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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는 돈을 버는 시기와 돈을 쓰는 시기가 있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말이다. 이민 노동자의 아들이었던 그는 전보배달원 등 험한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철강업에 투신했고, 말년에는 US스틸 지분을 팔아 장학사업에 매진했다. 미국 부자의 기부문화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

장학사업이 부자의 전유물은 아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끼니를 걱정하던 중학생 시절에 프랭크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石虎弼) 박사로부터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았다. 일제 강점기에 세브란스의전 교수 신분으로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스코필드는 해방 후 한국에 돌아와 외국 친구들이 설립한 기금으로 장학사업을 벌였다. “약자에겐 비둘기 같은 자애로움으로, 강자에게는 호랑이 같은 엄격함으로 대하라”는 그의 가르침은 지금도 정 전 총장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고 한다.

장학금은 이처럼 인재를 키워 낸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이 악조건을 이겨낸 데는 장학금의 힘이 컸다.

고 최형규 형애장학재단 이사장이 지난 43년간 6000여명의 학생에게 남몰래 장학금을 전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는 최근 숨질 때까지 ‘익명 독지가’의 신분을 고수했다.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서 구절을 연상시킨다. 작은 선행도 크게 선전하는 매명(買名) 인사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 오랜 세월 무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기적이다. 부정선거 지령 혐의로 4·19혁명 직후에 사형당한 형(최인규 전 내무장관)에 대한 연민이 장학사업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좋은 동생을 두었으니 형의 죄업도 많이 씻겨졌으리라 믿는다.

주변에는 남을 도와주는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배우지 못한 할머니가 작은 식당을 꾸리면서 평생 모은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하는 것은 이제 특별한 뉴스거리가 아니다.

지금 경제위기 한파로 학생들이 느끼는 경제적 부담이 갈수록 커진다. 이럴 때일수록 장학금은 위력을 발휘한다. 학업을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인 학생에게 길을 열어준다. 어려운 시절에는 장학금 지급만 한 덕행도 드물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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