필·박재용·알랭 까르데나스-카스트로(프랑스)·나탈리 타쵸(프랑스)·리차드 홀란드(미국) 등이다. 드로잉이 단순히 스케치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감수성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회화의 한 장르로 인식해 가는 추세를 반영한 전시다. 6명의 작가는 이미지 채집을 통해 기억을 되새기는 작품들을 그려내기도 하고, 은폐된 기억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자신의 위치와 사회적 풍경을 위트 있게 그려내는 작가도 있다. 작가들이 자신만의 은밀한 방을 보여줌으로써 소통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기획자인 강효연 큐레이터는 “관람객 또한 자신들은 어떤 방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02)734-7555

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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