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람 "그녀가 없었으면 싸이질도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 기획자 이람
세계일보·퍼슨웹 공동기획
[대담한 문화읽기]아날로그式으로 디지털 사랑하기

1994년 7월 8일 당시 ‘인터네트’라고 불린 인터넷 서비스가 국내 첫 서비스된지 만 10년이 지났습니다. PC통신 사용자들이 ‘네티즌’으로 옷을 갈아입고 인터넷이란 대항해의 닻을 내렸습니다. 이후 사회, 문화, 정치 각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죠. 이제 ‘시민’과 ‘네티즌’은 다르면서도 같은 단어가 돼 버렸습니다. 이쯤 되니 사람들은 웹상에서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웹 정체성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서로의 통제를 벗어나기도, 때로는 온라인의 자아가 부쩍 커버려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기까지 합니다. 온라인 정체성이 형성된 무대는 주로 개인홈페이지, 포털사이트 동호회, 게시판 등이 돼 왔는데요. 최근에는 ‘미니홈피’와 ‘블로그’에서 1000만명이 넘는 네티즌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헌데 이 미니홈피와 블로그의 산파역할을 한 사람이 30대 초반의 한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온라인 커뮤니티 기획자 이람(32)씨가 그 주인공인데요. 그는 우리나라 온라인 커뮤니티 양대산맥의 기획을 맡았습니다. 커뮤니티 기획자인 그는 익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소한 역할을 맡고 있죠. 이에 세계일보와 퍼슨웹은 그에게 확대경을 비추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온라인 커뮤니티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엿보고 사람들의 웹정체성 문제를 살피고자 지난 23일 서울 삼성동 NHN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10년 전 PC통신은 디지털적 추억이다. 느릿느릿 펼쳐지는 파란 모니터 화면이 옛 애인 얼굴을 떠올린 듯 가슴 한켠을 따뜻하게 한다. 내가 쓴 글, 파란 화면 뒤 사람들과의 만남이 낳은 추억은 책갈피 낙엽처럼 바짝 말라 있다.
초고속인터넷 속도감이 주는 어지러움에 지쳐서만은 아니다. 우리 중엔 실제 PC통신 채팅방에서 사랑을 속삭였던 사이버 커플도 있다. 그뿐이랴. 어디서 그렇게들 ‘꼴통’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는지…. 세상의 불만을 다 짊어진 ‘반골’도 있었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대던 ‘기인’도 기억한다.
‘디지털’이라는 거품을 걷어내도 김샌 맥주 같진 않다. PC통신은 동시대를 살며 같은 이념과 감정을 공유한 ‘그들’만의 공간이었다.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의 산파 역할을 한 이람(32)씨도 그 핵심에 있었다.
“PC통신에 대해 사람들이 향수를 느낍니다. 이는 ‘반문화’적 속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때는 깨끗했어’, ‘우린 공동체였어’라고 말하는 것이 당시 PC통신 유저 그룹을 일반 사람들과 구분지을 수 있는 작은 크기였기 때문이죠. 인터넷이 대중화된 지금은 다르죠. 모든 시민이 같은 생각을 가진다면 전체주의 아니겠어요.”

‘향수’는 ‘사람들이’ 느낀다며 한발짝 뒤로 물러난다. 그는 PC통신을 ‘수평적인 경험을 못해 본 사람들의 먹물근성’이었다고 잘라 말한다. 마치 사춘기 시절, 겉멋에 담배를 피우고 술에 입을 댄 걸 후회하는 듯한 자조다. PC통신 시절을 이토록 혹독하게 매질하는 이는 첨이다. 게다가 정보통신(IT) 업계 사람이라면, 제 애비와 어미를 욕뵈는 꼴이 아닌가.
변심일까. 그는 대학 졸업반이던 1994년 나우누리 ‘찬우물’이라는 진보통신동호회의 주축이었고, 하이텔, 케텔 등과 달리 민간에서 설치한 BBS(모뎀으로 접속하는 게시판) ‘참세상네트워크’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한 이다. 참세상네트워크는 현재 ‘진보넷’의 전신. 95년 졸업 후에는 참세상네트워크의 웹진 ‘오늘예감’에서 필진을 맡았다. 4개 통신사에 매달 10만원 이상의 당시로선 거금을 꼬박꼬박 ‘헌납’해 ‘텔레콤지수’는 엥겔계수보다 높았다.
어떻게 보면 시간이 흐른 뒤 한걸음 뒤로 물러나 과거를 평가하는 역사학자의 모습 같다. 정확히 말하면 학자적 냉철함을 가진 온라인 커뮤니티 기획자의 그것이다. 온라인에서 그가 맡아온 역할은 인터넷 환경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진화와 궤적을 같이한다. ‘변심’은 PC통신의 물때를 좋든 싫든 벗겨 낼 수밖에 없는 그의 ‘업(業)’ 때문이라면 오해가 풀릴까.
그에게 온라인 커뮤니티 기획자라는 ‘업’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무엇이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사’를 마치 성경처럼 읊어댄다. 온라인에서 사람들간의 관계가 진화한 것은 필연적이고 예상 가능했다는 것이다.
“태초에 누군가가 기록한 개인 홈페이지가 있었겠죠. 자기 얘기를 하고 이를 정리하고 싶었던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었어요. 하지만, HTML(웹문서의 기본언어)이나 FTP(웹문서 출판 통신규약)를 모르면 불가능했던 기술적 제약이 있었습니다. 이후 하이홈처럼 홈페이지 제작 서비스를 통해 이 부분이 극복됐지만, 문제는 서로의 관계였죠. 개인 홈페이지들이 하나의 섬처럼 떨어져 있어 서로 제풀에 지쳤어요. 그 소통의 욕구를 해결해준 것이 블로그와 미니홈피입니다.”

마이더스 동아일보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 이전에 듣도 보도 못한 온라인 커뮤니티 기획자라는 업을 택한 계기가 됐다. 그때는 지금처럼 커뮤니티 기획자의 영향력이 이토록 커질지 몰랐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5대얼짱’ 카페 운영자가 대학에 특례입학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우연히 마이더스 동아일보 사장이 PC통신에 대한 그의 남다른 열정을 눈여겨 봐 ‘꼬마’였던 그에게 커뮤니티 기획팀장 일을 맡겼다.
“동아일보에서 커뮤니티 기획을 첨 맡았을 때는 PC통신하고 인터넷의 차이를 몰랐어요. 마치 당시 넷츠고나 채널아이가 수십억원을 들여 인터넷 PC통신이란 개념으로 닫힌 공간을 꾸민 것과 마찬가지였죠. 인터넷은 이동 비용이 전혀 없는 수평적인 망이어서 한 곳에 머무르는 PC통신과 달랐습니다.“
‘다름’을 절실하게 느낀 것은 싸이월드에서 ‘미니홈피’를 기획하면서부터. 2001년 싸이월드 창업자 형용준 대표는 “남자들이 만들어 후지니까 좀 세련되게 만들어 달라”며 웹기획에 일가견이 있던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서울 홍릉 카이스트 동아리방에 자리잡았던 작은 벤처업체에서 그는 ‘미니홈피’ 기획과 부대꼈다.
“이때 PC통신과 달리 인터넷에서는 서비스 제공자의 개입이 최소화돼야 함을 알게 됐어요. 툴(도구)은 제공되지만, 룰(법칙)을 만든는 것은 네티즌들이라는 거죠. 사실 PC통신 사업자들은 민감한 내용을 지우는 등 개입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사이버 스페이스에는 원칙도 대안도 없다’는 거지요.”

‘원칙도 대안도 없다’는 원칙(?)을 그는 이미 5년 전에 언급한 적이 있었다. 96년 오늘예감 가을호에 이같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은 미디어 관련 논문에 수차례 인용됐다. 미국에서 네티즌의 글을 검열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엑슨 품위법’이 통과될 쯤에 ‘사이버 스페이스 안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는 취지로 쓴 글이다. 한국의 한 대학생이 미국법에 칼끝을 겨눈 당찬 행보였다.
PC통신의 때는 벗었지만, 지금도 그 원칙은 변함이 없다. ‘툴이 먼저냐, 룰이 먼저냐’는 물음에도 그는 네티즌의 ‘룰’을 택한다. 최근 일부 블로거 마니아들은 네이버 블로그의 ‘정체성’에 대해 쓴소리를 퍼붓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가 가벼운 신변잡기와 여기저기서 퍼온 글로 도배돼 나만의 글을 쓰고, 의미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블로그라는 도구가 가진 본래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네이버가 블로거들에게 어떤 내용을 담으라고 할 권한은 없어요. 블로그라는 공간만 제공할 뿐이죠. 서비스 제공자로서 할 수 있는 얘기는 없어요. 단, 세상에서 자신만의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만 블로그를 쓸 수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엄숙주의라고 생각해요.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대화의 절반은 인용이잖아요.”
하지만 네티즌의 ‘자율’이 만능일 순 없다. 때로는 도구가 사람을 제약하기도 한다. 블로그라는 도구가 갖고 있는 영향력이 블로거 마니아를 낳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라는 ‘도구’는 전국민 대표 커뮤니티로 성장하면서도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기획자가 의도와 상관없이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실생활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깊이의 관계를 ‘1촌’이라는 단어로 단순화시켜 버렸다. 또 소년소녀 가장이 주머니에 ‘도토리’(미니홈피의 사이버 머니)가 부족해 느끼는 소외감은 누가 달래주나. 미니홈피란 것이 뭐가 그리 대수라고 아무것도 아닌 모니터 앞에서 자괴감을 느껴야 하나. 생년월일과 이름만으로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강력한 검색기능 때문에 수백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관음증’에 중독된 것. 그에 따른 프라이버시 침해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엿보고 상처주는 ‘희극’의 연속이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그는 “불평등성과 비합리성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살이”라는 논리로 접근한다.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가 개입해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 같진 않아요. 그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총체적인 경험이 쌓여 행복을 느끼게 되는 거죠. 저소득층 문제는 온라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온라인에서도 해결이 안됩니다. 온라인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은 환상이고 기만이죠. 그렇다고 불완전한 상황에서 완전하기까지 기다릴 수는 없지 않겠어요.”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의 문제’라는 그의 답변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은 비인간적이며 상업주의에 물든 서비스 제공자가 내뱉는 책임 회피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가 온라인 기획자이지만 항상 오프라인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치 않았다는 것도 ‘신뢰’를 준다. 미니홈피든, 블로그든 그녀가 개입한 곳에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묻어 있다. 현실의 웹 정체성과 온라인의 그것이 일치하는 것을 그가 꿈꾸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이상향이다. 그렇다고 온라인에서의 부작용을 보완할 장치를 마련하는 데 손놓은 것도 아니다.
“기획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의 행동방식을 잘 관찰하는 것이에요. 예컨대 사람들이 만났을 때 느끼는 첫인상이란 뭘까 등을 고민해서 나온 것이 스킨(블로그의 외형)이라는 개념인데요. 사람들은 외모만 뻔지르르하고, 코드가 맞지 않으면 사귀지 않죠. 이런 첫인상을 어떻게 온라인에서 표현할까 고민하는 거죠. 퍼스나콘(이모티콘의 일종)도 그런 노력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그는 ‘고전적 진보주의자’다. 고전적이며 인간적인 아날로그적 냄새를 풀풀 풍기지만, 변화를 꺼리는 ‘보수’는 사양한다. PC통신, 게시판, 싸이월드, 블로그 등 활동 무대를 옮기며 변신을 꾀했다. 그는 “미래에 미디어 환경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를 배신할 것이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다른 이에게 공감을 주는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행복을 느낀다는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매체 형식을 불문하고 사람들에게 그 행복을 선물하고 싶다. 그 자신에게도 추억이란 PC통신도, 싸이월드도 아닐지 모른다. 어린이 신문사에서, 중학교 때 교지 편집반에서, 고등학교 때 방송반에서 친구들에게 행복을 선물하던 그 설렘이지 않을까.
글 우한울, 사진 이종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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