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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는 정보공개] '행정정보의 보고' 라더니… 67억짜리 '빈껍데기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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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2-09 11:22:14 수정 : 2009-02-09 11: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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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록관리 대학원생의 접속 체험기 명지대 기록관리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장환(30)씨는 지난 6일 정부의 정보공개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피기 위해 ‘정보공개시스템’(www.open.go.kr) 사이트에 접속했다. 김씨는 사이트에 있는 기록이 무려 2억1800만여개에 달한다는 안내문을 보고는 어마어마한 정보 건수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각 부처에 청구된 정보공개를 통합 관리하기 위해 무려 67억원을 투입한 이 사이트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경악했다.

◇많은 공공기관들이 중요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정보 보호’ 등을 내세워 비공개하면서 정작 시민들의 개인정보는 여과 없이 공개하는 행태를 보인다. 사진은 성남 중원경찰서가 수사한 사기사건과 관련,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문서감정의뢰 기록을 정부 정보공개 사이트가 공개한 것. 본지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일부를 지웠다.
◆분류, 검색 ‘주먹구구’… 2억건 자료는 ‘쓰레기’=사이트에 접속해 각종 정보를 검색하면서 김씨의 얼굴은 점점 흙빛으로 변해갔다.

2300여건의 정보가 수록된 ‘청와대’조차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작성한 ‘식품접객업(일반음식점) 폐업신고 수리통보’ 등 청와대와 무관한 정보가 가득했다.

내친김에 2300여건의 청와대 자료를 모두 뒤졌지만 청와대에서 직접 공개한 자료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기존 청구 자료가 들어 있는 ‘공개청구자료’ 목록도 특허청에서 공개한 ‘2008년 지식행정 우수기관 선정관련 제출자료 요청’ 등 모두 다른 기관에서 제공한 것들이었다.

분통이 터졌지만 인내심을 갖고 청와대에서 현재 구입해 사용 중인 기자재 현황 파악에 나섰다. ‘청와대’, ‘기자재’, ‘구입’이라는 검색어를 각각 입력했다. 검색창에 ‘청와대’, ‘기자재’, ‘구입’이라는 낱말이 단 하나라도 포함돼 있으면 관련목록이 모조리 검색됐다. 문제는 정작 원하는 정보는 찾을 수 없다는 것.

‘청와대 기자재 구입’을 입력하자 ‘정보목록’, ‘사전공표정보’ 등의 메뉴에는 검색되는 정보가 전혀 없었고 공개청구자료 메뉴에만 6건의 정보가 검색됐다.

이마저도 교육과학기술부가 공개한 ‘대안학교 현황’(대학 진학률, 취업률 포함) 등 불필요한 기록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심지어 이 기록에는 해당 낱말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도무지 정보공개의 첨병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학교 도서관이나 온라인 서점의 검색은 제목, 저자, 출처, 발행 연도 등 항목을 이용자가 직접 지정하면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데 반해 정부 사이트는 여기에도 한참 못 미쳤다.

‘커피’라는 키워드를 치니 서울시교육청에서 기록한 ‘관내 등록된 학원, 교습소 명단’ 등이 뜨고, ‘담배’를 입력해보니 산림청에서 기록한 ‘녹색뉴딜 삶의 질 바꾼다’라는 담배와는 무관한 정보가 떴다. 수십번 다른 키워드를 입력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중요 정보는 덮고, 개인정보는 마구 공개=더욱이 ‘정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는 순간, 그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이트에는 경기 성남 중원경찰서에서 기록한 사기사건과 관련해, 문서감정의뢰 정보 중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가 버젓이 공개돼 있었던 것이다.

각 기관이 중요 공익정보에 대해서는 ‘정보 보호’ 등의 명분으로 꼭꼭 숨기면서도 시민의 개인정보는 마구 공개하는 행태에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그러면서 2억개가 넘는 정보 중 쓸모없는 기록만 담고 있는 사이트를 만드는 데는 어느 정도 돈이 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행안부의 정보공개 회신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05∼08년에 이 사이트 구축 및 보수 비용으로 67억원을 사용했다. 사이트 유지 비용을 감안하면 엄청난 돈이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부가 수십억원의 예산을 들여 구축한 사이트가 ‘쓰레기 정보’만 가득한 ‘실적 부풀리기용’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김씨의 마음을 씁쓸하게 했다.

◆“국민이 잘못” 행정안전부의 엉뚱한 해명=특히 김씨는 이 같은 현실을 모르거나 외면한 채 ‘막무가내’식으로 둘러대는 행안부의 해명에 더욱 기가 막혔다.

행안부는 7일 해명자료를 내고 “현재 정보공개시스템에는 약 2억건의 각종 정보목록이 갖춰져 국민들에게 편리하게 제공되고 있다”며 “청구인들이 사전에 목록 검색을 하지 않고 청구하는 경향이 많아 구체적 청구 정보가 무엇인지 혼란을 주고 있다”고 책임을 되레 국민에게 돌렸다.
정보공개 공공보도팀=김용출·나기천·장원주 기자 kimgija@segye.com, 유선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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