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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 사망소식 전했지만…자녀 "시신 인수 않겠다"

입력 : 2012-08-17 17:54:52 수정 : 2012-08-17 17:5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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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독거노인 첫 장례지원 현장 가보니…
마지막 가는 길 울어줄 사람도 없어… 쓸쓸한 장례식
“밖에 한 번 나가는 게 소원이셨는데….”

종로노인종합복지관 김영민 사회복지사가 진한 한숨을 뱉었다. 그는 “고인은 다친 다리 때문에 집 밖을 나설 수 없었다”며 “쓸쓸히 돌아가신 것은 너무 안타깝지만 이렇게나마 장례식을 치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207호에 마련된 박씨의 빈소. 겉보기에는 보통의 장례식장과 다르지 않았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 내내 쓸쓸함이 감돌았다.
16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207호. 지난달 9일 세상을 떠난 박철수(78·가명)씨의 ‘조촐한 장례식’이 열렸다. 박씨는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시작한 ‘무연고 독거노인 장례 지원서비스’의 1호 수혜자다.

평소 당뇨병 등 지병이 있던 박씨는 지난 3월 계단에서 넘어져 대퇴부 골절을 당한 뒤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박씨는 도시락 배달을 위해 집을 찾은 봉사자에 의해 시신으로 발견됐다. 복지관은 박씨 자녀를 수소문해 사망 소식을 전했지만 “시신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싸늘한 답변이 돌아왔다.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됐다는 것.

통상 무연고 시신은 확인 절차만 거쳐 화장터로 직행했지만, 서비스 시행 이후 만 65세 이상 무연고 독거노인은 봉사자 등이 상주(喪主)를 맡아 3시간 정도 빈소를 차리고 장례 절차를 밟는다. 마지막 떠나는 길이라도 외롭지 않게 해주려는 취지다.

이날 박씨의 빈소에서 텅 빈 신발장이 유독 눈에 띄었다. 한 민간기업 봉사단이 빈소의 제단을 꾸밀 수 있게 꽃을 제공하고 상주 역할을 맡아줘 그나마 겉모습을 갖췄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김현미 실장은 “민간의 후원으로 어렵지 않게 장례 준비를 할 수 있었다”며 “타살 여부와 가족 확인 절차를 거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고 설명했다.

빈소가 차려진 3시간 동안 찾는 이는 없었다. 생전에 박씨를 담당했던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담당자와 복지관 직원 등 10여명이 자리를 지켰다. “가족들이 있는데도 이렇게 보내드리는 게 제일 아쉽네요.”

주민센터 박경주 주민생활지원팀장이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가정 불화로 집을 나오신 뒤 40년 이상을 혼자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 인사라도 하려고 들렀다”고 말했다. 장례식을 찾은 한 자원봉사자는 “직접 담당했던 분은 아니지만 빈소에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들렀다”며 “살아계실 때 알던 분들이라도 있으면 찾아올 텐데 너무 착잡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전 11시30분, 박씨의 시신이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으로 향했다. 이런저런 절차를 생략하다 보니 발인도 금세 끝났다. “아이고, 아이고…” 승화원 여기저기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지만 박씨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곡소리마저 생략된 박씨의 장례는 슬픔보다는 덤덤함이 앞섰다.

오후 4시가 조금 안 된 시각, 화장이 끝나고 한 줌 재로 변해 유골함에 담긴 박씨는 파주시 용미리 ‘무연고 추모의 집’으로 떠났다. 이렇게 ‘눈물 대신 쓸쓸함이 밴 장례식’은 끝났다. 박씨의 유골은 추모의 집에서 10년간 보관됐다가 흙과 섞여 땅으로 돌아간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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