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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그때 그 시절' 향수에 젖는 따뜻한 음색… 시간도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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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21 19:00:00 수정 : 2016-05-22 15: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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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LP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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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넷에서 음악파일을 내려받아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더블클릭하면 바로 음악이 재생된다. 스마트폰이라면 손가락으로 한 번 음악파일을 누르면 끝이다. 음악을 듣기 위해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는 시대다. 손가락 움직임 몇 번으로 순식간에 음악을 재생할 수 있다.

#2. 네모난 재킷에서 조심스럽게 동그란 판을 꺼낸다. 힘을 너무 세게 주면 안 된다. 먼지가 묻어 있다면 몇 번 입으로 후 불어줘야 한다. 판 가운데 구멍에 손가락을 넣은 후 턴테이블 위에 맞춰 고정시켜야 한다. 턴테이블에 있는 바늘을 들어 홈에 잘 맞춰야 한다. 한 번도 다뤄보지 않았으면 이 과정이 어색하다. 혹여나 바늘을 잘못 놓으면 판에 이상이 생길까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신이 듣고 싶은 노래를 찾으려면 재킷에 적힌 순서를 보며 여러 번 바늘 위치를 옮겨야 한다. LP(Long Playing)를 통해 원하는 노래를 듣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예전에야 당연한 순서였지만 지금에서 보면 번거롭다. LP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악만 듣는 것이 아니라 듣기 위한 일련의 과정까지 포함된다. 이런 수고가 있었기에 원하는 노래 한 곡을 들을 때 더 집중하게 되고, 그 소리에 빠져들게 된다.

골동품 대접을 받던 LP판이 스멀스멀 음반시장에서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급격하게 시장이 커지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사라지다시피 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인기 가수들이 연이어 LP로 음반을 내고,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는 바 중에 LP로 음악을 틀어주는 곳이 늘고 있다.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디지털 음악 시장에 싫증을 느낀 소비자들이 아날로그 음악을 대표하는 LP를 통해 향수를 느끼고 지친 심신의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다.

◆발걸음 느는 LP바와 레코드가게

20일 서울 홍익대 앞 LP바 게리슨. 저녁시간이 되자 30∼40대 직장인들로 40석 정도의 바 좌석이 가득 찼다. 중학생 때 영국의 록밴드 딥 퍼플의 LP판을 산 후 그동안 2만여장의 LP판을 모은 오형철씨가 운영하는 가게다. LP을 모아두기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공유할 수 있게 3년 전 바를 열었다. 최신 음악보다는 80년대 이전 유행한 국내외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각자 흥얼거리던 손님들이 미국 록밴드 이글스가 부른 ‘호텔 캘리포니아’의 전주가 흐르자 여기저기서 탄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LP 특유의 잡음이 섞인 전주가 흐른 후 노래가 시작되자 손님들이 목소리를 높여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들국화와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나오자 일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음악에 흠뻑 취한 듯 어깨를 흔들었다,

바를 찾은 한 남성은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비슷한 감성을 갖고 찾다 보니 좋은 노래가 나오면 자연스레 같이 부르게 된다”며 “70, 80년대 음악을 틀어주는 바는 있지만 LP로 들었을 땐 감동이 더하기에 일부러 LP바를 찾는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황학동의 장안레코드 가게 벽면 책장에 LP와 CD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황학동에는 70년대부터 많은 레코드점들이 있었지만, LP 시장 침체와 함께 사라지고 지금은 장안레코드와 바로 옆 돌레코드 두 곳만 남아 있다.
서울 중구 황학동 만물거리의 장안레코드. 벽면 책장에 LP와 CD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책장으로 부족한 듯 바닥에도 세워진 LP로 즐비했다.

70년대 황학동에 자리 잡았을 때만 해도 주위에 많은 레코드점들이 있었지만, LP 시장 침체와 함께 사라졌다. 지금은 장안레코드와 바로 옆 돌레코드 두 곳만 남아 있다. 서울에서는 홍익대 앞, 용산, 회현동 등에 LP 판매 레코드 가게가 남아 있다. 가게 수는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단골은 여전했다. 거기에 최근 복고 열풍과 맞물려 새 손님들도 늘고 있다. 가게에서 손님을 응대하던 여사장은 “전부터 단골들은 많았는데 요즘엔 LP판을 처음 찾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며 “유명해지니 가게를 오더라도 구입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사실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과거 향수가 불러일으킨 LP 인기

LP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LP판으로 음반을 발매하는 가수도 늘고 있다. 특히 1980~1990년대 가수의 옛 음반을 재발매하는 방식으로 등장했던 LP를 한창 활동 중인 가수들도 활발히 내놓고 있다.

싱어송라이터 루시아는 자신의 첫 정규앨범 ‘자기만의 방’과 첫 미니앨범 ‘데칼코마니’를 각각 500장 한정판 LP로 제작 발매했다. 이 LP는 소량 제작될 뿐 아니라 루시아의 친필 사인을 넣어 소장 가치를 높였다.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는 지난해 말 1집 ‘파라다이스’와 2집 ‘비 백’을 각각 1만장씩 한정판 LP로 내놨다. 빅뱅 지드래곤 역시 솔로 2집 ‘쿠데타’ LP를 한정판으로, 2AM, 장기하와얼굴들, 버스커버스커 등도 자기 앨범을 LP로 판매했다.

LP를 찾는 사람이 는 것은 대중문화에 분 복고와 향수 열풍 덕분이다. 케이블채널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와 MBC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등의 인기가 30∼40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자, 그 당시를 잘 모르던 20대까지도 과거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 보니 ‘아이돌’, ‘후크송(똑같은 가사를 반복하는 부분)’ 등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디지털 음악이 아닌 과거 아날로그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LP 인기로 연결된 것이다. 강헌 음악평론가는 “디지털이 정확하고 명확하다면 아날로그는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맛이 있는데, 음악의 경우 디지털이 흉내 낼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특징이 강하다”며 “더구나 LP의 장점은 재킷에도 있다. MP3는 형태가 없고 CD는 재킷이 작다. 가로 세로가 각각 30㎝ 정도인 LP 재킷의 커버 디자인은 수집가들의 만족감을 충족시킨다”고 밝혔다.

박은석 음악평론가는 “실제 LP를 들을 수 있는 기기가 없더라도 옛 향수를 기억하기 위해 소장용으로 구입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며 “인디밴드건 주류 아이돌이든 최근 발매된 LP 음반은 성공해 당분간 LP의 인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귀전·권구성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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