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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를 좀 부순다 하더라도 인물이 살아 있는 영화 찍고 싶어”

입력 : 2010-07-29 18:44:22 수정 : 2010-07-29 18: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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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저씨’ 이정범 감독
'사람은 결국 똑같잖아요 찌르면 아프고 먹으면 배부르고…
가끔 타인의 모습을 보고 자기를 발견'
“하나님,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사하여 주기 위해 돌아가셨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억울합니다.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는데도, 전 지금 너무 힘들거든요.” 지난해 어느 날. 한 초등학교 여학생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그림일기 내용이다. 모든 진실을 담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자신의 삶에 대해 절절히 고민하는 내용이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그는 한 소녀의 캐릭터를 떠올렸다. 몇 차례 여과 과정을 거치면서 드디어 생각해오던 소녀가 탄생했다. ‘소미’였다.

◇세상을 등진 전직 특수요원과 역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소녀 간 내밀한 소통을 원빈의 감성 액션으로 풀어낸 영화 ‘아저씨’를 들고 4년 만에 돌아온 이정범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세상을 등진 전직 특수요원과 역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소녀 간 내밀한 소통을 원빈의 감성 액션으로 풀어낸 영화 ‘아저씨’를 만든 이정범(40) 감독이 털어놓은 얘기다.

이 감독은 “인연이 닿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것을 다뤄보고 싶었다”며 “어찌 보면 액션은 서브일 뿐이고 사람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 왕십리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목소리는 저음이었고, 시종 진지했다.

―언제부터 사람 간 소통에 주목하게 됐나.

“고등학교 때 버스를 타고 가는데, 기사가 맞은편에서 오는 버스 기사를 보고 손을 흔들더라고요. 그냥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었는데, 당시엔 가슴이 짠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것을 영화화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몰랐던 사람들이 우연히 어떤 사건이나 사고 등을 통해 만나게 되고, 화해하고, 소통하는 그런 영화 말입니다.”

―아저씨와 소녀가 어떻게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소통할 수 있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진 않다고 봅니다. 남자 주인공은 영화에서 전당포를 하는데, 사실 제 아버지가 지금도 서울 봉천동에서 전당포를 하고 있거든요. 고등학교 다닐 때 밤에 달빛이 작은 방으로 반사되니까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잠깐 보는 것이지만, 이런 곳에 갇혀 평생 업으로 하는 사람은 어떨까 생각하게 된 거죠.”

영화 ‘아저씨’에서 고통을 안고 세상을 등진 전직 특수요원 ‘차태식’은 전당포를 하면서 그날그날을 살아간다.

―‘원빈을 배우로 제대로 살려놨다’는 평이 나오는데.

“제가 전혀 없던 것을 만든 게 아닙니다. 아무도 캐지 않던 원석을 저는 봤고, 다만 그것을 끄집어냈을 뿐이죠. 솔직히 어려움은 거의 없었어요.”

이 감독은 그러면서 원빈에 대해 상당히 놀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기존 작품들은 그의 숨겨진 내면을 보여줄 수 없었던 것 같다”며 “그는 굉장히 끈기 있고 집요하고 근성 있고 욕심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배우 원빈은 이와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액션영화니까 액션도 중요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고민하고 어려웠던 부분은 소녀와 따뜻하거나 아픈 교감이라든지 절박함 등을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악당이 복잡해지면서 스토리가 더 풍성해진 느낌인데.

“악당도 사람이거든요. 영화 ‘히트’에서 악당 로버트 드 니로가 고뇌에 찬 한 인간으로 그려져 흡입력이 더 커졌죠. 악당도 결이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감독은 1971년 충남 온양에서 장사하는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2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형만 있어서 그런지 미팅이나 소개팅 가서 (여자 친구와) 잘 풀어가는 친구가 부러웠다”며 “나는 썰렁한 농담만 하게 되고 잘 안 되더라”고 웃었다.

그가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때는 공군 병장 시절. 강원 모 공군부대 도서관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읽게 됐다. 시나리오 책이었는데, 소설보다 훨씬 빨리 읽혔다. 병장 시절이라 시간도 많아 소일거리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우연히 공모전에 출품했는데 떨어지니까 악에 받치더라고요. 그래서 배울 거면 제대로 배우자 하는 생각이 들었죠. 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이 들어 1998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게 됐죠.”

예술종합학교 3학년이던 2000년에는 16mm 단편 영화 ‘귀휴’를 찍기도 했다. 한 죄수가 감옥을 탈옥, 고향 마을로 숨어들며 어머니와 고향 풍광을 플래시백처럼 되돌아보는 내용이다. 토론토국제영화제, 그리스로마단편영화제, 뉴욕단편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이 감독은 2006년 첫 장편 ‘열혈남아’를 연출, 선 굵은 남성 드라마에 따스한 감성을 더한 연출력으로 2007년 제15회 춘사 대상영화제 신인감독상을 거머쥐었다.

―다음은 어떤 소통을 다룰 것인가.

“아직 구체적인 아이템, 시나리오는 없어요. 우연히 사건으로 인해 만나게 되고 소통하는 것을 그리고 싶습니다. 사람은 결국 똑같잖아요. 찌르면 아프고, 먹으면 배부르고, 가끔 타인의 모습을 보고 자기를 발견하기도 하고요.”

그는 연출 과정에서도 소통하려 노력했다. 시나리오 작성 과정에서도 촬영·조명 감독과 협의해 가면서 콘티를 짰다. 시나리오에 맞춰 촬영할 수도 있지만, 시각적인 것에 맞춰 역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감독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을 찍겠다며 “스토리에 인물을 끼워 맞춰가는 영화보다 스토리를 좀 부순다 하더라도 인물이 더 살아 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좋아하는 감독으로는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히트’를 연출한 마이클 만, 액션 스타일리스트 중국의 두기봉, ‘소나티네’ 등을 만든 기타노 다케시 등을 꼽았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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