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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조에게서 어떤 것들을 물려받을까? 여기 이 남자, 맷은 하와이 관광 중심지가 될 법한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그들 가문은 이 아름다운 땅에 간혹 캠핑을 오기도 하고 추억을 쌓기도 한다. 하와이, 우리에게는 야자수와 금빛 모래밭이 깔린 휴양지이지만 이들에게는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다. 게다가 아주 오래전, 우리가 기억할 수도 없는 아주 먼 조상들부터 살아왔던 바로 그 땅이기도 하다.

영화 ‘디센던트’는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자손, 유산과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사실 이 영화는 식물인간이 된 아내와 그녀의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이니 말이다.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매각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서브 플롯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내가 곧 죽게 된다는 것. 그런데 황당하게도 이 문제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발생하고 만다. 아내는 남편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이혼까지 각오한 상태였다. 게다가 맷 빼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내에게, 남편 맷은 후회와 죄책감을 느낀다. 아내의 부정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동안 왜 잘 해주지 못했을까, 왜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라며, 이별의 인사조차 나눌 수 없는 아내를 보고 아파한다. 하지만 아내에게 불륜의 대상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자 그의 감정은 뒤집히고 만다. 식물인간이 된 상태니 따지지도 못하고, 윽박지르지도 못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사람 감정이 손바닥 뒤집듯 참 간사하고 우습다.

어떻게 보자면 이 간단한 이야기들은 따로 떼어 놓아도 영화가 될 법하다. 아내의 예고된 죽음 앞에 반성문을 쓴다면 멜로드라마가 되겠고, 아내의 부정에 슬퍼한다면 ‘외출’ 같은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런데 ‘디센던트’는 이 감정과 사건들을 동일한 이야기 속에 배치한다. 살다 보면 이렇게 황당한 일이 동시에 연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영화처럼 인생은 중심사건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니 말이다.

‘디센던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갑작스러운 ‘비극’을 맞이하는 그들의 태도이다. 슬퍼하고, 미안해하던 맷은 분노와 질투에 사로잡혀 아내의 정부를 찾아 나선다. 그 녀석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심정에서 말이다. 이 여정에 우스꽝스럽게도 두 딸과 첫째 딸의 남자친구가 동참한다. 아내의 정부를 찾는 과정에서 딸은 본드 걸처럼 아버지의 첩보전을 돕고, 아빠는 아빠대로 불량한 남자친구가 딸의 침대에 파고들진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식물인간이 된 아내라는 비극적 상황은 정부가 끼어들면서 아이러니가 되고 그를 쫓는 추격극에 두 딸이 개입하니 이 여행은 점점 코미디가 되어 간다. 그런데 이 웃음은 우리가 살다 보면 겪게 되는 생활형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어마어마하게 심각한 순간에도 엉뚱한 일들은 참 많이도 일어난다.

어쩌면 이들 가족은 ‘엄마’라는 돛을 갑자기 잃어버린 작은 배일지도 모른다. 아직 두 딸은 노도 저을 줄 모르고 아버지는 돛대로 서 있는 것만도 벅찬데, 갑자기 돛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배는 가라앉거나 전복될 수는 없다. 부족한 채로 어렵사리 함께 가는 것, 고통과 기쁨, 질투와 슬픔도 나누는 것,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맷은 두 딸과 세상에 남는다. 두 딸은 아내가 남겨 준 소중한 유산이다. 그리고 또 삶은 흘러간다. 어제처럼 오늘도 함께 TV를 보며 하루를 접는다.

생애 최고의 위기부터 최악의 질투까지 다양한 감정을 연기한 조지 클루니의 호연도 돋보인다. 자칭 아빠의 든든한 지원자인 첫째 딸도 눈에 띈다. 과장하지도 호들갑 떨지도 않는 희비극을 만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세상 보는 눈에도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렇게 비바람이 불어도 일엽편주, 작은 배는 인생이라는 바다를 건너간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작품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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