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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한림대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사무라이 이야기Ⅲ-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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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5-05 18:32:55 수정 : 2010-05-05 18: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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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투수 1대1 승부…현대판 사무라이 ‘맞짱’ 문 1: 미국의 국기(國技)는?

답 1: 야구입니다.

문 2: 그러면 일본의 국기(國技)는?

답 2: 역시 야구입니다.

◇구글 어스를 통해 본 일본 도쿄지역의 위성 사진. 한강의 둔치에 해당하는 에도가와 강변에 조성된 야구장들로 사진을 통해 보이는 야구장만 24개에 달한다.
제1회,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금메달. 프로야구팀 12개. 고교야구팀 4000여개, 사회인 야구팀의 수는 파악조차 할 수 없는 나라. 그런 일본은 누가 뭐래도 야구 실핏줄이 열도 구석구석까지 뻗어 있는 ‘야구의 제국’이다.

야구는 1872년 도쿄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 무려 3세기에 걸쳐 일본 최고의 스포츠로 대접받아 왔다. 특히 1936년에 일본 프로야구가 결성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야구제국’의 길로 들어선 이후, 현재는 국민의 90% 이상이 광적으로 야구를 즐기는 국가가 일본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에서 만들어져 미국의 국기(國技)로 인정받고 있는 스포츠가 야구다. 한데 미국도 아닌 일본에서 더더욱 환영받고 있는 야구를 보노라면 과연 야구의 종주국이 어디인지 헷갈릴 정도다. 실제로 도쿄에는 야간 조명시설까지 갖춘 잔디야구장이 동네에 한 개씩은 있게 마련이며, 중고등학생 및 직장인 등 다양한 연령대가 이곳에서 시합을 벌이곤 한다. 더불어 주말이면 인근 공원 곳곳에서 캐치볼을 즐기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 역시 낯선 장면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미국과 세계대전을 치르던 와중은 물론 패망한 직후에도 프로야구를 지속한 이력(履歷)의 소유국이 일본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비밀은 바로 야구만의 독특한 경기 방식에 있다. 9명씩으로 이뤄진 팀 간의 대결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꺾기 위해서는 반드시 1대 1의 대결에서 계속 승리를 거둬야만 하는 게 야구이기 때문이다.

◇2009년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출전한 일본 국가대표팀 공식명칭은 ‘사무라이 재팬’이었다. 사진은 당시 출범식에서 ‘사무라이 재팬’의 포스터를 들고 있는 하라 다쓰노리 대표팀 감독(가운데)과 오 사다하루 대표팀 고문(왼쪽) 및 가토 료조 일본 프로야구 커미셔너의 모습. 포스터에 칼 대신 방망이를 들고 있는 사무라이의 그림자가 이채롭다.
다시 말해 사무라이 간의 현대판 결투가 바로 투수와 타자 간의 1대 1 대결로 바뀐 경기가 야구라는 말이다. 타자는 사무라이의 검에 해당하는 방망이를 쥔 채 투수를 응징하러 타석에 들어서고, 투수는 그런 적을 공 하나로 쓰러뜨리기 위해 사력을 다해 투구를 하는 게임. 게다가 유도, 스모, 검도 같은 1대 1 대결에 각 팀이 9명으로 이뤄진 단체전까지 접목시켰으니, 조직과 집단을 최우선시하는 일본인들의 입맛에 딱 들어맞을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2009년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출전한 일본 국가대표팀의 닉네임 ‘사무라이 재팬’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무라이 재팬’이었던 것이다.

해서 일본의 남자라면 누구든 아버지로부터 캐치볼과 배팅, 스윙을 익혀가며 무사로 성장하는 자기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본의 야구 영웅 이치로가 모든 스포츠인들 가운데에서 단연코 우뚝 솟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야구를 사무라이 정신의 수양수단으로 가르쳐 온 아버지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실천한 야구인이기 때문이다. 동료조차 말 붙이기 힘들 정도의 모난 성격을 지닌 이치로를 달가워하지 않는 일본인들마저 그의 사무라이 정신만은 절대적으로 흠모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게 이치로와 함께 자라온 일본의 남성들은 값싼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엄격한 자기 관리 속에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나무의 뿌리와 줄기, 가지와 잎을 형성해 나간다.

◇한국은 무사들조차 다정다감하다. ‘사무라이 재팬’에서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불경의 극치라고나 할까? 사진은 부드러운 한국 남자의 대명사, 욘사마가 주연으로 활약했던 ‘태왕사신기’의 DVD 광고를 알리는 아사히신문의 TV면.
스포츠 바깥으로 눈을 돌려도 ‘사무라이 재팬’은 일본 사회 곳곳에 짙은 음영(陰影)을 드리우고 있다. 그 가운데 백미가 다름 아닌 ‘젓가락 놓기.’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식탁 위에 젓가락을 가로방향으로 놓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필자의 눈길을 끄는 것으로 ‘서양의 악수 기원설’과 유사한 것을 꼽아볼 수 있다. 상대방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상대방의 몸을 향하고 있는 젓가락을 가로로 누임으로써 손님을 안심시키려는 배려에서 일본 특유의 젓가락 놓기 문화가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마치 내 손에는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데서 서양의 악수문화가 생겨났다는 설처럼. 모르긴 해도 밥그릇을 들어 입가에 대고 먹는 것 역시, 언제나 주변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서였다면 이는 필자만의 지나친 억측일까? 양반다리를 한 채, 밥상에 고개를 숙이는 한반도식 체면으로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던 시절만 장장 수백 년이니.

덧붙이자면 일본인들이 지금껏 “다다미의 이음매 위에는 앉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건네는 훈계도 사무라이 문화의 유산(遺産)이다. 과거 기습과 매복·잠입이 횡행하던 시절, 닌자들이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와 다다미의 연결 부위에 앉아 있는 적들에게 칼을 찔러 넣었다는 이야기는 구전과 뒤섞인 진실이 되어 지금껏 전해져 오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일본 남성들이기에 웬만한 일에는 일희일비(一喜一悲)조차 하지 않은 채, 엄한 아버지가 되어 가족들의 절대적으로 지배자로 군림하게 된다. 해서 “개구리는 입을 벌리면 뱃속까지 다 보인다”든지 “석류처럼 입을 벌리면 마음속에 있는 것이 다 보인다”며 아들의 감정을 다잡는 것이 일본 아버지의 몫이다. “한마디라도 우는 소리를 내면 무사로서 부끄럽지 않게 널 죽이겠다”고 말한 메이지시대의 가쓰 가이슈(勝海舟) 백작 이야기는 지금도 일본 아버지들에겐 유효한 가르침이다. 그러고 보니 사내아이가 심한 잘못을 한 경우에는 법적 권리를 제한하는 금치산자(禁治産者)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것 또한 에도막부 시절의 아버지였다. ‘지진’ ‘벼락’ ‘화재’와 함께 일본인들이 무서워하는 마지막으로 인간인 ‘아버지’가 당당하게 들어가는 슬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데 한국은 어떠한가? 드라마 속 일본 남자들은 좀처럼 웃지도 울지도 않고 무표정한데, 준상(배용준)은 유진(최지우)의 목도리를 고쳐 주며 애정이 담뿍 담긴 눈길을 날리니 일본 아줌마들이 미쳐 버릴밖에. 해서 한낮의 일본 TV는 애정표현에 굶주린 이들을 위해 채널 전체를 한국 드라마로 도배하기 일쑤다. 사정이 이럴진대 한류의 반짝 운명을 걱정하는 일부의 목소리는 일본 남성들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오죽하면 하토야마 총리의 부인마저 남편을 버젓이 옆에 놓고 한류에 동참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일본 남성들은 가족마저 기피하는 슬픈 사무라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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