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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결혼은 미친짓이다

입력 : 2012-02-02 21:41:18 수정 : 2012-02-02 21: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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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선’ ‘결혼, 그거 꼭 해야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세요? 동거 중이세요? 교제 중인 이성 친구가 있나요? 아니면, 섹스 파트너가 있다고요? 이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이 영화를 꼭 보시라고요.

TV 속 수많은 연애 이야기들, 극장에 걸리는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들은 실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모습과는 어딘가 모르게 달라 보인다. 도무지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스타들의 화려한 외모는 차치하더라도 운명적 사랑, 지고지순한 로맨스, 플라토닉 러브 판타지 등은 영화 속 세상이라서 가능한, 우리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로만 비쳐진다. S라인 외모에, 일 할 맛 나는 직업, 요리도 척척, 육아도 척척, 집에서도 밖에서도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힘을 발휘하는 TV 속 ‘슈퍼우먼’들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선남선녀가 만나, 예쁘게 꾸며진 집에서 알콩달콩, 함께 장도 보고, 여행도 다니는 콘셉트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의 커플들은 또 어떠한가. 이 밖에도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초능력’ 부모들과, 한 없이 ‘이상적’인 부부들을 영화 속 혹은 드라마에서 매일 만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안티-결혼 다큐멘터리 ‘두 개의 선’은 결혼에 대한 맹목적인 핑크빛 환상에 물음표를 던지며, 결혼과 육아에 대한 생생한 현실을 보여준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결혼하여 사는 삶이 그렇게 행복하기만 할지, 그러한 행복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을 공유해보자는 영화다.

다큐멘터리 감독 ‘지민’과 대학 시간강사 ‘철’은 6년째 동거 중이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게 결혼과 뭐가 다를 게 있냐고 주위 사람들은 묻지만, 이 커플은 결혼제도를 거부한다. 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더러는 이들을 가리켜 ‘이기적’이라거나 ‘철이 없다’고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조금 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게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넘어 집안과 집안의 관계가 되어 버리지 않냐고, 그 속에서 정작 당사자들의 관계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냐고 이들은 질문한다. 또 가부장제 사회에서 결혼이란 남자에게 남자의 역할을, 여자에게 여자의 역할을 강요하는 틀이 아니냐고 따진다. 하지만 동거라는 형태로 적당한 긴장감과 자립심이 유지되던 일상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임신 테스터에 나타난 ‘두 개의 선’이 의미하는 대로 ‘아이’라는 존재가 그들 사이를 파고든 것이다. 

결혼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에 물음표를 던지는 다큐멘터리 ‘두 개의 선’.
발칙하기 그지없는 우리 시대 청춘들의 연애이야기 ‘두 개의 선’은 기존에 별로 다뤄지지 않던 동거와 혼전 임신, ‘비혼’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주인공 지민씨가 실제 임신을 하게 되면서 겪는 고민과 갈등, 출산과 육아까지의 치열한 기록을 담아내고 있다. 개인의 삶과 인식 체계를 옭아매는 결혼이란 기존 제도를 거부하려던 이들의 저항은 아이 출산 후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출생신고를 하는 절차부터 현실적인 난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동거 커플의 아이까지 사회 복지 체계 안에서 보호하는 선진국들과 달리, 법적 혼인 관계에서 출생한 아이만을 일반적인 기준으로 삼는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만 하다. 아기가 선천성 이상으로 태어나자마자 큰 수술을 받게 되면서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이들 커플은 어쩔 수 없이 혼인신고를 하게 된다. 자그마한 서류에 자그마한 도장을 찍은 이후 편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다. 모를 무언가와 싸우다 졌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피하고 만 나약함에 대한 부끄러움도 남았다. 차이를 인정해달라 고집 피우는 일에 지쳐서 도망쳤고 한편으로 아이가 눈에 밟혀 멈추고 말았다. 단지 다르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을 뿐인데….

서로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평범한’ 연인이지만, 남들 다 하는 결혼을 거부하는 ‘평범하지 않은’ 이 남녀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결혼을 정말 꼭 해야 하는 거냐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재현되는 이성애 중심의 가족주의, 가부장제, 순결주의, 결혼제일주의 등을 모두 벗어 던지고, 젊은 청춘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음직한 이야기들, 특히 ‘두 개의 선’으로 상징되는 임신에 대한 공포와 결혼에 대한 고민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갖는 의미는 크다. 굳이 결혼제도, 비혼 등의 어렵고 거대한 언어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어느 커플이 연애하고, 아이를 갖고, 울다가 웃다가 또다시 사랑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저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로 내 안에 성큼 들어와 있는 ‘두 개의 선’을 발견하게 될 듯싶다.

주인공들이 기존 체제에 점점 순치되어가는 과정이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저항의식과 질문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제도에 속박당하는 아이러니한 현 사회를 조명하는 만큼, 비슷한 고민을 해봤을 이 시대 많은 남녀의 공감을 끌어들이며 우리 사회에 ‘새로운 인식’이 필요함을 깨닫게 하는 영화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와의 작업 역시 흥미롭다. 두 주인공의 지난 연애사와 어린 시절 등은 촬영을 통해 보여주기가 어렵기에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찾자면 애니메이션이 제격이다. 이다의 일러스트를 직접 움직여 촬영함으로써 마치 애니메이션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데, 이는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이다의 일러스트는 그 자체로도 눈길을 잡아끌 만큼 인상적인 매력을 발산할 뿐 아니라, ‘두 개의 선’의 도발적이고도 발칙한 느낌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빛난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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