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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리포트] 北에 부는 한류 바람

입력 : 2011-01-13 20:28:45 수정 : 2011-01-13 20: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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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드라마 보름후면 北서 유행… 주민 의식변화 촉매제로
청소년 가요·성인은 연속극 즐겨… 최신CD 거래價 노동자 한달 노임
北주민들, 南경제·문화 동경 넘어… 북한사회내 문제점 자각 수준까지
10대 청소년 A군,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전날 CD로 본 한국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 최신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 드라마 서너편은 봐야 친구들과의 대화에 낄 수 있다. 오늘 수업이 끝나면 반친구 B의 집에서 한국가수 ‘빅뱅’의 뮤직비디오를 볼 계획이다. 그들의 옷차림이 신기하면서도 멋져서 따라입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다.” 한류가 대세로 자리 잡은 동남아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북한 주민들은 은밀하게 남한 대중문화를 즐기고 있다. 청소년은 대중가요와 트렌디드라마, 성인들은 드라마와 영화에 열광한다. 주부들은 남한 가전제품을 구비한 주방을 자랑한다. 북녘땅에서 또하나의 ‘한류’가 조용히, 그러나 거대하게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아테나―전쟁의 여신’
◆남 대중문화 북 전역에… “‘겨울연가’ 거의 다 봤다”

북한에서 남한은 ‘아랫동네’로 불린다. 한국을 간접적이면서도 친밀하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남한 드라마의 영향이 컸다. 알음알음으로 퍼진 남한드라마는 이제 북한주민 대부분이 접했다는 게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탈북자단체 북한민주화운동본부의 서재평 사무국장은 “탈북자들 대부분이 ‘겨울연가’를 북한에서 봤다더라”면서 “드라마 여러 편을 본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겨울연가
남한 대중문화는 오래전부터 북한에 유입됐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은 저서 ‘피스메이커’에서 2002년 특사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대해 “인물 설정 등 대단히 잘 만든 영화”라고 칭찬했다고 소개했다. 과거 남한 대중문화가 당 간부 등 고위층을 중심으로 소비된 데 반해 지난 3, 4년간 그 저변이 일반주민들로 확대됐다. 장마당에서 알판(복제CD)이 거래되면서 상당수 주민의 돈벌이가 됐다. 남한 대중문화가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연관되면서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한 탈북자는 “다섯집 중 한 집 꼴로 CD재생기가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재생기는 중국 제품으로, 한 대에 북한권 만원선. 북한 노동자의 두달치 노임 수준이다. 남한 드라마 CD는 한장에 1000∼1500원, 최신작은 5000원까지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크릿 가든
파급 속도도 빨라졌다. 오늘 남한에서 방송된 드라마가 보름 뒤엔 북한 전역에 퍼질 정도다. 대부분 중국에서 위성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복사본이 제작되며 대규모 복제를 거쳐 밀수꾼 등을 통해 북한에 들어간다. 평양은 다른 도시보다 더 빨리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의 단속을 피해 재생기를 몇 가구가 돌아가면서 사용하고 함께 모여 보는 것도 북한 내 한류의 특징이다.

남한 대중문화의 인기는 남한 제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서 국장은 “북한 주부들 사이에서는 남한 믹서기 보유 여부가 부의 척도”라고 말했다. 가공식품이 흔치 않은 북한에서는 재료를 갈아 만드는 음식이 많아 믹서기가 주부의 선호 품목인데, 특히 남한 믹서기가 독보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현실 반추해 의식변화 기폭제로


탈북자 김모(45)씨는 1989년 방북한 임수경씨의 모습을 북한에서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스무살 조금 넘긴 아가씨가 청바지를 입은 모습, 그리고 당차게 나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남한이 북과 다른 곳이란 생각을 들게 했다. 주민들이 드러내진 않았지만 남한이 앞서 있음을 실감하게 된 계기였다”는 것이다.

◇추노
최근에는 남한 드라마가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탈북자들이 남한 드라마에 드러난 생활수준을 보고 남한이 잘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나은 삶을 찾아 탈북길에 올랐다.

최근에는 경제적 동경을 넘어 남한에 대한 긍정적 인식,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남한 대중문화를 수용하는 북한 주민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면서 “남한의 실상과 자신들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의식변화에 가속이 붙었다”고 진단했다. 초기에는 막연한 호기심, 새로운 이야기가 주는 재미에 끌렸지만 이제는 남한 드라마를 통해 북한 사회의 문제점을 자각하는 수준이 됐다는 것이다.

남한 대중문화가 체제이반으로 이어지면서 당국은 강도 높은 단속을 벌이고 있다. NK지식인연대는 평안남도 개천의 교화소에 남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적발돼 수감된 북한 주민이 1200명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욕구를 꺾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서 국장은 “폐쇄된 사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이제 막 문화적 욕구에 눈을 뜬 상황에서 어떤 수를 써서든 보려고 한다”며 “정작 단속하는 보안원들도 (남한 드라마를) 무척 궁금해해서 압수물을 자신들이 보기도 하고 열성적으로 단속하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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