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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폴란드 클라쿠프

입력 : 2008-03-01 11:18:04 수정 : 2008-03-01 11: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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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성의 모습. 황금돔이 보이는 건물은 지그문트 예배당으로 폴란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 건축물로 꼽힌다.
폴란드에 가게 된 건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멕시코에서 만나게 된 폴란드 친구가 폴란드엔 와 봤냐고 물었다. “거기 춥지 않아?”라고 딱 한마디 했을 뿐인데, 표정이 싹 바뀌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은 폴란드가 추운 곳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폴란드는 독일보다 따뜻한데 말이야. 볼 것도 많아.” “알았어, 친구. 내가 꼭 폴란드에 갈 테니까 화내지 마.”

파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바르샤바는 화려했다. 구 시가지의 모습은 서유럽 못지않게 아름답고 아기자기했으며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하나도 안 보였지만 말이다.

구 시가지의 호스텔에 숙소를 구하고 룸메이트들과 인사를 나눴다. 필자와 아일랜드에서 온 한 명을 빼고 모두 남자였는데, 모두 친절하고 재밌는 사람들이었다.

짐을 놓고 슈퍼마켓에 잠깐 들렀다 왔는데 새로운 가방 두 개가 보였다. 아일랜드 언니가 독특한 남자 두 명이 들어왔다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프랑스인인데 하루에 네 번씩 15분간 명상을 한다고 해.” “그래? 정말 특이하네.”

다시 나갔다가 돌아오니 같은 방 친구들이 한쪽에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눈에 뛰는 한 남자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 뒤에 후광이 보였고 얼굴에서 빛이 났다. 아무래도 필자가 반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내색 않고 친구들이 내주는 자리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직업이 화제에 올랐다. 그의 직업은 ‘소방관’이란다. 그래서 영화에서처럼 타오르는 빌딩에서 헬기를 타고 사람을 구출하는 일이 있냐고 물으니,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렇단다. 
◇폴란드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남녀.

“아파트에 큰불이 났었지. 나는 창문을 깨고 들어가 아기를 구하게 됐어. 그 아이는 8개월쯤 되었는데 사실 거의 죽어가고 있었지. 내가 아이를 안고 창 밖으로 나오는데….”

모두 눈을 반짝이며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오는데?” 이어서 얀이 말했다. “그만 아이를 떨어뜨렸어. 난 그 이후로 소방관 일을 그만뒀지.”

방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누군가 재빨리 화제를 돌려 다행이었다. 잠시 뒤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러 갔는데 아까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지금 그가 어떤 마음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관심이 가는데 내일 아침 일찍 다른 도시로 떠난단다. 그냥 이렇게 헤어지나 보다 했는데 나와 행선지가 같다. 의기투합해 아일랜드 친구가 추천한 호스텔에서 만나기로 했다.

크라쿠프에서 그녀가 추천한 숙소는 스트레인저 호스텔(Stranger Hostel)이었는데, 이름 그대로 아무도 이 호스텔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겨우 겨우 찾아 문을 열었는데 맥주 냄새가 확 풍겼고 사람들은 아무데서나 늘어져 자고 있었다. 필자 취향에 맞는 숙소는 아니지만 일단 체크인을 했다. 그를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투숙객 명단에 얀의 이름이 없다. 너무 아쉬웠지만 ‘이런 게 여행이니 어떡하겠어’라고 생각하며 방에서 잠을 자고 나왔다. 리셉션을 보니 “Chung, some message for you.”(정, 누가 당신에게 메시지를 남겼어)라고 적혀 있다. 심장이 두근두근, 그렇다. 얀이었다!

“호스텔을 찾았는데 너가 없네. 11시쯤에 다시 올게.”

그렇게 그를 다시 만났다. 안타깝게도 단 둘이서는 아니었고 숙소에서 만난 일본인과 함께였다. 바에 갔다가 너무 시끄러워 카페를 찾아 광장에 갔다.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가는지 정리하는 곳도 있었는데 얀은 좀처럼 맘에 들지 않는 눈치다.

“우리, 아무데나 앉자.” 코끝을 찡그리며 뭔가 생각한다. “도대체 왜 그래? 다 똑같이 생겨보이는 카페인데….”

“그게 말야. 음… 초가 없잖아.” 일본 친구와 나는 눈을 마주치며 동시에 말했다. “초라고?” “그래, 초.” “초가 왜 필요한데?” 얀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초가 없으면 낭만적이지 않잖아.”

일본인 친구와 나는 동시에 1분 정도 웃었다. 필자는 카페에 앉아 웨이트리스를 불러 말했다. “여기요, 초를 가져다 주세요. 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이 낭만적인 프랑스 친구가 초가 필요하대요.”

우리는 그곳에서 한동안 낭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다음날 그는 동생과 함께 다른 도시로 떠나 만날 수 없었지만 1년 동안 메일과 인터넷 전화로 소식을 주고받다 얼마전 그가 사는 리옹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여전히 쾌활하고 재미났으며 리옹에서 한참 준비 중이던 빛의 축제에 대해 말해 줬다. “이 기간이 되면, 리옹시민들은 밤새도록 집 안에 초를 밝혀.”

그래서 그때 초를 찾았던 건가? 얀 덕분에 프랑스 사람은 낭만적이라는 ‘편견’이 생겼다.

#크라쿠프

지금은 폴란드 제2의 도시지만, 1138년부터 16세기까지는 폴란드의 수도였다. 구 시가지의 바벨성(Zamek kroewski na Wawelu)은 당시 왕이 살았던 곳으로, 폴란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그문트 예배당(Kaplica Zygmuntowska)과 왕궁이 있다. 크라쿠프 근교에는 우리에게 아우슈비츠라고 잘 알려진 오시비엥침과 소금광산인 비엘리치카(Wieliczka)가 있다.

오시비엥침은 나치에 의해 200만∼4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한 충격의 현장이다. 이곳으로 보내진 사람 중 70∼80%가 도착과 동시에 학살당했으며, 나머지는 이곳에서 중노동, 기아, 실험 등으로 죽어갔다. 수용소 정문에는 ‘Arbeit Macht Frei’(노동이 자유를 가져다 준다)는 말이 써 있다. 소금광산은 지하 80m에 형성된 자연동굴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가이드 투어로만 돌아볼 수 있는데 지하에는 이곳에서 일한 광부가 만든 거대한 소금성당이 있다.

여행작가

◇피에로기를 파는 식당의 외부.                        ◇만두요리 피로기와 비트수프.


# 여행정보

폴란드로 가는 직항은 없다. 에어프랑스, KLM 등 유럽 항공을 통해 1번 이상 경유해야 한다. 필자처럼 유럽여행 중 저가항공을 이용해 들어갈 수도 있다. 크라쿠프는 바르샤바에서 빠른 기차로 2시간30분, 일반 기차로는 6시간이 걸린다. 동유럽의 대략적인 물가는 서유럽의 절반 정도이지만, 폴란드는 다른 동유럽 국가보다 조금 더 높은 편에 속한다. 폴란드의 화폐 단위는 즈워티(1zł=425원)다. 숙소는 호스텔의 도미토리인 경우 35∼60zł이고, 식사는 10∼30zł선에서 해결할 수 있다. 추천할 만한 음식은 폴란드식 만두인 피에로기(Pierogi)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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