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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색] 사격부터 VR까지 오락실은 진화 중

입력 : 2017-07-08 14:00:00 수정 : 2017-07-08 00: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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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이 지난 3일 서울 신촌의 한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시험을 망쳤어. 집에 가기 싫었어. 열 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성인이라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동전 한닢을 들고 이처럼 흥얼거리면서 지하 오락실로 들어섰던 경험이 있을 법하다. 대낮인데도 침침함이 가시지 않은 조명 아래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 한켠에서 조작 버튼을 신나게 두드렸던 그런 추억 말이다.

세월에 따른 놀이문화의 변천에 따라 오락실도 구태를 벗어던졌다.

공간을 가득 채웠던 아케이드 게임기들이 사라진 대신 인형뽑기와 다트, 사격, 야구, 가상현실(VR) 게임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한층에 머물던 오락실 크기도 건물 하나를 다 차지할 정도로 거대해졌다.

지난 3일 서울 신촌의 한 오락실. 한 커플이 인형을 안고 사격대 앞에 섰다. 인근 합정동에서 온 김모(28)씨는 한발, 한발 차분히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얻은 점수는 700점. 810점을 넘기면 인형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김씨는 여자친구 어깨를 감싸면서 “1층에서 인형을 뽑고 2층으로 사격하러 왔다”며 “심심할 때 오락실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서울의 명동의 한 오락실에 설치된 사격 게임.

1~3층으로 이어진 이 대형 오락실은 요즘 유행하는 인형뽑기는 물론이고, 사격과 농구, 다트 등 수십 가지의 게임기를 갖추고 있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신촌 로데오 근처에만 5개의 복합 오락실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1년 전부터 갑자기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오락실의 관계자도 “건너편 오락실에서는 인기 있던 드라마를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날마다 찾아오는 학생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 인기 있는 장소가 됐다”고 소개했다. 

오락실의 환경도 전보다 쾌적해졌다. 한 오락실은 공기정화기까지 설치해 ‘상쾌한 공기’을 강조하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처럼 오락실이 다시 인기를 얻을 것으로 내다본 이들은 많지 않았다. PC방, 이와 함께 노래방, 비디오방 등의 기능까지 한데 모은 멀티방 등으로 오락시설의 대세가 한때 넘어갔고, 모바일 또는 온라인 게임 등으로 새로운 소비 수요가 일어남에 따라 오락실은 그간 하락세를 탔던 것은 사실이다. ‘킹 오브 파이터’나 ‘철권’, ‘펌프’ 등 과거 오락실에서 인기를 끌던 게임들은 어린 세대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2016 게임물 등급분류 및 사후관리 연감'에 따르면 오락실로 분류되는 청소년게임 제공업체의 수는 2009년부터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였다. 당시 3398곳에서 2014년 567곳으로 감소했다. 그러다가 2015년 들어 갑자기 증가세로 돌아서 708곳으로 늘었다.

저물어가는 오락실의 인기를 다시 부축인 건 근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인형뽑기다. 

경기 안양에서 오락실을 운영하는 A씨는 “처음엔 작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인형뽑기로 창업을 시작했다”며 “인형뽑기가 인기를 끌다가 점차 열기가 사그라지는 게 보여 다트와 사격, 윷놀이 게임기 등을 들여오다 보니 복합오락실이 됐다”고 설명했다. 

대형 오락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게임기. 위쪽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인형뽑기, 가상현실(VR) 게임기, 다트, 사격.

A씨는 “최근 뉴스에 인형뽑기 확률조작, 가짜 인형 등의 문제가 보도되면서 수입이 많이 줄었다”며 “요즘에는 사격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고 오락실 트렌드의 변화를 설명했다.
 
다른 오락실의 관계자도 “인형뽑기 인기는 꾸준하지만 예전보다 덜한 것 같다”며 “자동차 게임이나 '동전 노래방'이 더 인기가 높은 것 같다”고 소개했다.
 
가격대는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구석에 자리 잡은 아케이드 게임의 가격은 판당 500원이었고, 인형뽑기와 다트는 각각 1000원, 사격 4000원, VR 게임은 5000원 수준이었다. 실력만 있다면 단돈 100원으로 하루 종일 머물 수 있었던 옛 오락실의 모습은 어느덧 향수가 됐다.

서울의 한 오락실에서 만난 중학생 3명은 “30분 만에 각각 3만원가량 썼다”며 “스트레스도 풀고 재미가 있으니 자주 오게 된다”며 싱긋 웃었다. 

취업준비생 박모(29)씨는 “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자주 오는 편”이라며 “노래를 부르고 인형 뽑기를 하다 보면 취업 실패의 불안감을 잠시 떨쳐버리는 것 같아 적은 돈이라도 소비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형 오락실에서 한 학생이 리듬게임을 즐기고 있다.

광고업체 이노션 월드와이드는 지난 3월 '대한민국 신인류의 출현: #호모_탕진재머에 대한 트렌드 분석 보고서'를 통해 오락실의 인기를 ‘탕진잼’이라는 신조어로 분석했다. ‘탕진잼’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로 ‘탕진’과 ‘재미’를 합친 단어다. '인생은 한번뿐'이라며 아낌없이 소비하는 이들은 ‘탕진재머’ 또는 ‘욜로족’이라 불린다.

이노션은 지난 1년간 주요 포털사이트와 블로그, 카페, 커뮤니티에서 수집한 6만건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탕진재머’는 자신이 가고자 했던 목적지 근처의 코인 노래방이나 인형뽑기방 등에 우연히 들러 마음 가는 대로 소비하며 순간적으로 느끼는 기분 자체에 열광하는 특징이 발견됐다. 

다만 이들은 충동적인 소비 후 후회와 반성, 죄책감 등의 키워드를 자주 쓰는 것으로 나타나 예기치 못한 소비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였다.

김민정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 교수는 “갈곳 없는 이들이 혼자 적은 돈으로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오락실을 ‘불황형 산업’으로 볼 수도 있다”며 “오락 자체가 자칫 사행성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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