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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준의 7080사람들]'소리새' 황영익 30년만에 첫 솔로앨범

입력 : 2013-04-29 14:59:19 수정 : 2013-04-29 14: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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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곡 '그대 그리고 나' 당시 100만장 대박

 

“푸른 파도를 가르는 흰돛단 배처럼/그대 그리고 나/낙옆 떨어진 그 길을 정답게 걸었던/그대 그리고 나...”

7080세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노래다. 감미로운 음성에 서정적 가사는 듣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든다. 라이브 카페에 가면 신청곡 상위권에 올라 있는 곡으로 발표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람들에게 포근함을 안겨준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소리새’. 하지만 현재 ‘소리새’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두 개의 듀오가 활동하고 있다. 1981년 김광석(고인이 된 김광석과는 동명이인)과 한정선, 그리고 황영익이 모여 ‘솔개트리오’를 결성했고, 1988년 몸이 안 좋았던 한정선이 빠지고 한영이 가세하면서 ‘소리새’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다 20여년을 함께 했던 김광석과 황영익이 2001년 헤어지면서 서로 다른 ‘소리새’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김광석은 현재 윤기환과 함께 활동하고 있고, 황영익은 신성철과 또다른 ‘소리새’로 음악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봄이 완연한 지난 26일 인천시 문학경기장이 바라보이는 한 카페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한 지 30년이 넘은 시점에서 첫 솔로앨범을 낸 황영익을 ‘강상준의 그리운 얼굴’이 만났다.

 ▲ ‘소리새’는 40~50세대에게는 아주 친숙한 이름입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곡이나 가사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소리새’를 소개해주시죠.

“1981년 솔개트리오로 시작해 1집 <연극중에서>, 2집 <여인>, 3집 <넌 외로운 그림자> 등의 앨범을 내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멤버 중 한명이었던 한정선이 몸이 안 좋아 한영으로 교체되면서 1988년 소리새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1990년에는 김광석이 솔로앨범 <사랑하려네>를 발표했고, 1992년부터는 김광석과 제가 듀오로 활동했지요. 2001년 김광석과 헤어졌고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지금 소리새로 활동하는 듀오가 두 팀이 있는 기묘한 일이 벌어졌지요. 하지만 모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니 팬들께서는 소리새 두 팀 모두 사랑해주셨으면 합니다.”

▲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인천에서 가장 큰 무아 레스토랑에서 가수를 뽑는다고 해 응시를 했습니다. 기타도 칠 줄 몰랐고, 노래도 한 경험이 없었지만 그냥 가수가 하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했는데 4~5차례 낙방했어요.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레스토랑의 지배인에게 부탁해 당시 활동하고 있던 한정선 씨의 무대를 매일 구경하면서 한정선 씨와 친해진 것이 계기가 됐어요.”

솔개트리오를 결성한 것은 언제고, 음반을 낸 기막힌 사연이 있다고 들었는데.

“한정선 씨와 친해지면서 김광석 씨가 합류해 1980년 12월 인천 돌체소극장에서 솔개트리오라는 이름을 내걸고 첫 콘서트를 열었어요. 이 콘서트에 이영식 선배가 게스트로 출연했어요. 사실 한정선 씨는 당시 인기를 누렸던 이영식 선배와 콘서트가 끝난 뒤 서울 안타음반에서 듀엣곡을 발표할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음반을 녹음하러 가기로 했던 날 이영식 선배가 빙판에 넘어져 다리가 골절되면서 그 계획이 무산됐죠. 이 때 한정선 씨가 안타음반 안치행 사장께 인천에서 노래하는 그룹이 있다고 소개해 앨범을 제작하게 됐어요. 참 우연하게 기회가 찾아온 셈이죠.”

▲그래도 음반을 내려면 실력을 검증받아야 했은 텐데.

“한정선 씨의 소개로 안타음반에 함께 갔더니 안 사장께서 노래를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안 사장께서는 노래를 듣자마자 음반을 취입하겠다고 해 한달만에 음반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1981년 1월에 솔개트리오의 첫 앨범 <연극중에서>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됐습니다.”

▲ 음반을 내고도 순탄한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예. 조금 활동을 하려고 했더니 영장이 나왔어요. 8곡을 추려 첫 음반을 만들었는데 영장이 나오니 황당하더라고요. 하지만 어찌합니까. 8월에 군에 입대했으니 겨우 7개월 활동한 것이죠.”

▲전역한 뒤에는 어떻게 활동했나요.

“1983년에 다시 모여 연습했어요. 음반을 낸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또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습만 죽도록 했지요. 그러다 1985년 2집 <여인>을 발표했는데 이 때는 한정선 씨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돼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또 그렇게 연습만 하면서 세월을 보내다 1988년 한영 씨와 만나면서 소리새로 개명하고 <그대 그리고 나>를 발표하게 됐습니다.

▲'그대 그리고 나'는 소리새의 대표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피소드도 있었을 텐데.

“처음에 이 노래를 가지고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한 음반회사에 갔었어요. 그런데 그 곳 사장께서 조영남 선배의 <지금>과 너무 비슷하다며 퇴짜를 놓으셨어요. 할 수 없이 다시 안타음반으로 갔더니 안치행 사장께서 음반을 내 주셨죠. 이 음반은 100만장 이상이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고 우리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해줬지만 수입은 단 한푼도 없었어요. 당시 가요계가 그랬거든요.”

▲'그대 그리고 나'는 전주 부분이 무척 길었던 것 같은데.

“예. 대작의 이미지라고 해야 하나요. 전주 부분이 1분가량 됐어요. 이래가지고는 방송도, 활동도 할 수 없다고 해 김기표 선생님을 만나서 편집을 했지요. 이 노래가 뜰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엄청 반응이 좋더라고요. 사실 이 노래가 대중의 인기를 끈 데는 강부자 조영남 선배님들의 역할이 컸어요. 열린음악회에서 조영남 선배님이 노래를 불렀고, 노래방 등에서 강부자 선배님이 애창하셨거든요. 아직도 이 노래가 조영남 선배님의 노래인 지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 영화에도 출연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대 그리고 나' 덕분이죠. 김응천 감독님의 <그대와의 마지막 춤을>이라는 영화였는데 최민수 씨와 신혜수 씨가 주인공이었어요. 그 영화에 록커로 나온 최민수 씨의 친구들로 출연했었습니다.”

▲ 노래인생 30년만에 첫 솔로앨범을 냈어요.

“이제 막 앨범이 나왔는데 조금씩 반응이 오고 있어요. 듀엣과 트리오를 하면서 많은 음반을 내놓았지만 솔로앨범은 다르더라고요. 제가 39세에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는데 솔로앨범은 마치 자식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팀으로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포크계통의 음악인데 <먼지없는 이 세상에>와 <사랑하는 날에는>이 대표곡이에요.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 연예인 축구단으로도 활동하고 계시죠.

“최백호 선배님이 단장을 맡고 있는 앵무새 연예인축구단의 부단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흥국 씨와 높은음자리의 김장수 씨 등이 소속돼 있죠.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서 운동도 하고 친목도 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3년전 피스스타컵 연예인 올스타팀에 선발돼 올스타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MVP가 되기도 했습니다.”

음악인생 30년만에 첫 솔로앨범을 낸 황영익 씨는 “첫 아이를 낳을 때의 기분”이라며 들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 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황영익이 솔로앨범으로 다시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뉴스팀 wtod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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