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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동해진출 전진기지 훈춘을 가다] 북풍한설 잊은 열기… 도시 전체가 공사장 방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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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 무역도시는 옛말… 고속도 등 인프라 건설로 분주
나진항 개발권 확보… 러 견제와 함께 韓·日 교역 창구로
창춘·나진 등 연결 ‘사통팔달’… 상반기 출해 가능할 듯
지난달 13일 북간도(중국명 연변) 연길에서 훈춘으로 가는 길은 며칠 전 내린 눈으로 꽁꽁 얼어붙었다. 두만강 하구에 위치한 훈춘은 한반도·중국·러시아가 만나는 삼각점에 위치해 있다. 빙판길을 엉금엉금 조심스럽게 오르는 길 양 옆에 쓰인 글귀에는 영하 30도의 북풍한설을 잠시 잊게 하는 열기가 느껴진다. “창춘(長春)-훈춘간 고속도로 건설을 가속화하자!” 슬로건대로 훈춘과 그 주변은 거대한 공사장을 방불케 한다. 고속도로, 철도와 도시 인프라 건설로 조용했던 인구 25만명의 변경 무역 도시는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중국 동해 진출의 전진 기지인 훈춘의 방천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중국, 러시아 3곳의 경계. 사진 바로 앞쪽이 중국이고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두만강철교의 왼쪽이 러시아 하산 지방, 오른쪽이 북한이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동해로, 훈춘 방천에서 동해까지는 15㎞에 불과하다.
훈춘=김청중 특파원
중국 정부는 최근 국력 신장을 바탕으로 동해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훈춘은 바로 동해 진출의 전진기지다. 중국의 동해 진출은 그동안 러시아와 북한이라는 높은 벽에 막혀 있었다. 북·중·러 세 곳의 육상 경계가 보이는 훈춘의 방천에서 동해까지는 불과 15㎞ 거리. 그러나 동해로 진출할 수 있는 해상 통로인 두만강 하류지역의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북한이 차지해 중국은 그동안 두만강을 뚫고 나갈 수 없었다.

중국의 동해 진출은 상반기쯤 본격화할 예정이다. 이르면 6월부터 북한의 나진항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제 훈춘∼나진항 구간의 도로를 이용한 뒤 나진항을 통해 동해로 나갈 수 있다.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촹리(創立)그룹은 2008년부터 나진항 제1호 부두 개발에 착수했다. 38만㎡ 규모의 나진항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이다. 지난해 연말 기준 10억위안의 투자 예정 자금 중 2700만위안이 나진항 개발에 투입됐다.

현재 훈춘에는 북한과 연결되는 통상구(口岸) 2곳(권하·사타자), 러시아와 연결되는 통상구 2곳(훈춘·훈춘철로)이 있다. 훈춘시 인민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 측은 오는 3월쯤 약 3개월 공정으로 권하통상구와 북한 나선시 원정리를 잇는 권하교 보수에 들어간다. 일제시대인 1937년 건설된 권하교는 노후해 본격적인 사용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초 북한 측이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던 권하교∼선봉(웅기)∼나진항 간 54㎞ 보수공사 계획도 성사단계에 진입했다. 선봉∼나진항 구간 22㎞에는 아스팔트가 깔려 큰 어려움은 없지만, 권하교∼선봉 32㎞ 구간은 아직 흙길이어서 도로 포장이 시급하다고 한다. 중국 측은 이 도로를 너비 12m의 중국 표준 2급 도로로 보수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동해 진출은 오랜 숙원이었다. 청나라는 러시아제국과 1859년 아이훈조약, 1860년 베이징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두만강 하류 지역 100㎢를 상실했다. 1886년 ‘중·러 훈춘동계약(東界約)’이 체결돼 중국 선박의 출해권을 일시적으로 인정받아 훈춘과 동해의 원산, 부산, 니가타(新潟), 나가사키(長崎)로 연결되는 항구 도시 간 무역이 활발해지기도 했다. 1938년 일·소간 장고봉 충돌 후 일본군이 두만강 하구를 막자 중국의 동해진출은 다시 봉쇄됐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중국 정부는 북한과 소련을 향해 줄기차게 훈춘을 통한 동해 출해권을 요구했다. 소위 항구를 세워 바다로 나아간다는 ‘건항출해(建港出海)’ 전략이었다. 이는 북한과 소련의 ‘보이지 않는 견제’에 부딪혔다. 소련은 북한을, 북한은 소련을 핑계삼아 사실상 중국의 출해권을 거부했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훈춘시 통상구관리판공실 김석률씨는 “두만강 하류에 퇴적물이 많아 방천을 항구로 개발하는 데 아직 어려움이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에 1993년부터 건항출해 전략에서 ‘차항출해(借港出海)’ 전략으로 전환했다. 항구를 빌려 동해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2000년 훈춘∼러시아 자루비노∼속초 간 해륙 교통로가 개통돼 가시적인 성과가 나왔다. 이 해륙 교통로는 훈춘∼자루비노 간 71㎞는 도로·철도로 이동한 뒤 자루비노항을 통해 동해 뱃길로 진출하는 루트다. 그러나 이 루트는 중국을 견제하는 러시아의 소극적인 태도와 높은 통관 비용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함경찬 속초시 훈춘사무소장은 “자루비노항을 거쳐 훈춘으로 들어갈 때 1인당 25만원의 뱃삯 외에 12만5000원의 통관세를 물어야 해 부담이 크다”며 “러시아 세관의 고압적인 자세도 훈춘∼자루비노항 노선 발전의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그동안 새로운 출구 확보를 추진해왔다. 훈춘∼나진항 루트가 바로 그것이다. 나진항 루트는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다는 다중포석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현재 훈춘∼자루비노항 루트는 한국과 일본을 향한 창구로, 훈춘∼나진항 루트는 중국 남방을 향한 창구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남북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훈춘∼나진항 노선을 통해 부산, 포항은 물론 일본의 항구 도시와도 연계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북한의 대중 의존도가 심화되면 이를 지렛대 삼아 건항출해 전략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중국은 동해진출을 위해 훈춘을 중심으로 대규모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해 11월 동북부흥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인 ‘창지도(창춘·지린·도문) 개방선도구사업’을 승인했다. 이는 오는 2020년까지 훈춘을 전진기지로 해 지린(吉林)성 창춘∼지린∼연길∼도문 일대를 동북아 물류기지로 개발해 러시아, 북한과의 무역을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 일대는 7만3000㎢(남한 면적의 약 73%)로 인구는 1090만명에 달한다.

창지도 개발계획은 오래전에 수립했지만 그동안 러시아, 북한에 막혀 실현되지 못하다가 나진항 사용권을 확보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창춘∼훈춘 간 고속도로 중 창춘∼연길 구간은 이미 개통됐고, 연길∼훈춘 구간은 오는 10월1일 개통을 목표하고 있다. 또 올해에는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창춘∼훈춘 간 고속철도 건설 공사의 첫 삽을 뜬다. 시속 250㎞의 고속열차가 완공되면 훈춘은 동북지역의 지하자원과 식량을 나진항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는 창구역할을 한다. 연길∼용정∼도문을 하나로 묶는 ‘연용도 일체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지난해 11월엔 헤이룽장(黑龍江)성 둥닝(東寧)현∼쑤이펀허(綏芬河)∼훈춘을 잇는 소위 ‘황금통로’도 개통됐다. 올해엔 이 구간에 철도 건설공사도 착수한다. 훈춘이 사통팔달 교통망의 중심으로 육성되면서 명실상부한 동해 진출의 전진기지로 부상한 것이다.

훈춘=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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