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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보십니까] 부부강간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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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2-02 20:34:48 수정 : 2009-02-02 20: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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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자기 성 결정권이 먼저냐, 부부간 성생활을 함께할 의무가 먼저냐. 최근 법원의 부부강간죄 인정 판결에 대한 공방이 뜨겁다. 더구나 피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논란은 더 가열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영국 등에선 판례나 법률을 통해 부부강간죄를 인정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사회적 공감대는 물론 법제화에 대해서도 이뤄진 게 없다. 부부관계에까지 법의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느냐에 대한 거부감이 무엇보다 높다. 이에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통해 사회통념의 변화와 공감대를 확산시킬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김형준 중앙대 법대 교수
부부관계 특수성 때문에 강간문제 더 위험


부부강간죄의 성립을 부정하는 입장은 대체로 부부간에는 동거의무가 있다거나, 사회정서상 시기상조라거나, 가정폭력 관련 특별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거나,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강간죄는 부부간에도 성립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강간죄를 규정하고 있는 현행 형법 제297조는 그 객체를 ‘부녀’ 즉, 여자라고만 규정하고 있으므로 아내를 배제해야 할 이유가 없다.

둘째, 부부간의 동거의무에는 성관계가 포함돼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정상적인 요구의 범위 내에서만 인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폭행이나 협박’을 동원한 강제적인 성관계에 대해서까지도 동거의무를 이유로 강간죄의 성립을 부정할 수는 없다.

셋째, 종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강간죄의 보호법익을 ‘정조’라고 이해했지만 특히,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강조되고 있는 이 시대의 흐름에 비추어 보면 부부강간을 부정한 1970년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 현재에도 그대로 의미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넷째, 아내에 대한 단순 가정폭력과 성행위를 전제로 하는 성폭력은 개념상으로는 물론 법령상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그 대상 범죄에 강간을 포함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부부강간을 가정폭력범죄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섯째, 부부관계의 특수성이나 악용의 우려가 지적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부부관계의 은밀성이나 계속성이라는 특수성이 타인에 대한 강간보다 더 큰 위험을 유발할 수 있고, 또한 악용의 여지는 강간 이외의 가정폭력의 경우에서도 공히 나타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이를 이유로 부부강간을 부정할 수도 없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인권·안전센터장
부부간에도 성적 자기결정권 보장해야


부부간에도 ‘성적 자기결정권’은 보장돼야 하고 현행 형법으로도 아내 강간은 충분히 성립될 수 있다.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로 규정하고 있을 뿐 강간죄의 피해자를 가해자와의 관계로 구별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아내가 ‘부녀’에 해당되는 한 남편에 의한 아내 강간은 충분히 성립될 수 있다.

우리 법원은 최근에 부부 강간을 인정한 판결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아내 강간을 인정하지 않았다.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배우자는 강간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강간죄의 보호법익이 ‘정조’라면 남편이 아내를 강간한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정조란 남편에 대한 아내의 성적 충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내가 남편 이외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경우 침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정조’가 아니고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데에는 다툼이 없다.

일반적으로 결혼은 성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나 어떠한 상황에서나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합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부부 강간이 인정되면 부부 사이에 감정적 보복, 재산분할과 같은 경제적 목적 등 여러 사유로 고소를 남발하는 등 부부 강간이 오용되거나 남용될 가능성이 있고, 국가권력의 과도한 개입이 부부간의 화해를 방해하고 불화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오용과 남용의 가능성은 수사와 재판 등 형사사법절차에서 그 진위를 가리면 되고, 부부간의 화해를 방해하고 신뢰에 금이 가게 하는 것은 국가권력이 개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배우자의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폭력적인 성관계 그 자체에 있다.

오경식 강릉대 법학과 교수
가정 파괴·사생활 침해·공권력 낭비 우려


얼마 전 부부강간죄를 인정한 부산지법 제1심 판결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본 판결의 취지는 현행법에서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혼인 중의 부녀를 제외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에서 부부강간죄를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부강간죄를 인정할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첫째, 부부강간죄의 인정이 가정의 파괴를 쉽게 야기할 수 있다. 최근 이혼숙려제도의 도입으로 부부싸움으로 인한 감정 이혼 발생을 막아 이혼율이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부부강간죄를 인정하면 이러한 제도의 도입 취지와 달리 가정을 쉽게 파괴할 수 있어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둘째, 부부강간죄의 인정이 심각한 사생활의 침해와 국가공권력의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부부강간죄가 인정될 경우 부부간의 성문제에 대해 국가의 감시와 감독 및 보호책임이 뒤따른다.

셋째, 부부강간죄의 인정은 부부간 성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은 해석이다. 혼인함으로써 부부는 연(緣)을 맺는다. 부부간의 성관계는 혼인이라는 계약을 통해서 당사자들이 서로를 인정한 경우이다. 혼인이라는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부부강간죄를 인정한다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넷째, 부부강간죄를 이혼의 수단으로 고소가 남용될 수 있다. 이혼과정에서 유리한 재산분할과 위자료 등을 받을 목적으로 이를 악용할 경우 고소가 남용될 수 있다.

다섯째, 부부강간죄 인정 대신에 가정폭력특별법에 의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황태윤 법무법인 나은 대표변호사
가정폭력방지법 등 현행법으로 처벌 가능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 배우자를 포함하는 것은 우리 사회 여건에 비추어 볼 때 아직 무리라고 본다.

혼인생활 동안 배우자 간 성관계 의무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박철과 옥소리 간 이혼 소송에서 옥소리 측의 중요한 반론 중 하나는 박철과의 성관계 횟수였다. 부부간의 성관계 여부는 가사소송에서 이혼사유와 위자료 참작요소로 차분하게 다루어지면 충분한 것이다.

성관계에 폭력이나 상해가 동원된다면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처벌 가능하다. 특히 가정폭력에 대하여는 특별법으로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있다.

우리나라는 성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강력하고도 대대적인 단속이 아무런 원칙 없이 불쑥불쑥 임의로 행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성적 욕구는 결혼 외에는 합법적으로 풀 길이 없다.

부산지방법원에서는 필리핀인 아내에게 가스분사기와 흉기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된 남편에게 특수강간죄를 인정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번 사건에서 검사는 성관계에 수반된 폭행, 상해에 대해 다른 죄명으로 기소할 수 있었고, 재판장 역시 적절한 죄명으로 공소장 변경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이번 판결을 두고 부산지방법원의 공보판사는 “이번 부부강간죄 인정 판결은 우리 사회가 부부간의 성 윤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능히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언론에 발표했다. 이는 분명 섣부른 평가다. 1심 판결은 상급심의 판결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정리=황온중 기자 ojhw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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