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광장] 이동통신 고객의 분노

고객 실수 노리는 데이터 통화료

아이폰 열풍, 국내 이통사 자업자득

박희준 사회부 차장

태터툴즈 기반의 블로그 관리자 기능에 ‘유입 키워드’라는 게 있다. 네티즌이 어떤 키워드로 검색해서 내 블로그로 들어왔는지를 보여준다. ‘유입경로’ 기능은 어떤 사이트를 통해 접속해 왔는지까지 알려준다.

블로그 어떤 글이 요즘 인기있는지 알 수 있어 블로깅 재미를 느끼게 한다. 자기만의 작은 공간에 올린 글을 누군가 알고서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짜릿한 기분마저 들곤 한다.

필자의 블로그에서 2년 가까이 생명력을 이어 온 영어 ‘키워드’가 있다. ‘TLG*GREATFN’, ‘tlg great fun’, ‘great fun 사기’ 등으로 비슷비슷하다. 사기성 상술로 악명 높은 미국 그레이트펀이라는 회사와 관련 있다. 해외로 여행 또는 출장을 갔다 왔거나 해외에서 연수생활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이 적잖이 피해를 보고 있다. 구글 등으로 검색해 보면 미국 현지인 피해 사례도 수두룩하다.

미국의 유명 예약 사이트인 ‘프라이스라인닷컴’, ‘익스피디아닷컴’ 등을 이용했다면 피해를 의심해봐야 한다. 호텔이나 항공편, 렌터카 등을 예약하는 과정에서 깜빡 속았을 가능성이 크다. ‘리펀드’(환불)해 준다는 솔깃한 문구에 무심코 ‘OK’를 누른 게 화근이다.

자신도 모르는 새 카드 계좌에서 9.99∼35.99달러가 빠져나간다. 미국인 피해도 많은 걸 보면 영어 실력 탓만은 아니다.

최근에 순위가 급상승한 키워드는 ‘데이터 통화’와 ‘데이터 통화료’이다. 11월23∼30일 1주일치 집계만 봐도 상위 1∼3위를 싹쓸이했다.(같은 글자라도 띄어쓰기를 하면 별개 키워드로 분류된다.) ‘SK텔레콤 데이터통화료’, ‘SK 데이터 통화료’, ‘데이터 통화 사기’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지난달 18일 블로그에 SK텔레콤의 데이터 통화료에 대해 글을 올리면서 생긴 현상이다.

‘IT맹’이라서 뭔지 몰랐던 데이터 통화를 SK텔레콤 덕분에 알게 됐다. 우연히 지난 5월 휴대전화 요금청구서를 살피다가 ‘데이터 통화료 2292원’ 항목을 발견했다. 콜센터를 통해 통화명세를 받아보고 언성도 높였으나 허사였다.

‘버튼을 잘못 눌러 접속했을 수 있다. 본인이 아니더라도 자녀가 만지다가 그럴 수 있다. 통화명세가 있으니 환불할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해 사진이나 음악 등 파일을 올리고 내려받는 것이 데이터 통화라고 한다. 게임을 다운받은 청소년들이 수백만원어치 요금을 물게 된 사례가 속출해 문제가 된 그 서비스다.

거센 비난 여론에 이동통신사들은 통화 상한액을 설정하는 등 조치를 취했으나 임시변통이었다. 실수로 접속하는 일이 없도록 기능을 아예 차단해 달랬더니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만 했다.

비밀번호를 바꿨더니 6, 7월은 무사히 지나갔다. 8월 청구서가 다시 문제였다. ‘12초 982.80원’, ‘1초 27.30원’. 콜센터는 예상대로 어찌 해 줄 도리가 없다는 말뿐이다. 애꿎게 용의자로 몰린 두 아들만 혼났다. “아빠 휴대전화기로 장난친 것 아니냐”고. 9월 청구서에 다시 ‘22초 1296.75원’. 이쯤되니 이제 포기하게 된다. ‘그래 돈 몇 푼에 생명 단축하지 말고 그냥 내고 말자.’

참아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아내의 10월 청구서에 9000원 넘게 나왔다. 과거 6개월 명세를 확인했더니 45건에 2만7000원이 빠져나갔다. 블로그에 올린 글에는 ‘주변에 피해자가 많다’며 LG텔레콤, KT 모두 마찬가지라는 댓글이 달렸다. 콜센터 직원이 털어놓는 것처럼 피해 사례는 부지기수다. 이쯤되면 이동통신사들이 사용자 잘못 탓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다.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빼내 가는 건 사기성 상술이다. 그레이트펀이라는 회사는 항의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의사가 없다고 하면 전액 환불해 준다.

반면 우리 이동통신사들은 끝없이 이어진 고객들 항의에 묵묵부답이다. 인터넷 접속이 사실상 무제한 무료인 미국 애플사 아이폰 출시에 휴대전화 이용자들이 열광하는 건 자업자득이다. 아이폰 열풍에 고소해하는 이가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박희준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