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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문근영 악플’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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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1-18 17:46:30 수정 : 2009-01-18 17: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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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진 미디어평론가
최진실씨의 자살로 사회문제화된 악성 댓글에 대한 비난이 정부 여당의 ‘사이버모욕죄’ 입법 주장으로 이어지면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또다시 문근영씨의 선행에 대한 악성 댓글이 등장해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8억5000만원이라는 거액을 기부한 익명의 20대 여자 연예인이 문근영씨로 밝혀지면서 선행천사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는 중 칭찬은 못할망정 고질적인 악성 댓글이 달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일부 네티즌은 문근영씨의 가족사를 들먹이며 기부 행위를 ‘빨치산 선전용’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심지어 우파 논객 지만원씨는 자신의 홈피에 ‘색깔론’과 ‘배후론’을 제기하면서 문근영씨를 빨갱이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SBS 8시 뉴스의 클로징 멘트는 이렇게 끝난다. “배우 문근영씨의 선행에 또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여러분도 아마 함께 분노하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의 격을 떨어뜨리고, 치욕감을 느끼게 하는 이런 행태에 대해서 우리 국민 모두가 집단소송에라도 나서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집단소송’을 힘주어 말하는 앵커의 결연한 모습에서 사태가 뭔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두말할 필요 없는 천사 같은 선행에도 악성 댓글이 달리다니, 정말 사이버모욕죄가 필요하긴 한가 보다. 사이버모욕죄 찬성 여론을 조성하기에 꼭 맞춤한 사건이다.

여기서 정말 이상한 것은 악플 그 자체가 아니라 악플을 과도하게 중시하고 악플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이다. 대부분의 악플이란 별로 주목할 필요도 없는 하찮은 말들이거나 의미 없는 욕설이다. 그것들은 주로 글을 올리는 사람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자기 노출적 성격을 지닌다. 모든 사람이 대다수의 악플을 ‘악플’로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악플의 영향력의 한계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악플은 대개 아무것도 아닌 허접스러운 말들이며, 실상 인터넷을 떠도는 많은 글과 기사가 그와 마찬가지로 허접스럽다. 유치원생부터 전 국민이 다 보는 포털 화면과 인터넷 신문에는 숱한 낯 뜨거운 여배우들 벗은 사진과 선정적 문구, 이게 왜 기사거리가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낯 간지러운 억지 기사와 가십이 넘쳐난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서로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좀처럼 허용하지 못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이다. 정치나 사상은 말할 것도 없고 규범이나 관습, 선악의 문제까지 모든 사안에 대해 모든 사람이 동일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문근영씨를 좋아할 수도 없고, 심지어 그녀의 기부행위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자신이 그와 같은 선행을 할 수 없는 처지 때문에 시기와 질투를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러한 기부의 혜택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 현실에 불만을 품을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개인의 기부행위가 사회적 복지의 책임을 떠맡는 구조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지만원씨와 같은 극우 인사의 생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밝힘으로써 우리는 우리 사회에 함께 공존하는 극우 논리의 실태와 수준에 대해 인지하고 이해할 기회를 얻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지만원씨의 논리를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어딘가에 또 올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문화의 현주소이고 그러한 논쟁의 과정에서 발전의 가능성도 생겨난다. 사이버모욕죄를 강제적으로 신설해서 사람들의 생각과 글을 차단한다고 해서 문화적 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사고나 인식의 폭과 깊이가 넓고 커지는 것도 전혀 아니다. 예의와 교양은 강압과 통제에 의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친 교육, 인성교육과 미디어교육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네티즌들은 스스로 알아서 자정의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악성 댓글에 대한 수많은 비판과 비난의 댓글이 바로 이를 증명해준다.

신주진 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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