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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한 여성이다
부당한 것을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살면서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 하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불쑥 튀어나와 금세 뒤죽박죽 뒤얽히고 만다. 결국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것 대신 삶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자신의 삶임에도 불구하고 방관자적 입장이 되기 일쑤다.
이런 점 때문에 한 사람의 삶을 담은 이야기는 끊임없이 읽히 게 마련이다. 이미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알고 있기에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자기 삶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원인과 결과를 추측할 수 있는 재미를 맛보게 된다.
피터 콘은 그 대상을 펄 벅(1892∼1973)으로 정했다. 그는 펄 벅의 평전을 쓴 이유로 세가지를 꼽는다. “그의 삶이 파란만장하고 흥미롭다는 것. 그가 매우 중요한 여성이라는 것. 그의 이야기가 사회적 현홴湧?전체 목록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를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우리의 상처를 고스란히 보듬고 있기 때문이다.
펄 벅하면 중국의 왕룽 일가를 다룬 장편소설 ‘대지’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노벨문학상 수상자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남긴 그의 흔적은 남다르다. 1963년 출간된 ‘살아있는 갈대’는 한국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소설은 1883년 미국과 최초의 조약을 맺은 때부터 일본의 한반도 점령이 종식되는 2차대전 말까지 60여년 동안 한 가족의 4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집필 당시 펄 벅은 부천 심곡동에 혼혈아동을 위한 소사희망원을 열었다. 1964년 혼혈, 장애 등의 문제로 소외된 아동들을 돕는 펄벅인터내셔널을 한국을 모태로 세계 각국에 설립하기도 했다. 그의 입양 자녀 대부분도 한국계 아이들이었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남긴 상처와 맞닥뜨리게 된다. 혼혈, 장애 등 어쩔수없는 환경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아이들,

결국 그 아이들을 입양하는 펄 벅과 접하게 되면 그의 삶 속에 스며든 ‘한국’이란 공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펄 벅 평전’은 정치적인 이유로 사라진 펄 벅의 자리를 되찾는 데 주력한다. 적극적인 인권 활동으로 인해 우파에게서도 환영을 받지 못한 펄 벅은 반공산주의 발언으로 인해 좌파에게서도 불신을 받기에 이른다. 좌우 대립이 극심한 시기였던 냉전시대에서 그가 설 곳은 없었다. 지은이는 펄 벅이 세계 인권운동에 미친 영향과 미·중 간의 문화·정치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한번쯤 짚어볼 만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5개월 때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 전장에서 성장한다. 40여년이란 기간을 중국에서 보낸 그는 완전한 중국인도, 그렇다고 완전한 미국인도 아니었다. 경계에 선 그는 대신 미국과 중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지니게 됐다. 특히 어린 시절 중국의 가부장적 제도 안에 얽매인 여성들의 위치는 훗날 그가 여성 인권에 앞장서는 역할을 맡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다. 그의 유모이자 가정교사였던 왕의 모습은 현실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의 삶을 그대로 보여줬다. 왕의 발은 전족을 해 길이가 8㎝밖에 안 되었다. 선교사인 아버지의 여성폄하적 가치관과 함께 아버지에게 늘 순종하며 자신의 삶을 희생한 어머니의 모습 역시 그에게 여성의 위치를 새삼 깨닫게 한다.
중국에 관한 소설 ‘어머니’ ‘조강지처’ ‘아들들’ ‘용의 후손’ ‘서태후’ ‘일가’ 를 비롯해 미국에 관해 쓴 ‘자랑스러운 마음’, 자서전 ‘나의 세계들’ 그리고 여성의 권리를 옹호한 ‘남성과 여성에 대하여’ 등 현실에 저항하는 그의 열정적 태도는 소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은이는 그의 소설에 대한 재평가뿐 아니라 1, 2차 대전의 한복판에 서 있던 펄 벅의 삶 속에 사회적·정치적 상황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이뤄냈는지 미국과 중국의 역사를 따라가며 읽어낸다. 펄 벅은 중국의 유교 논쟁에도 참여했으며 여성해방 투쟁에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미국에서도 그는 중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태도를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인종차별, 여권운동 등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펄 벅 평전’은 그의 삶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겼던 딸 캐럴 그레이스 이야기도 싣고 있다. 1920년 딸 캐럴을 낳을 당시만 해도 펄 벅은 아이의 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캐럴은 대사장애유전병인 페닐케톤뇨증을 앓고 있었다.

심한 정신지체를 안고 살아야 하는 캐럴과 자궁에 종양이 생겨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아픔을 이겨내는 펄 벅의 모습 속에서 그의 강인한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캐럴로 인해 그는 겸손함을 배웠고 더 큰 사랑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다.
“나는 본래 조용한 여성이다.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억누르지만 않는다면. 억눌릴 때 나는 맹렬하게 명확히 말을 하게 된다.” 펄 벅이 밝힌 것처럼 그는 ‘명확히’ 세상에 대해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 문학에서뿐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도 그는 삶에 널려 있는 부당한 것들과 싸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펄 벅 평전’은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묘한 힘을 발휘한다.
지은이 역시 펄 벅이 남긴 묘한 힘에 매료돼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펄 벅이 세운 입양기관 웰컴하우스를 통해 지은이 역시 한국인 아이를 입양했다. 한국 이름 김경림을 가진 아이 제니퍼 경 콘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훨씬 풍요로워졌음을 고백한다. 더불어 산다는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한 펄 벅의 삶은 책을 덮고 난 뒤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특히 한국에 남긴 그의 흔적들은 늘 ‘내것’에만 관심을 쏟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윤성정 기자 ys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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