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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형칼럼] 너무 어려운 법, 국민 눈높이 맞추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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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6-30 21:13:23 수정 : 2013-06-30 21: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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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생도 이해 못하는 판결문
알기 쉬운 언어로 계속 바꿔가야
법이 너무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사실 법령에서 사용되는 문장은 악명이 높다. 딱딱하고 어색하며 아름답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법에도 맞지 않는 악문이 많다. 한자말이나 불필요하게 어려운 전문용어, 일본식 표현이 많으며 무엇보다 너무 길고 복잡한 문장으로 돼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판결문 역시 너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법률신문에서는 서울 소재 로스쿨 학생 1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로스쿨생도 이해 못하는 판결문 많다’고 보도했다.

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법령 속에는 난해하거나 뜻이 모호한 문장이 많은데, 때때로 평문 속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캐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마치 암호 해독 같은 작업을 벌여야 할 때도 있다. 하물며 판결문, 특히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문 중에는 고단한 분석과 비교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홍준형 서울대 교수·공법학
왜 법이 어려워지는 것일까. 하나는 역사적 음모론이다. 법조신분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다분히 의도적으로 법, 특히 법언어와 법리를 어렵게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세 유럽의 경우라면 모를까 오늘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얘기는 아닐 듯싶다. 또, 가장 진실에 가까운 설명일지 모르지만 무관심·무감각 때문에 법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관료가 법을 만들거나 고칠 때 보통사람은 평상시 거의 쓰지 않는 개념이나 전문용어를 그저 하던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은 또 하나는 법을 너무 쉽게 만들고 고치기 때문에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법을 너무 쉽게 만들고 너무 자주 고치느라 법이 어려워지는 것을 막거나 고칠 겨를이 없다.

물론 정부가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법제처는 2006년부터 7년간 1000여건의 법령을 대상으로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정책을 추진해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렸다. 최근에는 행정소송개정법안을 손질한 데 이어 ‘전문가만 알 수 있었던 민법, 이제는 국민에게 되돌려 드리겠다’며 민법을 알기 쉽게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바 있다. 법원도 지난 3월 ‘쉬운 판결문 쓰기’를 위한 법원 맞춤법 자료집 전면 개정판을 발간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법이 알기 쉽게 고쳐졌는지, 판결문이 더 이해하기 쉬워졌는지 그리 잘 체감되지 않는다.

2013년 5월 31일 현재 우리나라 국가법령은 헌법, 법률 1292개와 대통령령 1511개를 포함해 총 4301개를 헤아린다. 법률 1292개를 모두 알기 쉽게 정비해 나가려면 무엇보다 장기적 호흡으로 충분한 숙의와 의견수렴, 실무와 학술 양면에서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해 줄 확고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며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조직과 예산이 안정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그동안 법제처가 추진해온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의 법적 근거는 대통령령인 ‘법제업무운영규정’의 달랑 한 조항이었고, 그나마 법제처장에게 ‘국민이 알기 쉽도록 법령을 정비할 필요가 있는 경우’(제24조 제1항 제3의 2) 법령정비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만 규정돼 있었다. 미국 등 별도의 단행법을 제정하고 알기 쉬운 문서작성과 법령을 위한 조직체계를 갖춰 추진하고 있는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다.

미국의 앨 고어 전 부통령은 ‘알기 쉬운 언어는 시민의 권리’라고 말했다. 알기 쉬운 법이 민주주의와 정부 신뢰에 얼마나 중요한 조건인지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이다. 우리도 알기 쉬운 법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다.

홍준형 서울대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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