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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여권 없이 국경 넘는 동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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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4-16 22:01:52 수정 : 2009-04-16 22: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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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포털서 제3세계 동화 제공 시작

어린이들 다문화 접할 반가운 기회

세계화의 기본은 다양성의 존중

각국 동화책 보며 창조성 키우자
권지예 소설가
얼마 전에 기분 좋은 행사에 초청받았다. 우리나라의 한 포털 사이트가 다음 세대의 어린이가 다문화를 즐겁게 배우도록 제3세계의 그림동화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설명회였다. 몽골, 베트남, 필리핀 등의 전래동화나 그림책이 애니메이션과 함께 한국어, 영어, 원어로 자막과 함께 더빙돼 나온다. 그림도 아름다웠지만 다양한 상상력의 세계로 이끄는 각 나라 동화의 재미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게다가 부가 서비스로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원어나 영어도 배울 수 있게 흥미로운 콘텐츠로 구성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제결혼으로 인한 다문화가정이 많이 늘었다. 다문화가정에서 탄생한 어린이와 그 부모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부모 나라의 문화를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그림동화를 통해 원어와 함께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만을 위한 것일까.

세상은 더욱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정서,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 그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해주어야 진정한 글로벌 세상의 소통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다름’이나 ‘차이’가 차별과 배제의 원인이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으며, 다양성은 오히려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림동화 서비스는 그런 의미에서 어릴 때부터 다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주고 장래 우리 아이 세대가 다양한 세상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유아영어 학원에서 앵무새처럼 영어 몇 마디 배우는 것보다 제3세계의 그림동화책의 이야기를 보고 읽는 것이 그 아이의 언어 잠재력과 상상력, 창조성에 이루 계산할 수 없는 영향을 줄 것이다. 요컨대 문화란 우열의 문제가 아닌 다양성의 문제이며, 감수성의 개발은 어릴수록 더 유리하다. 게다가 문화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이야기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그날 행사장에서 어느 외국 작가가 한 말은 그 점에서 정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잠바 다쉬돈독이라는 이름의 그 작가는 몽골의 안데르센이라 불리는 동화작가다. 자그마한 키에 푸른색의 몽골 전통의상을 입은 그는 당당하면서도 범접하지 못할 위엄과 푸근함을 함께 지닌 사람이었다. 이 사업의 취지에 적극 공감해 저작권을 무상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초원의 먼 나라에서 온 그가 말했다. “나는 다른 나라에 가려면 여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의 동화책은 여권이 필요 없습니다.” 나는 그의 그 말에 가슴 뭉클하게 공감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고 발 없는 글이 인간의 발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것이 문화의 힘이다.

또한 그 문화를 즐겁고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은 어린아이일수록 더 빠르다. 한국에서 태어난 큰애가 우리 부부를 따라 프랑스에 간 것은 다섯 살 때였다. 불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아이는 한동안 학교에서 벙어리로 지냈다. 그런 아이를 나는 집 근처의 어린이 도서관으로 매일 데려갔다. 프랑스에는 성인 도서관 외에 동네마다 어린이 도서관이 몇 개씩 있었다. 프랑스 엄마들은 놀이터처럼 생긴 그곳에서 아이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었다. 나 또한 아이에게 그곳에서나 집에서나 그림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간단한 책은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고 내용은 물론 발음과 알파벳의 원리까지도 서서히 익히기 시작했다. 아이는 학교생활에 곧 흥미와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나는 한국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이는 예전의 경험과 감수성으로 한글을 깨달아갔다. 이것은 단지 부분적인 한 예에 불과할지 모른다. 다만 어린아이에게 이야기와 문자와 엄마의 사랑이 담긴 목소리로 전달하는 그림책이야말로 최초의 다문화교육이며 언어교육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그 역할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서비스로 한다고 하니 반갑고 기대가 크다.

권지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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