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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영 칼럼]克日의 길, 선린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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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8-06 15:18:45 수정 : 2008-08-06 15: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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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면서도 독일과 일본의 태도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드러낸다. 독일은 철저히 반성했다. 전범(戰犯)에 대해서도 사법적·역사적으로 단죄했다. 하지만 일본은 A급 전범들의 위패를 전몰자를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고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공공연히 참배 행렬에 앞장서 왔다. 전범 재판 당시 판사 11명 가운데 유일하게 무죄의견을 낸 인도인 라다비노드 팔 판사의 기념비를 야스쿠니 신사에 건립하고 칭송을 아끼지 않는 것을 봐도 저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최근의 독도 논란도 이런 연장선상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우파 지도자들은 요즘 ‘자학(自虐)사관’을 벗어나 ‘긍정과 자존의 역사’ 교육을 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러다 보니 ‘침략’을 ‘진출’이나 ‘자위를 위한 정벌‘로, ‘수탈’을 ‘시혜(施惠)’의 역사로까지 미화한다.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의 불을 댕겨 놓고도 미국의 원폭투하로 수십만명이 희생됐다는 점을 백배는 더 강조한다.

자기합리화에 몰입하는 일본 우파의 역사인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한국 측이 아무리 비판해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게 뻔하다면 접근 방법을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역사, 특히 장구한 한일 교섭사 속에 눈부신 족적을 남긴 ‘도래인’의 역할을 철저히 밝히는 작업은 이런 점에서 대단히 중요해 보인다.

기실 일본의 언어와 역사, 종교, 문화 등은 한반도와의 연관성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이처럼 흥미진진하고 값진 탐구 과제를 한국인은 외면해왔다. 국내 대학에 일어일문학이나 일본학 연구자가 적지 않지만 대부분 현대어문학 아니면 경제나 자연과학 분야에 치우쳐 있다. 언어와 역사 등 한일교섭사의 뿌리를 살피는 작업은 불모지나 다름없어 보인다. 이 분야 연구는 질과 양에서 일본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다. 이러고서야 ‘극일’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부끄러운 일 아닌가.

일본 왕실이 한반도 이주민의 후예라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2002 한·일 월드컵 준비가 한창이던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자신의 68회 생일을 맞는 기자회견에서 “옛 간무(桓武·재위 781∼806)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돼 있는 사실에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본 왕실의 가계가 한반도 도래인의 핏줄과 연관이 있음을 공개석상에서 처음으로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한국 언론이 이를 크게 보도한 반면 일본 언론은 침묵했다. 왜? 그들의 자존심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와세다대에서 역사를 가르쳤던 미즈노 유(水野祐·1918∼2000) 교수는 일본 고대왕조는 한반도에서 이주한 귀화인들에 의해 성립됐다고 단정했다(天皇家 秘密, 1977). 일본 왕실이 제정한 법령(貞觀式 871년, 延喜式 927년)에 백제신과 신라신을 제사로 모시는 법도까지 확립돼 지금까지 전해 온다고 한다. 왕실뿐인가. 일본 전역에 백제와 신라, 고구려 등 한반도 이주자가 건설·제작한 사찰·불상 등의 문화재가 무수히 널려 있다. 일본 학계의 연구성과가 적지 않건만 이를 제대로 아는 일본인은 많지 않고 문화재 등 홍보 자료에마저도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예가 부지기수라 한다.

이런 내용이야말로 한국의 사학도에게는 보물이나 다름없는 연구과제들 아닌가. 새삼스레 ‘우리가 종가(宗家)’라는 민족주의적 우월감을 확인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두 나라의 역사적 토대를 확인하고 공유함으로써 근현대 이후 쌓인 불신과 반목을 해소할 길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저들이 추구하는 ‘긍정과 자존의 역사’의 원류에서부터 사실(史實)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우호와 선린관계의 첩경이 아니겠는가. 일본 역사연구에 한국인이 관심을 쏟아야 할 이유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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