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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리뷰] 세계는 ‘생물주권 지키기’ 전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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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5-13 20:14:00 수정 : 2015-01-05 13: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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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시장 규모 매년 급팽창

토종생물 반출 외국산 둔갑 막아야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미스킴라일락, 잉거비비추, 구상나무, 나리…. 이 땅을 수천 년 동안 지켜왔지만 우리의 무관심 속에 생물주권을 빼앗겨 어느새 국적이 바뀐 우리 토종이다. 이들은 해외로 반출돼 고부가 생물상품으로 품종이 개량돼 국내에 역수입되고 있다.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나리(백합) 알뿌리만도 600만달러이고, 라일락은 1970년대부터 수입하고 있다. 식물에 대한 특허권도 모두 외국 소유이다.

미스킴라일락은 원래 수수꽃다리라는 우리의 고유종 식물이다. 그런데 1947년 한 미국인이 북한산에서 수수꽃다리 씨앗을 채집해 본국으로 가져갔고, 그중 싹을 틔워낸 것을 골라 ‘미스킴라일락’으로 등록했다. 따라서 비록 원산지인 우리나라라도 이 품종에 대해 아무런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이 꽃은 미국 전체 라일락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자원이다. 한라산과 지리산의 특산 식물인 구상나무도 1904년 유럽으로 반출돼 현재 ‘크리스마스 트리’로 널리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대략 10만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고 추정된다. 하지만 확인돼 기록된 생물 표본은 3만종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70%의 생물은 이름조차 얻지 못한 채 서식지를 잃고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9만종, 영국은 8만8000종으로 우리와는 3배나 차이를 보인다. 1992년 6월 생물다양성협약이 국제적으로 채택되면서 생물자원에 대한 주권이 인정됨에 따라 생물자원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왜 세계는 자국의 고유생물을 지키기 위한 생물주권 강화에 안간힘을 쓰는 것일까.

생물자원은 지구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자 부가가치 또한 엄청나다. 의약품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예를 들어 버드나무 껍질로부터 만들어진 아스피린은 대표적인 해열진통제로 100년간 판매되고 있고, 주목에서 만들어진 항암제인 택솔은 연간 12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의약품의 80% 이상이 식물 등 천연물질에서 추출돼 우리의 질병을 치료한다.

생물자원을 이용한 생명공학 관련 산업규모도 만만찮다. 2003년 740억달러에서 2013년에는 2100억달러, 10년 이후에는 연간 세계 시장규모가 5000억∼8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다. 전 세계 석유화학 제품의 시장규모가 5000억달러이고, 정보통신 분야가 8000억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생물자원의 가치는 대단하다. 이러니 각국이 자생생물이 해외로 반출돼 외국산으로 둔갑하는 것을 막으려고 힘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환경부는 2001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지정된 513종을 국외 반출 승인대상 동식물로 보호·관리해 왔는데 지난해에 309종을 추가로 지정했다. 따라서 국외 반출 승인대상 생물이 모두 822종으로 늘어났다. 2014년까지는 3000종으로 확대해 고유 생물자원의 해외 유출을 방지할 계획이다. 국외 반출 승인대상으로 지정되면 살아 있는 생물은 물론 알·종자·뿌리·표본 등 그 어느 것도 환경부 장관의 승인 없이 국외 반출이 금지된다.

문제는 종류도 다양하고 숫자도 많은 이 생물을 어떻게 보전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1176곳의 생물자원관을 운영해 다양한 생물을 보전하고 있고, 생물분류 연구에만도 매년 4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50여곳, 중국이 20여곳, 인도가 10여곳이다. 한국은 2007년 인천에 개관한 국립생물자원관 1곳뿐이다. 우리의 생물주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얼마 전 정부는 2013년 경북 상주시에 제2의 생물자원관인 낙동강생물자원관을 짓기로 결정했다는 뒤늦은 정책을 내놓았다. 생물자원관 수만 보더라도 자국의 생물자원에 대한 조사연구가 얼마나 미비한가를 알 수 있다. 자생생물은 매우 귀중한 국가적 재산이다.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처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의 선택이다. 정부의 정책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생물자원 주권을 확실히 찾아야 할 때이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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