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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신 세계로 전파… 파란 눈의 '코리안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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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전문가 미국 UCLA 로버트 버스웰 교수
‘한국의 선(禪)을 수행하는 학자, 한국인의 영혼을 가진 미국인….’

한국학의 세계화를 이끈 로버트 버스웰(55·아시아언어문화학)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교수는 푸른 눈을 가진 한국인이다. 한국은 그에게 삶의 버팀목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다. “제가 태어난 곳은 미국이지만 제 영혼을 길러준 나라는 한국이에요.”

한국에 대한 그의 사랑은 끝이 없다. 삼계탕과 깍두기를 좋아하고 한국의 드라마를 즐긴다. 한국의 아름다운 산과 추억을 자주 마음에 그린다. 그래서일까. 그는 검은 눈을 가진 ‘진짜 한국인’을 아내로 맞았다. 그는 자신이 재직 중인 UCLA에 한국학연구소를 세워 이 대학을 북미 대륙의 한국학 요람으로 키워냈다. 미국과 유럽 학계에 처음 한국 불교를 소개한 이도 바로 그였다. 그는 지난 2월부터 한국학 학자로는 처음으로 회원 6000여명을 거느린 동양학회(AAS) 회장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지인인 조성택 고려대 교수(철학)는 “그동안 중국학과 일본학 전공자가 동양학 회장을 도맡아 한국학은 주변부 자리에 머물렀다”면서 “버스웰 교수가 한국학을 동양학의 중심 학문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버스웰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한국학 관련 학술회의나 강연회에 매년 한두 번 참가할 정도로 한국과의 학술 교류에도 정성을 쏟는다. 물론 한국은 그가 가장 자주 방문하는 나라다.

그는 한국 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린 공로로 올해 ‘만해대상’ 수상자로 뽑혀 다시 한국을 찾는다. 시상식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강연 참석차 8일 방한할 예정인 버스웰 교수를 지난 5일 인터넷을 통해 만났다.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서도 “요즘 미국 차원을 넘어 전 세계에 한국학을 공부하는 동료들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국학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미국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한국과 같이 미국의 중심 교과과정에서 소외된 아시아 나라와 문화들을 많이 접할 수 있도록 교육행정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20년 동안 역사, 문학, 종교 등 한국학에 대한 미국 내 연구자들의 관심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자신이 다니는 UCLA는 한국의 영화, 음악, 드라마 등 한류 바람으로 학생들의 관심이 뜨겁다고 했다.

“현재 UCLA에는 한국과 관련해 55개의 학부 과정과 22개의 대학원 과정이 있어요.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할 수 있지요. 매년 7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여기서 한국어를 공부한답니다. 이탈리아어와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학생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예요.”

해외 한국학을 지원하는 한국국제교류재단에 따르면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등 세계 유수 대학에 정규 한국학 교수직과 강좌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지난해 말 현재 한국학 강좌를 개설한 대학 수가 735곳으로 1990년(152곳)보다 5배 가량 늘었다. 과거 일본학이나 중국학에 밀려 괄시받던 한국학의 처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비약적인 발전에도 한국학이 세계 주류학문의 위치로 나아가려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미국 학계 내 한국학 학자는 아직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빈약하다. 교수진에서 한국 전문가들을 두세 명 이상 확보한 대학은 여전히 손을 꼽을 정도다.
◇한국불교의 권위자인 로버트 버스웰 교수가 2004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세계불교학회로부터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된 뒤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한국학 학자로서 첫 동양학회 회장에 오른 그는 한국학의 세계화를 이끈 일등공신이다.

그는 “사실 한국학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이지만 아직은 불안한 상황”이라면서 “새로운 학생들을 한국학에 끌어들이고, 한국학 전문가들의 연구를 꾸준히 지원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대한 버스웰 교수의 인연은 깊고도 각별하다. 대학 1학년 때인 1972년 UCLA를 휴학하고 태국으로 건너갔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불교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출가를 결심한 것이다. 태국과 홍콩을 오가며 화엄불교와 선불교를 공부하다 거기서 순례여행을 온 두어 명의 한국 승려와 만났다. 그때가 한국인과의 첫 대면이었다. 이들을 통해 한국에도 선 수행의 전통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74년 동방의 작은 나라로 향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무모한 결정이었어요. 그때까지 한국에 대해 아는 거라곤 전혀 없는 백지상태였으니까요.”

한국에 온 그는 삼보사찰 중 하나인 전남 순천 송광사로 들어가 머리를 깎았다. 방장이던 구산 스님 밑에서 5년간 비구승으로 선 수행을 했고, 혜명(慧明)이란 법명도 받았다.

“그 당시에 왼쪽 발가락이 곪아 붕대로 감고 목발을 짚고 절에 들어갔어요. 장대처럼 홀쭉하게 키가 큰 서양인이 절뚝거리며 입산했으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죠. 한 스님이 저에게 ‘여기 스님 중에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심하게 다친 사람이 여럿 있는데, 아무도 목발을 쓰지 않는다’고 귀띔했어요. 한국의 승려 생활이 간단치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더군요.”

그의 뇌리에는 한국에서 겪은 참선 수행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석가탄신일 전에 ‘용맹정진’이라 해서 1주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선방에 여럿이 앉아 참선을 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의 승려 체험을 토대로 ‘파란눈 스님의 한국 선 수행기’란 책도 펴냈다. 이 책에는 한국인에 대한 그의 따뜻한 감정이 숨김없이 묻어난다. 그는 책에서 “내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구산 스님만큼 내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친 분이 없었다”면서 “많은 한국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겐 특별한 행운이자 특권”이라고 적었다.

승복을 벗은 뒤 그는 ‘금강삼매경론의 한국적 기원’이란 주제의 논문으로 버클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중국 불교의 세계적 권위자로 UCLA에서 강의를 맡아왔다.

한국의 선 사상을 천착한 그는 ‘한국의 선불교’, ‘회광반조: 지눌의 선 사상’, ‘중국과 한국에서의 선 사상 형성’ 등을 잇달아 저술했다. 또 한국불교의 역사·인물·현황을 집대성한 영문판 한국불교대사전(가칭)의 간행을 주도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함께 한국의 종교·철학·역사 고전 번역을 진행 중이다.

그는 요즘도 한국에서 익힌 참선을 거의 매일 한다. 인터넷과 신문을 통해 한국의 소식을 접한다. 불교 사이트를 뒤져 최신 정보를 얻는 일은 그의 한국인(한국계 미국인) 아내가 주로 맡는다. LA에 있는 한국어 TV 방송으로 한국에서 날아온 싱싱한 뉴스를 보기도 한다. 이따금 ‘마음의 고향’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올 때면 부부는 마음을 졸인다. 최근의 독도 분쟁도 그런 소식 중 하나다.

“독도문제는 한국 학자들에게 달렸다고 봐요. 독도의 주권을 확실히 하자면 국제 수준에 부응하도록 역사적인 고증자료들을 찾아내고 연구해야 합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세계 석학의 조언을 흘려들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의 영혼을 지닌 버스웰의 꿈은 미국 대학에서 한국학(한국불교학)을 전공한 많은 석좌교수를 보는 것이다. 이들 교수가 강단에서 한국학을 항구적으로 가르칠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의 꿈이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의 소망이 바로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기에….

배연국 기자 bykoo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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