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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의 아시아 문화 기행] 중국 자오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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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 그 사람들이 그립다
◇자오싱 마을 고루에서 펼쳐지는 동네 아낙들의 춤사위.
“맑은 날이 3일 이상 이어지지 않고, 땅에는 3리의 평지가 없으며, 그곳 사람들은 3전의 은자도 없다.”(天無三日晴, 地無三里平, 人無三分銀)

구이저우(貴州)성. 한국어로 귀주라고 읽히는 이곳은 맑은 날도, 평지도, 돈도 없는 탓에 뭐든지 귀해서 지명마저 변해 버린 곳이다. 비교적 대도시 간 연결은 쉬운 중국이지만, 구이저우의 도시만큼은 달랐다.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성도인 구이양(貴陽)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에어컨은커녕 승차감도 보장할 수 없는 봉고차만 한 작은 버스를 타고 비포장길을 20시간 이상 내달려야 했다.

몇 년이나 굴렸을까. 이리 박고 저리 쥐어 터졌음이 분명한 찌그러진 차체에 올랐다. 8월의 숨막힐 듯한 더위만큼이나 힘든 것은 덜컹거리는 차체였다. 비포장, 그것도 곳곳에 웅덩이가 파인 도로에서 버스는 요동을 쳤고, 내 몸은 그에 따라 이리저리 기우뚱거리며 때로는 점프해 나지막한 천장에 머리를 박곤 했다.

차가 출발하고 4시간쯤 지나 온몸이 파김치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차림새가 깔끔해서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관광객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뒷자리의 아가씨가 말을 걸었다. 30분 후면 자오싱(肇興)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내일부터 축제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줬다. 자오싱이라는 마을은 한족이 아닌 ‘둥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사는 작은 마을이라는 말도 덧붙여 줬다.

자오싱 사람들은 오래된 마을과 독특한 소수민족 문화를 매개로 광시(廣西)의 양숴(陽朔), 윈난(雲南)의 다리(大理)나 리장(麗江)처럼 자신들의 마을을 관광지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건 볕도, 땅도, 돈도 없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축제는 객지생활을 몇 년 한 탓에 그나마 깬 축에 끼는 몇몇 마을 젊은이들이 어떻게든 마을을 알리고 싶어 마련한 행사였다. 나는 졸지에 그 마을의 축제를 참관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유일한 외국인이 되었다.

다음날 10시, 마을 초입이 축제 장소였다. 하지만 축제는 시작되지 않았다. 저 멀리 구이양에서 참석하기로 한 높은 분들이 도착하지 않은 탓이다. 12시나 되었을 무렵 드디어 유지들이 마을로 들어왔다. 미리 전화라도 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사람들은 마치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듯 이리저리 허둥댄다. 이런 상황 자체를 즐기는 나는 킥킥거리지만, 제대로 형식을 갖춰 자신을 환영해 주길 바랐던 높으신 분들은 영 표정이 좋지 않다.
◇손님을 환영하는 노래를 부르는 자오싱의 처자들.

축제는 자오싱의 관광업이 성장해 두루두루 잘살았으면 한다는 내용을 30분으로 장황하게 늘린 높으신 분의 축사로 시작되었다. 중학생쯤 될 법한 여자 아이들이 종종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다 나에게 들켰다. 내가 먼저 씨익 웃어주면 같이 웃는데, 딱 그맘때 조회시간에 끌려가 장난 거는 기분이다.

지루한 축사가 끝나자 축제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전통 복장을 하고 나온 여학생들은 북을 치기 시작했고, 또 다른 전통 복장의 아가씨들은 춤을 췄다. 급조된 축제라 프로그램이 있을 리 만무했다. 모든 마을 사람이 거리로 나온 듯했고, 마을광장격인 고루(鼓樓) 앞에서는 장정들이 노동요를 부르며 땅을 밟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이 동시에 벌어지니, 아무리 작은 마을의 볼거리 없는 축제라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다.

본의 아니게 마을 유일의 외국인이 된 나는 모든 장소에 끌려 다니며 이 축제야말로 진정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는 말을 입에 침을 바르며 반복해야 했다.

사실 이방인인 나로서는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이 엉성함이 좋았고, 공산당 매스게임같이 절도 있는 무언가에 가치를 둘 것 같은 경찰국장의 내내 굳은 얼굴에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외지 관람객 10명, 축제 인원 4000명인 이 기묘한 축제는 저녁 나절 트럭에 초대형 천막을 싣고 와 무대를 펼친 유랑극단의 공연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들은 ‘소림사 무술단’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다. 
◇논과 목조 가옥이 어우러진 자오싱 마을의 풍경.

며칠 동안 고작 10명을 위해 축제의 볼거리이기를 자처했던 순박한 사람들이 이제야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다. 내 눈에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무술쇼를 그들은 침을 삼키고, 주먹을 꽉 쥔 채 지켜보고 있다. 두근두근 달음질치는 그들의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릴 지경이다.

문명이 싫어 자신의 나라를 떠난 여행자는 저들의 원래 모습을 사랑하고, 저들은 여행자들처럼 안락하게 여행 다닐 수 있는 형편을 원한다. 서로 다른 목적이 만들어낸 접점은 언제나 비극으로 끝난다. 그들이 변치 않길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지독한 이기심이라는 걸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그래도 아쉽다. 그래서 순박한 사람들은 만나면 오히려 슬프다.

언젠가 이들의 바람이 성사될 무렵에는 저런 얼굴, 저런 표정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저들이 그토록 바라는 양숴가 그랬고, 다리와 리장이 그랬다. 그러고 보니 이 별 볼 일 없는 축제가 은근히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는 것 같다. 자오싱은 지금쯤 어떻게 변해 있을까? 너덜너덜한 천막을 지고 다니던 소림사 무술단은 지금도 어디선가 벽돌을 깨고 있을까?

여행작가



≫ 여행정보

구이저우성으로 직접 연결되는 항공편은 없다. 자오싱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은 구이린 공항으로, 매주 2편의 항공기가 인천공항과 연결된다. 구이린∼구이양 간은 국내선 항공을, 구이양∼카이리∼이싱∼자오싱 구간은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자오싱에는 2008년 현재 8곳의 숙소가 있다. 모두 전통 목조가옥으로, 운치 또한 일품이다. 숙소에서 식당을 겸하고 있는데, 둥족의 전통 요리는 물론 볶음밥 같은 간편식도 맛볼 수 있다. 마을을 둘러보는 데는 길게 잡아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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