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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지만 없으면 안되는… 정재영의 이유있는 밥타령

입력 : 2012-11-15 21:52:42 수정 : 2012-11-15 21: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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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인범이다’ 최형사역 정재영 “다른 데서 노출이 안 되고 특유의 개성이 없고 평범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표현할 수식어가 자리잡히지 않은 듯하다고 하자 배우 정재영은 이렇게 답했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는 ‘웰컴 투 동막골’의 인민군 장교 리수화, ‘이끼’의 천용덕 이장을 연기해도 ‘정재영’ 이름 석자보다 영화를 각인시키는 쪽이다. 좋게 보면 물처럼 어디에든 스며드는 배우라는 뜻.

정재영은 TV에 자주 모습을 비추지 않는 데 대해 “드라마는 섭외가 안 들어온다. 진짜로 최근 2년 이상은 한 번도 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며 “평소에는 재밌는데 멍석을 깔아놓으면 쑥스럽고 멋쩍어해서 예능에는 재능이 없다”고 밝혔다.
김범준 기자
“제가 의도한 건 오히려 그런 거예요. 5분 지나면 정재영이 없어져야 영화를 보는 데 방해가 안 되거든요. ‘저 인물이 어떻게 될까’ 해야 몰입할 수 있고,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론적으로는 자기가 자기 연기를 봐도 까먹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데, 사실 말도 안 되죠.”

이런 그가 최근 형사 역할로 영화에 스며들었다. 정병길 감독의 ‘내가 살인범이다’에서 17년간 연쇄살인범을 추적한다. 이 영화는 정 감독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신인 감독은 연출력이 검증되지 않은 데다 관객의 기대감도 적다. 위험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제가 신인 감독님들과 많이 했어요. ‘카운트다운’ ‘바르게 살자’ ‘나의 결혼 원정기’ 등 5∼6번 해봤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요. 여러 편을 만든다고 잘하는 건 아니에요. 항상 부딪치고 헤쳐나가야 하는 건 똑같죠.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영화를 여러 편 했지만 항상 잘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는 시나리오에 끌려 정병길 감독과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진실돼 보이고 좋았다. “거의 대답만 하고 말이 없으셨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그가 정 감독의 돌파력과 집념을 눈치챘을까. 촬영이 시작되자 첫날부터 고생길이 펼쳐졌다.

“제일 처음 막걸리집 장면만 30시간 정도 촬영했어요. 깜짝 놀랐죠. 첫날부터 너무 빡센 거 아닌가 하고요. 그러고 나서는 열흘간 12시간씩 겨울 밤에 비를 쫄딱 맞으며 찍었어요. 범인을 쫓으며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장면을요. 하고 나니 영화 한 편을 찍은 거 같았어요.”

두 번째 액션에서는 자동차 2대와 앰뷸런스가 앞뒤·옆으로 쉴 새 없이 부딪치며 쫓고 쫓긴다. 배우 박시후는 이 자동차들의 보닛과 지붕 위를 옮겨다닌다. 정재영은 운전대만 잡았다. 쉬워 보이지만 차간 거리를 계획대로 맞추는 일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운전 잘하는 대역을 써도 될 법하지만 정 감독은 완벽을 원했다.

“혹시 카메라에 얼굴이 나올지 모르니 저보고 운전을 하래요.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는데 계속 제가 한 거예요. 편해 보이지만 차간 거리를 맞추느라 속에서는 정신 없었죠. 앰뷸런스를 세게 들이받으라는데 해본 적이 있어야죠. 사실 차 안에서 은근히 고생한 사람은 저예요. 열심히 하고도 티가 안 나죠. 하하.”

마지막에 5t 활어수조트럭을 몰 때는 브레이크를 조금만 밟아도 차가 턱턱 서 몸이 튕겨나갈 듯했다. 무서워하는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이 와중에 몸싸움까지 했다.

“무서운데 재밌는 면도 있어요. 문짝 잡고 올라타고, 이런 건 브루스 윌리스가 하는 건데…. 좀 더 젊었으면 잘 했을 텐데, 힘들더라고요. 60대인 브루스 윌리스도 하는데, 제가 감히 엄살을 부리면 되겠어요?”

이 영화에서 정재영은 집에서 방귀를 뀌고, 자면서 엉덩이골을 드러낸 채 벅벅 긁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사람이 밖에선 넥타이 딱 매고 완벽해도 집에서는 안 그런 것처럼 좀 헐렁한 인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엉덩이 내리는 건 감독님이 아주 치밀하게 요구했어요. 더 내리라고 했어요. 지금도 아쉽대요. 박시후가 내리면 ‘오∼’ 이럴지 몰라도 제가 그러니 민망한데 말이에요. (감독이) 자기는 잘 안 보인대요. 손으로 긁고 있다고. 엉덩이 골에 집착하는 감독은 처음 봤네요.”

영화배우 14년 경력의 정재영은 ‘밥’ 같은 배우를 목표로 한다. 아무리 화려한 반찬이 있어도 밥이 없으면 못 먹기 때문이다.

“질리지 않는, 없는 듯하지만 없으면 큰일나는, 전면에 나와 있지만 전면에 나와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20년 동안 저 사람의 연기를 봤는데 질리지 않는다’ 이게 이론적 목표죠. 생각처럼 되진 않아요. 불가능할지도 몰라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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