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이 어려워진 양반은 주변에서 건넨 보따리가 마음에 들어 갖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러나 체면 때문에 덥석 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내치지도 못한다. 그냥 조용히 두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른 척 보따리를 풀어 쓰는 게 몰락한 양반의 속성이라고 한다.
현재 충청권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에도 원안을 지지하는 여론이 여전히 높다. 그러나 충청도민은 내심 수정안을 원하고 있고, 결국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보고서의 분석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에서 설 연휴(13∼15일) 충청권 민심 대반전을 기대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여권 관계자는 “보고서 내용이 그럴 듯하다”며 “여론조사 수치에 반영되지 않는 충청지역 밑바닥 정서는 벌써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최근 세종시 언급을 ‘일부러’ 피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충청도민에게 자극의 빌미를 없애면서 시간을 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일주일째 세종시의 ‘세’자도 꺼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런 보고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이 대통령에게 올라갔다는 일도 없다”고 부인했다.
허범구 기자 hbk100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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