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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길에서만난사람]<4>스페인-순례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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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9-07 09:48:00 수정 : 2007-09-07 0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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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소리 따라 순례의 길을 걷는다” 긴 여정에서 만난 오스트리아인 롤란트. ‘진실’ 을 찾기 위해10년 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했지만 결국 깨달음을 얻은 곳은 고향이었다고, 정말 행복한 진실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바로 우리 곁에 있는 것인지…

지난해 여름, 생일 기념으로 프랑스의 생 장 피에 드 포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별이 있는 들판의 산티아고·이하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 시작할 때는 생일날 왜 사서 고생하고 있나 싶었지만 며칠이 지나니 금세 적응이 됐고, 한 달 동안 그 어느 때보다 평안하고 행복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큰 즐거움이었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례자는 롤란트라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었다.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에서 종종 “왜 순례자의 길을 걷게 되었어?”라는 질문을 하곤 했는데, 롤란트의 대답은 특별했다.
“내 마음의 소리가 순례자의 길을 걸으라고 했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걷는 길이라고 했다. 1990년대 어느 날인가부터 더 이상 돈을 벌지 않고, 채식주의자가 되어 세계를 여행했다고 했다. 그 이유가 궁금해 물으니 이번 대답은 더 특별했다. “진실을 찾기 위해서(I want to know the truth)”
어느새 우리들 주변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는 항상 대답하기에 앞서 “나의 이야기는 왜곡되지 않은 진실이야. 하지만 내가 진실을 알려준다 해도 정말 믿을 수 있겠니?”라 물었다. 나는 질문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질문과 그의 대답을 들었다.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롤란트와 함께 걷게 되었다. 축지법을 배운 것처럼 하루에 50∼60km를 걸을 수 있는 그였지만 평균 25∼30km를 걷는 내 속도에 맞춰 주었다. 그는 지루하다 못해 졸렸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고 항상 여유 있는 미소를 보였다.
“아니따(Anita, 필자의 스페인어 이름), 30년을 사는 동안 나보다 많이 여행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넌 정말 특별해.”
◇스페인 부르고스(Burgos)의 축제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들.(왼쪽)◇산티아고 대성당의 웅장한 모습.

“나도 지금까지 여행하는 동안 만났던 외국 사람들 중에서 네가 제일 특이해. 하하하.”
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인도의 한 유명한 구루(스승) 밑에서 몇 년간 수행했는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로 돌아왔단다. 우연히 사람들의 오오라(사람이나 물체에서 발산하는 영기·靈氣)를 볼 수 있는 한 여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순간 깨달음을 얻었고, 이번 여행이 끝나면 고향 근처에서 정착할 계획이라고 했다. 10년이 넘게 진실을 찾아 헤맸는데, 결국 깨달음을 얻은 곳은 자기 나라 오스트리아였다며 피식 웃는다.
파울루 코엘류가 순례자의 길을 걸은 후 쓴 소설 ‘연금술사’를 보면 주인공인 산티아구는 보물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여러 험난한 과정을 거쳐 보물이 묻혀 있다는 피라미드까지 가지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절망에 빠져 고향에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보물은 뜻밖에도 산티아구가 양치기였을 때 양들과 함께 자곤했던 버려진 교회의 무화과나무 아래 묻혀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당신은 모든 걸 알고 있었잖아요? 내가 이 교회까지 올 수 있도록 금조각까지 미리 맡겨놓고 말이에요. 미리 알려줄 수도 있지 않았나요?”
왕은 말했다. “만일 내가 미리 일러주었더라면, 그대는 정녕 피라미드를 보지 못했으리니. 어땠나? 아름답지 않던가?”(‘연금술사’ 중에서)
# 순례자의 길… 유럽전역서 야곱 무덤 있는 산티아고까지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스페인어로 ‘산티아고(야곱의 스페인어)의 길’이란 뜻으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자 첫 순교자인 야곱을 기리며 순례자들이 걷는 길을 말한다. 이 길은 유럽 전역에서 스페인의 서북쪽 끝인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야곱의 무덤이 안치된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1078년부터 짓기 시작해 1124년에 완공됐다.
산티아고는 9세기 초 야곱의 무덤이 발견된 이후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기독교 3대 성지로 떠오르면서 순례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2∼13세기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가 그 후 순례자 수가 감소하며 쇠퇴했다. 1960년대에 프랑스 신부에 의해 순례자의 길이 복원됐고, 1982년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1987년에는 유럽연합(EU)에 의해 유럽 문화 길로, 199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파울루 코엘류가 1986년 이 길을 걸은 후 쓴 소설 ‘순례자’와 ‘연금술사’를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과거엔 종교적인 이유로 걸었지만, 현재는 스페인의 문화와 자연을 즐기거나 스포츠로 걷는 사람도 많다. 지난해 10만여명이 이 길을 걸었고, 한국인은 2004년 3명, 2005년 14명, 2006년 66명이 걸었다. 성 야곱의 축일인 7월 25일 전후로 성대한 축제가 열리기 때문에 주로 6월에 순례자들이 몰린다.
여행작가(www.prettynim.com)

# 여행정보

프랑스 파리에서 순례여행을 시작하는 생 장 피에 드 포르까지는 기차를 이용해 갈 수 있다. 도착하자마자 순례자 사무실에 들러 크레덴시알(Credencial, 순례자 여권)을 만들고 자세한 안내를 받는 것이 좋다.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6∼7시간씩 25∼35km를 걷기 때문에 튼튼한 신발은 필수이며, 자외선이 강해 선글라스·선크림·모자 역시 빼먹어서는 안 된다. 걷는 초기엔 무리하지 말고 물을 충분히 마시며 중간중간 휴식을 취한다.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는 평균 5유로(1유로는 약 1300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며, 식사는 숙소 주방에서 많이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식당에서 아침은 2∼5유로, 점심과 저녁은 7∼10유로선이다. 대부분 영어가 통하지 않으니 기본적인 스페인어는 익혀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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