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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몸부림' 등 이상야릇한 모텔에 둘러싸인 문화재

입력 : 2011-05-11 01:39:45 수정 : 2011-05-11 01: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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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간월사지 주변에 모텔 40개 밀집
보물 370호 석조여래좌상이 발견된 간월사지(석탑이 있는 부분) 주변에 모텔들이 병풍처럼 둘러싸 있다.
 9일 오후 3시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 간월사지. 보통의 폐사지는 가람의 주춧돌과 석탑 등만 남아 있어 고즈넉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이곳은 ‘욕망의 배출구’와 다름이 없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를 빠져나와 작천청계곡을 굽이굽이 지나 간월사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자동차를 4.5㎞쯤 몰다 보면 처음 마주치는 것이 모텔 간판이었다. 열, 스물, 서른…. ‘관광지여서 그런가?‘라는 생각에 모텔 개수를 세어 보지만 너무 많아 이내 포기했다. 

 신불산군립공원 기슭에 자리 잡은 간월사지로 올라가는 길은 아예 모텔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3m짜리 도로를 사이에 두고서도 모텔들이 들어서면서 간월사지는 하나의 ‘열섬’이 됐다. 40개의 모텔이 간월사지를 병풍처럼 둘러친 것도 모자라 지금도 건설이 한창이었다.

 러브호텔 수준인 모델 이름은 ‘69’와 ‘몸부림’ 등 더욱 자극적이었다. 일부 모텔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1층 주차장에 차량이 들어서면 자동으로 문이 닫히고, 손님이 계단을 통해 2층에 올라가서 현금을 기계에 넣으면 객실 문이 열리는 식이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이같은 시스템을 도입한 탓인지 평일임에도 객실이 거의 찰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있으나 마나한 문화재보호법

 간월사지의 비극은 이곳에 온천이 솟으면서 시작됐다. 신라 진덕여왕 때 건립된 간월사는 임진왜란 이후 쇠락을 거듭했다. 1984년 발굴이 이뤄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70호 지정)과 석탑 2기와 축대, 주춧돌 등이 발굴됐고, 절터 1438㎡는 울산기념물 제5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온천이 발견되면서 1988년 2월 이 일대는 ‘등억온천지구’로 지정됐고, 간월사지 경계 밖으로 전 지역이 구획화되면서 상업·숙박시설들이 속속 건립됐다. 

 10일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가 있는 지역에 건물을 지을 때는 ‘현상변경 영향 검토’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상 국가지정물은 500m, 지방기념물은 300m 거리를 두고 건물을 짓는데, 그 범위 안에서도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승인이 나면 건축행위가 가능하다.

 간월사지 주변에 들어선 모텔들은 문화재청이나 지방자치단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쳤지만 반려된 사례가 한 건도 없이 모두 허가를 받았다. 실제로 2009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승인된 S모텔은 석조여래좌상과 직선거리로 불과 60m,  M모텔과 O모텔은 160m, N모텔은 23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뒷북치는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올해부터 석조여래좌상을 중심으로 500m 이내 지역을 ▲원형지 보존 지역 ▲최고 높이 12m(2층)이하 지역 ▲건축법 적용 기역 등 3개 구역으로 나눠 건축을 승인하는 세부 기준을 마련했다. 

 하지만 자극적이며 화려한 간판에 대한 기준은 권고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간월사지가 관광단지로 지정이 돼 건축을 막을 순 없겠지만, 추가 시설은 가급적 절터 앞쪽에 지었으면 좋겠다”며 “간판이 너무 심한 게 많은 만큼 지자체가 의지를 갖고 규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울주군청의 한 관계자는 “모텔 간판이나 건물 색깔은 강제 사항이 아닌, 권고사항에 불과하다”며 “심각성을 알고 있지만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어 간판을 정비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울주=신진호·조현일 기자  ship6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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