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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에이즈 환자 주삿바늘에 찔려도 인간 취급 못받아”…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피눈물’

입력 : 2011-10-04 17:43:59 수정 : 2011-10-04 17:4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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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 청소하다 사고…치료약 부작용에 일 못해
산재 요구에 용역업체 "왜 소문내냐" 해고 협박
"병실 바닥 주삿바늘 널려… 다치는 일 다반사"
“살면서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너무 무서워서 잠도 오지 않아요.” 3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청소노동자 서모(55·여)씨는 연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불안과 공포가 얼굴에 짙게 깔려 있었다. 용역업체 파견 노동자인 서씨에게 공포가 닥친 건 지난달 5일. 평소와 다름없이 오전 7시30분쯤 내과 중환자실 감염병동을 청소하던 서씨는 손가락이 따끔한 것을 느꼈다. 자신의 손을 찌른 것이 주삿바늘이라는 것을 안 순간 충격에 빠졌다.

순간 말문이 막히고, 몸이 얼어붙었다. 그 병실이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가 치료를 받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서씨는 일단 손가락을 눌러 피를 짜낸 후 수간호사에게 달려가 사실을 알렸고,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사고 당일 오후에도 일을 계속했다.

서씨는 병원에서 에이즈 예방약을 2주치 받았다. 그러나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고, 다른 부서로 옮겨달라고 요구했으나 “해고할 수 있다”는 용역업체 측의 답변만 돌아왔다.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운 증상이 잦았다. 식욕도 잃어 체중도 계속 줄었다. 지난달 19일 2차 진료를 하면서 “몸이 힘들어 일을 쉬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담당의사는 “용역업체에 이야기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의사에게 ‘약물 부작용으로 일하기 어려운 상태로 안정이 필요하다’란 진단서를 받고 나서야 병가를 얻을 수 있었다. 용역업체 측은 “주삿바늘에 찔린 게 벼슬이냐. 왜 조심해서 일하지 않았느냐”고 면박을 주면서 “노조에 연락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켰다.

서씨는 9일까지 병가를 내고 휴식 중이다. 서씨의 일이 알려지면서 노사협의회 때 서씨에 대해 산업재해 처리를 요구하겠다며 노조가 나섰다. 하지만 용역업체는 “가만히 있어도 (산재신청을) 해줄 텐데 왜 소문을 내고 다니느냐”며 서씨를 몰아세웠다. 서씨는 불안감에 가족들에게도 말을 못하고 있다.

“에이즈에 걸릴까 불안하고 약이 독해 몸과 마음이 무너졌어요. 인간 취급도 못 받는다는 생각에 눈물만 나와요.”

중국동포인 서씨는 2005년 ‘코리안 드림’을 품에 안고 한국에 와서 귀화했다. 남편과 이혼한 서씨는 현재 85세의 노모와 두 딸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그는 “큰 병원이라 건물도 깨끗해서 좋은 곳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힘들고 위험한 곳인지 몰랐다”며 “한국에 와서 받은 서러움을 말할 곳이 없다”며 하소연했다.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의료연대 이영분 분회장은 “주삿바늘은 수거함에 따로 버리게 돼 있지만 의사들이 아무 데나 던지는 탓에 병실 바닥에는 항상 주삿바늘이 널려 있다. 집게로 수거하라고 지시하지만 집게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며 “청소노동자들이 주삿바늘에 다치는 경우는 다반사지만 대부분 질책이 두려워 손가락을 눌러 피를 짜내는 등 혼자 해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씨는 “하루에 바닥에 딸어진 주삿바늘을 셀 수 없이 봤다. 뚜껑 닫힌 것은 물론이고 뚜껑이 없는 것도 7~8개는 봤다”고 말했다. 또 “사고 이후 병원 측에서 의사들에게 주의하라고 했지만 매일 뚜껑없는 주삿바늘을 1~2개 정도는 봤다”고 토로했다. 실제 민주노총이 지난해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125명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7명이 주삿바늘에 찔려본 적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병원 측은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취재팀에 “(서씨의 일은) 처음 듣는 이야기다. 향후 알아보고 조치하겠다”며 “주삿바늘은 수거함에 버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삿바늘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김유나·박영준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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