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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입양아 대모’ 허명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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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4-15 17:37:33 수정 : 2012-04-15 17: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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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간 입양 대기아 120여명 양육
“기르다 보면 남의 자식 같지 않아요”
갓난아이를 둔 엄마가 중요한 외출을 해야 할 때는 보통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를 찾는다. 그런데 반대로 시집 간 딸한테 SOS를 보내는 이가 있다. “딸, 엄마가 급하게 어디를 좀 다녀와야 하는데 우리 민혁(1)이랑 규희(1·여) 좀 잠깐 봐줄래.”

늦둥이라도 본 것일까. 아니다. 1980년부터 32년간 가슴으로 품고 길러온 아이만 121명. 친부모가 포기한 아이들을 입양이 결정될 때까지 맡아 기르는 ‘위탁모’ 허명자(68)씨 이야기다.

허명자씨는 “정든 아이들을 떠나 보내고 나면 온 집안이 울음바다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가끔씩 성장한 아이들과 만날 기회가 닿으면 이별의 아픔은 어느새 가슴 벅찬 감동과 뿌듯함으로 남는다.
동방사회복지회 제공
◆하나 둘씩 기르다 보니 어느덧 121명


처음 아이들을 맡아 키우기로 한 것은 ‘적적해서’였다고 한다. 1남2녀를 둔 주부였던 허씨는 큰딸이 중학교에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1980년,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들었다고 했다. 평소 입양 대기 아동을 키우던 이웃을 보면서 ‘나도 예쁘게 잘 키울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허씨. 바로 이웃에게 물었다. “형님, 저도 그거(위탁모) 해볼 수 있을까요.” 입양사업을 비롯해 아동과 부녀자, 장애인 등 복지사업을 하는 동방사회복지회와 연이 닿은 계기다.

위탁모 신청을 하고 3개월 여가 지났을까. 입양을 기다리던 영남이가 허씨의 집에 찾아왔다. 7남매의 셋째로 태어나 동생들을 돌봐 주고 3남매를 키운 베테랑 엄마 허씨지만, 피붙이가 아닌 아이를 키운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기르다 보니 정이 들었고, 가족들도 ‘순둥이’ 영남이를 아꼈다. 특히 허씨 자녀들이 마치 동생이 생긴 것처럼 좋아했다. “온 식구가 다들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었지요.” 허씨는 “꼭 내 새끼 같았다”고 했다.

아이 양육에 필요한 물품과 비용은 복지회에서 지원해 주지만, 육아의 책임은 오로지 위탁모의 몫이다. 때마다 우유를 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울면 달래주고, 아프면 병원 데려가는 아이 엄마의 생활. 배꼽도 채 떼지 않은 갓난아이부터 성질이 유순하지 않아 밤새 안고 달래줘야만 하는 아이까지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허씨의 품을 거쳐 갔다. 하나 낳아 키우기도 쉽지 않은 ‘육아’가 허씨의 일상으로 자리 잡은 것.

허씨는 “기르다 보면 남의 아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고 했다. 또 “남의 아이라고 생각하면 하기 힘든 일”이 ‘위탁모’ 생활. 허씨는 중요한 모임이 있을 때는 딸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가고, 시장에 갈 때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간다. 가족들과 떠나는 여름휴가 때 아이들과 동행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입양아 대모(代母)’ 허명자(사진 왼쪽)씨가 지금 데리고 있는 민혁이는 허씨보다 허씨 남편을 더 잘 따른다고 한다. 허씨는 “동생이 없는 여섯 살짜리 손주는 민혁이를 친동생처럼 챙긴다”며 웃었다.
동방사회복지회 제공
◆“아직도 그렇게 생각이 나요”


그동안 키운 100여명의 자식들 중에서는 9년 전 허씨를 거쳐 간 정식이(가명)가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릴 때가 많다. “팔 하나가 꼬부라져서 왼손이 펴지질 않는 아이였어요. 장애를 가진 아이라서 그랬는지 유독 정성을 쏟게 되더라고요.” 입양을 기다리는 아동은 많은 반면 위탁모 숫자는 적은 탓에 한 번에 아이 둘을 동시에 키우는 일도 다반사. 그러나 정식이가 곁에 있을 때만큼은 다른 아이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단다. 정식이한테만 집중하기 위해서다.

“애가 얼마나 똑똑했는지 몰라요.” 정식이를 떠올리는 허씨의 표정에 미소가 깃든다. “손주들이 와서 나한테 ‘할머니’라고 부르는 걸 들었나봐. 애가 말을 배우고 나서 ‘할무니엄마’ ‘할무니엄마’ 하고 부르더라고요.”

정식이는 입양 결정도 늦은 편이었다. 미국으로 떠날 때까지 2년가량, 허씨가 키운 아이들 중 가장 오랜 시간을 곁에 있었다. 어찌나 정이 들었는지 정식이가 아플 때 약국에서 산 약봉지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식이가 입었던 옷도 간직해 두고 있다.

지금 허씨 슬하에 있는 민혁이를 씻기고 나서 정식이가 입던 옷을 입혀줄 때면, 문득 정식이가 떠올라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입양 직후 수술을 받기로 돼 있었는데, 수술은 잘된 건지….” 몇년 전 정식이 사진이 한번 집에 도착해 근황을 확인한 적이 있지만, 여전히 멍하니 걱정에 빠질 때가 많다. “좋은 부모를 만났는지, 몸이 불편하다고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받지는 않는지 걱정이 돼요.”

허명자씨는 지난달 18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열린 동방사회복지회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동방사회복지회 제공
◆헤어짐의 아픔은 아직도 두려워


아이 하나가 떠나고 새로운 아이가 들어올 때까지의 몇개월을 제외하고 지난 32년간 허씨의 삶은 ‘육아’로 표현된다. 아이 기르는 일이 그의 즐거움이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던 삶. 그런 그도 이별의 아픔만큼은 여전히 견디기 힘들다.

“갓난아이들이 처음 우리 집에 올 때는 자기가 어떤 상황인지도 몰라요. 키워 주는 사람이 나니까 내가 엄마인가보다 하는 거죠.” 그런데 양부모가 결정되고 아이들이 허씨의 곁을 떠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한돌 두돌 때까지 엄마인 줄 알던 사람과 떨어지게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나 봐요.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래서.”

허씨는 “애 보내고 섭섭한 심정은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모른다”고 말했다. 처음 몇년간은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면 한참 동안 아이가 입던 옷을 빨지 못했다고 한다. “아기 냄새가 사라지잖아요.” 떠나보낸 아픔이 밀려들 땐 아이 옷에서 나는 체취를 맡으면서 그리움을 삭혔다고 한다.

아이들이 입양 갈 때 위탁모가 김포공항까지 동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공항에서 작별하고 나면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거예요.” 버스를 타고 서울 마포구 아현동 집까지 울면서 오다 보면 정거장을 지나치기가 일쑤였다. “굴레방다리를 지난 것도 모르고 충정로, 서대문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그랬죠. 우느라고.”

정든 아이들을 떠나 보낼 때마다 ‘이제는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느덧 일흔을 앞둔 나이도 부담이다. 장성한 자녀들도 “이제 그만 하실 때가 됐다”고 한다. “지들도 아는 거죠. 애기 낳아서 길러 보니까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어느덧 32년의 세월이 흘렀다. 큰손자가 벌써 군대를 다녀왔을 정도로 훌쩍 컸지만, 아이를 기르다 보니 정작 자기 손자손녀들에게는 소홀했던 허씨다. “딸들은 출가외인이고, 아들은 며느리가 있는데 걱정 없죠.” 허씨가 웃는다.

이제는 남편도, 자녀들도 말리기를 포기했다. 은퇴한 남편은 같이 아이를 돌봐 주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 예방접종하러 복지관에 갈 때마다 차를 태워 주는 든든한 응원군이다.

◆전 세계로 흩어진 늠름한 아들딸들

정이 든 아이를 낯선 환경으로 보내는 허전함과 슬픔을 달래는 건 그들이 가끔씩 허씨를 잊지 못하고 보내오는 안부 카드와 사진들 때문이다. 지난 1월에는 9년 전 호주로 간 남자아이가 양부모와 함께 허씨를 찾아오기도 했다.

1986년과 2010년에는 허씨가 미국 캘리포니아와 미네소타에 가서 늠름하게 성장한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2010년 쌍둥이 형제를 만난 기억은 아직도 가슴 벅찬 감동으로 남아 있다. 통역을 통해 겨우 의사소통을 했지만, 그들이 고마워하며 전하는 말의 온기는 고스란히 허씨에게 느껴졌다.

“피와 살이 섞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 키워주셨냐고 하더라고요. 또 좋은 부모한테 보내줘서 고맙다고도 하고.” 목이 메이는지 쉽게 말을 잇지 못한다. 쌍둥이 형제가 ‘우리가 좀더 컸으면 모시고 여행이라도 같이 다니면 좋은데 유감이다’라고도 했단다. “내가 정말 아이들을 키우기를 잘했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끼던 순간이었죠.”

해외 입양아들이 워낙 많아 생긴 ‘입양 수출 대국’이라는 오명을 벗으려는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친부모가 기르기를 포기한 아이들이 여전히 많은 상황.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동방사회복지회에서만 평균 400명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 중 ‘일시보호소’를 거치는 아동 50명을 제외한 350명이 위탁모 300여명의 품에서 자라고 있다. 위탁모가 되기 위한 조건도 까다롭지만 워낙 신청자가 적어서 위탁모 부족현상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상태. 허씨가 아이들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다.

허씨도 이런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입양을 꺼리는 분위기잖아요. 저는 ‘이 예쁜 애들을 데려다 키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해요. 기르다 보면 내 자식처럼 예쁘게 느껴지는데, 그건 길러봐야 알아요.”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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