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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OSS한국그룹은…장석윤 前 내무장관 요원 선발·훈련 맡아

입력 : 2008-09-09 09:45:16 수정 : 2008-09-09 09: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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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서상복 등 9명 적지침투 등 암약 미국 전략정보국(OSS)은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 말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을 배후조종하기 위해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그룹(Korean Group)을 창설키로 하고 요원을 모집했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주로 요원을 선발했다.

OSS는 또 한국그룹 요원 선발과 훈련을 담당할 ‘현장실험부대(FEU)’를 만들었다. 미 전쟁부의 특수기금으로 운영된 FEU에 장석윤 전 내무장관(1952년 1∼5월, 당시 상사)과 찰스 리 상사, 얼 S 벤 중사, 이태모 하사, 스탠리 D 최, 박기북 등 한국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장 전 장관은 1944년 7월 중국 충칭(重慶)에서 김구 등 임시정부 인사들과 접촉하는 한편 OSS 지부 설립 작업을 하다가 FEU 창립을 위해 급거 소환됐다. 앞서 그는 인도에 101부대원으로 파견돼 미군 전투원들을 위해 식량보급선을 확보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미국 정부가 전투 등에서 뛰어난 공을 세운 다른 나라 시민에게 수여하는 최고 등급 훈장인 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받았다.

한국그룹의 지휘관으로는 함용준 박사가 선발됐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등에서 강의했던 그는 미 해군정보국(ONI)에서 정보훈련을 받았으며 OSS에서 특수훈련을 받았다. 훈련은 캘리포니아주 뉴포트 해안에 있는 ‘서해안 훈련센터’에서 1945년 3월부터 약 2개월간 실시됐다. OSS는 그를 지휘관으로 활용하기 위해 1945년 1월 미국에 귀화시킨 뒤 같은 해 3월 ‘임시’ 대위 계급장을 달아 주었다.

OSS 한국그룹 요원으로 최종 선발된 사람은 이종석(Frank Lee), 서상복, 남궁탁(Peter Namkoong), 이경선, 이창희, 김순걸, 김추항(David Kim), 김훈(Chester Hoon Kim), 해리 리(Harry Lee) 등 9명이었다. 서상복은 프린스턴대 대학원에 재학 중 행정업무 전문가로 채용됐으며 한국그룹의 수석요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23세로 가장 나이가 어렸던 해리 리는 예일대 중국어학교에서 언어심화 훈련을 받았으며, 다른 요원들은 캘리포니아주에서 특수훈련을 받았다.

대부분 30∼40대였던 이들은 다른 미국 요원 4명과 함께 1945년 8월 1일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 도착했다. 이들의 임무는 중국 충칭에서 한국인 등 200명을 모집해 한국 침투훈련을 시키고 지하 네트워크를 구축해 정보수집 및 분석, 역공작을 추진하는 것 등이었다.

워싱턴=한용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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