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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 개발에 '歷史'가 사라진다] 피맛골 재개발 현장에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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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지 못한… 마구잡이 공사… 골병 드는 조선史
“타다다다, 캉캉….” 5m는 족히 되어 보이는 펜스 너머에서 들려오는 굉음이 귓가를 때린다. 길가에선 공사장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인근 건물 7층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거대한 기중기와 덤프트럭이 오가고 있다. 지난 19일 문화유산연대 강찬석 대표와 함께 ‘피맛골’로 더 유명한 서울 청진동 도시환경정비사업 5지구 공사현장을 찾았다.

재개발 공사가 한창인 1지구, 2∼3지구, 5지구, 12∼16지구 4곳 중 이곳에서만 문화재 조사를 하지 않은 까닭이 궁금해서다.

현장을 확인한 강 대표는 “인근 공사장에서 유물이 나왔는데 시멘트 바닥까지 깔고 공사장 둘레를 콘크리트로 채우는 흙막이 공사를 하는 속셈을 이해할 수 없다”며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발굴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발 광풍으로 문화재가 위협받는 현실은 서울 도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청진동 도시환경정비사업 5지구 공사현장 모습. 흙막이 공사 중 인근 지구에서 유물이 출토돼 이곳에서도 문화재 조사를 할 예정이다.
송원영 기자
◆뒷북 친 문화재 조사 결정=종로구청은 “피맛길과 인접한 2∼3지구와 12∼16지구는 문화재 출토 가능성이 커 지표조사를 명령했지만 1지구와 5지구는 조금 떨어져 있어 권고만 했다”며 5지구에서 지표조사를 하지 않은 까닭을 설명했다.

하지만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사업자의 판단에 따라 지표·발굴 조사를 한 1지구에서는 최근 국보급 15세기 백자 등이 원형 그대로 출토돼 고고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사업자가 지표·발굴 조사를 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더라면 유물이 훼손됐을 가능성도 있다.

유물 발견에 놀란 문화재청은 뒤늦게 5지구도 문화재 매장 여부를 조사하라는 공문을 내렸고, 종로구청은 이를 사업자에게 통보했다. 5지구 공사 시행자인 동림도시개발 조창현 상무는 “지난해 공사 인허가 때는 문화재 발견시 법에 따라 조치를 받으라는 조건만 있었다”며 “현재 문화재 조사를 위해 발굴 업체와 일정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바닥 시멘트는 중장비 이동을 위해서 깔았다고 설명했다.

◆예견된 유물 발굴=청진동에서 문화재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6년 6지구 ‘르메이에르’ 신축 때도 지표조사 없이 공사를 진행하다 한 문화재 위원이 장대석과 기와 등을 발견해 신고하면서 뒤늦게 발굴조사를 했다. 당시 조사를 통해 원형이 잘 보존된 시전행랑 모습이 발견됐고, 지금은 이전 복원 절차를 밟고 있다.

피맛골은 과거 한양의 중심지로 유구 발견이 당연시되는 지역이다. 문화재청이나 종로구청 담당자들 역시 “파면 (유구가) 다 나오는 지역 아니냐”고 반문할 정도다.

피맛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백자가 출토된 1지구는 조선시대 육조거리에 맞닿아 있고, 5지구는 유물이 발견됐던 6지구에서 50m도 채 떨어져 있지 않다.

또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집터(종로구청)가 바로 앞에 위치해 유구가 나올 가능성이 큰 곳이다.

◆허점투성이 제도=개발 사업자들이 문화재 지표조사를 피해갈 수 있는 것은 관련 규정에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문화재법에 따르면 동일한 목적으로 분할해 연차적으로 개발하거나 연접하여 개발할 경우 이를 합쳐 면적이 3만㎡를 넘으면 지표조사 의무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청진동 도시환경정비사업은 전체 부지가 7만9111㎡이니 이 조항을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이은석 연구관은 “사업 부지가 여럿으로 쪼개진 데다 사업 시행자도 달라서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며 “법 조문 자체가 모호해 사업자와 마찰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문화관광부령에 따르면 ‘과거 문화재가 출토된 바 있는 지역’이나 ‘관계전문가의 자문 의견에 비추어 지형여건상 매장문화재의 포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일 경우 지자체장이 지표조사를 명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종로구청 이병호 문화체육과장은 “재량권을 강력하게 행사한다면 지역주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면서 법 적용에 난색을 표했다. 이 과장은 “현실적으로 문화재 보호에 주안점을 두기가 어렵다”며 “역사만 있다고 하지 말고 정부의 보존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4대문 안 문화재 지표조사 의무화해야=2006년 6지구 발굴 당시 서울 4대문 안은 경주와 부여처럼 지표조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학계의 목소리가 나왔고, 문화재청은 도심지 재개발사업 추진시 이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바뀐 것은 없고,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있다.

서울 4대문 안 땅속에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가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 동대문운동장에서 발견된 성곽·이간수문과 하도감터, 광화문 육조거리 토층 그리고 피맛골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대규모 공사를 제외하고는 지표조사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김란기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장은 “도시개발지역을 묶어서 한 덩어리로 봐야지 지구별로 나누어 조사를 면제받을 수 있게 한다면 문제”라며 “최소한 4대문 안은 사전에 지표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팀장)·박성준·엄형준·조민중 기자 tamsa@sa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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