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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국제분쟁지역 진단] ‘비극의 씨앗’ 카슈미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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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80%가 무슬림… 印 편입후 전장으로 인도와 파키스탄 간 오랜 갈등의 뿌리는 카슈미르에 있다. 한때 ‘지상천국’이라고 불렸던 카슈미르는 이제 인도·파키스탄에서 각각 보낸 군인 수십만명이 집결한 ‘전장’이 돼 버렸다. 카슈미르를 가로지르는 통제선(LOC)을 중심으로 북서쪽은 파키스탄이, 나머지는 인도가 통제하며 일촉즉발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카슈미르 분쟁의 근원은 19세기 영국의 인도 점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의 간접 통치를 받던 카슈미르 지방은 토후 왕족들이 지배했다. 왕족은 지역 주민의 약 20%인 힌두교계였고, 주민 대다수는 무슬림이었다. 2차대전 종전 후 1947년 8월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하면서 종교별로 인도(힌두)와 파키스탄(이슬람)이 분리독립했다. 주민 절대 다수가 이슬람교도인 카슈미르는 파키스탄 편입을 요구했으나, 힌두계 토후왕 마흐라자 하리 싱이 인도 편입을 결정했다. 카슈미르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해 10월 카슈미르 이슬람 세력이 파키스탄의 지원 아래 수도인 스리나가르 점령을 시도하자, 인도가 군대를 파견해 1차 인·파 전쟁이 시작됐다. 양측 충돌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엔 개입으로 이듬해 8월 정전합의가 이뤄졌고,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에 각각 63%, 37%씩 영토가 쪼개져 최초의 통제선이 만들어졌다.

1964년 파키스탄이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을 공격하면서 2차 인·파 전쟁이 발발했다. 중국이 파키스탄을 지원하면서 카슈미르 사태는 더욱 복잡해졌다. 인도는 파키스탄·중국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워야 했고, 소련의 중재로 66년 1월 끝났다. 5년 뒤인 1971년 3차 전쟁이 터졌다. 파키스탄 내분으로 방글라데시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인도가 개입하면서 무력충돌이 재개됐다. 전쟁은 1년 동안 계속됐고, 그때 지금의 통제선이 확정됐다.

1980년대 들어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 내 이슬람 세력이 분리독립 운동을 시작하면서 양측 간 충돌도 빈번해졌다. 이때 결성된 ‘잠무 카슈미르 해방전선(JKLF)’은 파키스탄의 지원 아래 테러전을 시작했다. 인도군은 이들과 이슬람 주민을 상대로 무자비한 보복을 자행했다. 2007년 12월 인도 국회의사당 폭탄테러도 JKLF 소행으로 알려져 있다.

안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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