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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비정규직·무기계약직 '주홍글씨'에 운다

입력 : 2009-08-28 13:04:00 수정 : 2016-01-13 10: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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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하나은행 '최악'…악순환 구조 반복

 

금융권, 말뿐인 모범적 고용모델
비정규직-계약만료 직원 퇴출 후 신규채용 악순환
무기계약직-쥐꼬리월급·복지 차별 하소연 조차 못해

[이코노미세계]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범적인 노사문화가 예상됐던 금융권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 은행이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계약기간을 무기한 보장하는) 전환에 적극적이긴 하지만 해고를 결정한 곳이 많아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일부 해고자들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는 현실에 대해 “폐기처분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특히 노사 양측이 확실하게 정규직 전환여부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어 계약기간 만료자들은 하루하루 불안한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고용 전환(정규직 혹은 무기계약직)이 된 직원들의 경우도 처우면에서 기존 정규직 직원들에 비해 차별을 받고 있어 ‘반쪽짜리, 또는 짝퉁 정규직’ 이란 말까지 나돌고 있다. 금융권 비정규직의 실상을 취재했다. 

은행권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일찌감치 비정규직(파트타이머, 용역청경, 기사, 촉탁, 계약직 직원 등 포함)을 교체 고용하는 대신 노사 합의로 정규직 전환방식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비정규직법 개정 취지에 부합하는 모범적 고용안정 사례로 알려져 왔다.

◆지난 2년간 2만여명 고용 전환=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 7월2일, 18개 은행이 지난 2년 동안 전체 3만8000명의 비정규직 중 2만 여명을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고 발표했다.이 자료에 따르면 2007년 6월 비정규직법 시행일부터 올해 6월까지 6862명이 정규직, 1만3817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추산된다.

은행권 비정규직 전환 유형은 정규직 신입직원 채용, 하위직급 신설, 직군제 도입에 따른 정규직 전환과 무기계약직 전환 등 4가지로 나뉜다. 신입직원 채용은 시험을 통해 정규직 전환되는 것으로 신입사원 선발과 동일하다. 하위직급 신설은 기존 은행에 존재하던 6개 직급을 늘려 비정규직을 모두 7급 직위로 흡수하는 방식으로 부산(683명), 대구(650명), 경남(580명) 은행이 그 예다. 별도직군제는 직군을 신설해 제한된 업무만 수행하는 방식으로 우리은행이 2009년 6월말까지 3076명을 전환시켰다.

한편 무기계약직은 1년 단위 계약기간을 무기한 변경한 것으로 1년 단위 평가해고는 제한하지만 육아휴직 등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업무수행은 비정규직과 같고, 2009년 7월1일 이후 2년 만기가 도래하는 직원에 대해 매달 자동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정규직에 비해 임금 인상폭, 학자금 대출 등에서 복지혜택 차이가 크다. 이 제도는 대부분 은행이 도입한 방식으로 2009년 6월 말까지 KB국민은행(6559명)을 비롯한 12개 은행에서 1만3817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현재 법 유예논란으로 은행권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전환과정이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금산노조 관계자는 당초 예정대로라면 무기계약직 등으로 비정규직들을 자동 전환했겠지만, 정치권의 비정규직법 논란으로 인해 법처리를 지켜보자 는 눈치 보기가 연출돼 고용전환에 적극적이던 사업장들마저 대책 마련에 급제동이 걸린 상황 이라고 지적했다.

농협·하나은행 최악의 구조조정= 은행권 비정규직 문제에서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곳은 농협중앙회와 하나은행이다. 이들 은행의 경우 대안 마련에 가장 소극적이며,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현재 개별 계약 만료일에 따라 퇴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농협중앙회 비정규직 김모씨는 2004년 6월15일 고용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했다. 김씨의 경우 농협중앙회의 고용 연한제 5년 이란 자체규정에 의해 최소 2009년 6월14일까지만 일자리가 보장된 상태였지만, 2007년 7월1일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이 시점부터 계약기간을 시작하는 것으로 근로계약서를 갱신했다.

이에 따라 김씨의 계약 종료일은 기존 근로계약기간 연장 시점(2008년 6월 15일)에서 2년을 초과한 시점인 2010년 6월14일이 된다. 따라서 김씨는 비정규직법이 예정대로 시행된다면 법안에서 정한 2년 이상 비정규직 고용행위 유지 시 정규직으로 본다 내용에 따라 비정규직 2년 11개월째가 되는 2010년 6월14일에는 정규직 전환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농협노사가 주장하는 계약종료 시점              출처 : 사무연대 노동조합 농협중앙회
하지만 농협중앙회는 2007년 7월1일 갱신한 근로계약이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기간산정에 포함하지 않는다며 고용연한제 5년(2009.6.14) 과 비정규직법 2년(2010.6.14) 중 먼저 도래하는 종료시점(2009.6.14)에 김씨를 해고한다고 통지했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6월4일, 23일 비정규직 인력운용 관련알림 을 통해 비정규직 고용은 2년을 초과할 수 없으니 만기 비정규직원들을 해고하라고 일선 영업점과 사무소에 지시했다. 이에 대해 사무연대노조 농협중앙회 비정규지부 배삼영 지부장은 "농협중앙회가 법을 자신들이 유리하게 해석, 정규직 전환의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고 비판했다.

농협중앙회 전체 직원은 2만 여명, 이중 비정규직은5500명으로 1200여개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 중 3000명 이상이 2년 이상 장기 근무한 비정규직들이며, 이들의 임금 실 수령액은 80만~85만원으로 상여금, 보너스 등을 합한 연봉은 1800만원 수준이다.

한편 지난 7월1일 열린 비정규직 고용 안정관련 농협중앙지부 노조 기자회견장에서 사측은 경비를 동원해 사무연대노조 위원장과 농협중앙회지부 지부장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 붓고 노조 사무실에 들어가려는 조합원들의 출입을 방해하고 간부를 폭행,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하나은행도 상황이 다르진 않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홈페이지에는 하나은행 비정규직(빠른텔러창구직,시급 8000원, 8시간 근무)들의 하소연 글을 쉽게 접할수 있다. '제발 귀를 기울여 주세요' 라는 제목의 작성자는 "우리도 같이 일하는 직원이다" 며 "타행은 그래도 남아 있는 비정규직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중략). 스스로가 너무 비참하다" 고 한탄했다.

아이디 '푸념하나' 는 "시급 8000원제인 비정규직은 아침회의나 눈치 때문에 시급에 포함되지 않지만 한 두시간 일찍 출근한다" 며 "고생만하고 사용기간이 끝나면 폐기처분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는 글을 남겼다. 

익명으로 전화인터뷰에 응한 하나은행 비정규직원은 "계약기간 만료시점이 되도 재계약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며 "하지만 운이 좋아 무기계약직이 된다해도 이런 대우를 받으며 5년, 10년을 일할 바에야 퇴직이 낫다" 며 무기계약직 전환조차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부분의 비정규직들은 무기계약직 전환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은행은 지난 7월 12일, 27일 빠른텔러(시급 8000원, 하루 8시간 근무, 1년계약)와 피크텔러직(시급 8000원, 하루 4시간 근무, 3개월, 6개월, 1년 계약) 채용을 했다. 근속을 바라는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동시에 이를 대체할 신규채용이 진행되는 비도덕적 행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7월 비정규직 법 유예로 법의 향방을 알 수 없는 시점의 계약만료자에 대해서만 재계약 언급사항이 늦어졌지만 5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며 "지금까지 2400여명가량을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 해왔다" 고 밝혔다. 그는 또 "7월에 논란이 됐던 비정규직 이슈를 왜 이제 다시 꺼내느냐" 며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용 전환돼도 ‘처우는 비정규직’= 외환은행은 2007년 전체 비정규직 1500명 중 1000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후 자동 전환제도를 분명히 하지 않아 남은 비정규직들의 진로는 불명확한 상황이다. 외환은행 노조관계자는 "8월까지 계약이 종료되는 비정규직자의 경우 1차 협상으로 고과기준 미달자를 제외한 모두가 무기계약 하기로 합의했다" 며 "그러나 문제는 계약시점이 9월 이후 도래하는 500여명 가량은 사측과 협상 중이어서 진로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이라고 우려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창구계약직과 본점 계약직 등 2007년 당시 비정규직이 1000여명에 달했으나 올해 4월 201명과 6월 222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올해말까지 계약이 만료되는 비정규직들을 계약 시기를 앞당겨 선계약 체결했다" 고 밝혔지만 이후 2년 만기가 도래하는 나머지 1200여명가량의 비정규직에 대해선 자동전환제도가 확정되지 않아 향방이 묘연한 실정이다.

한편 우리은행은 2007년 전담텔러 등 비정규직 3070명을 제한된 업무를 수행하는 별도직군을 만들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파격적 인사정책으로 시장의 관심을 모았다. 우리은행은 당시 정규직 모범 전환 사례로 꼽혀 축하행사까지 열었다.

그러나 우리은행 역시 실질적인 정규직 전환이라기보다는 고용은 보장하지만 임금과 복지 등 처우 면에서 정규직과 다른 기준을 갖고 있어 '짝퉁 정규직' 이란 지적이다. 현재 우리은행은 경비와 청소 등 업무에만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나머지는 별도직군제로 전환하고 있다.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유길상 교수는 우리은행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우리은행 정규직전환 사례는 임금과 승진에서의 차별은 여전한 '반쪽짜리 정규직' 으로 비판과 차별을 고착화시키는 차별직군제" 라고 지적했다.


은행권 비정규직들 “국민은행만 같으면…”=반면 비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정규직보다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은행도 있다.

국민은행 비정규직들의 경우 급여와 복지에서 정규직과 동일하다. 무기계약 전환도 확실하고 노조가입도 된다. 국민은행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이모(28·여)씨는 "연봉도 일반기업에 비해 좋고(연 3400만원) 육아휴직이나 성과급도 보장해줘 정규직전환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며 "오히려 정규직으로 전환해 실적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 고 말했다. 

또 회식에서 119제도가 있는데 "한자리에서 한 가지 술만 먹고 9시전에 헤어지는게 방침으로 내려와 개인 시간을 존중해 주는 등 직원만족도도 높은 편" 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노동조합 총연맹 정승희 부대변인은 "비정규직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인건비 상승에 따른 부담 때문에 고용만 보장해주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지만 해고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피할수 있는데다 해결할 시간은 벌 수 있다" 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시행시기를 유예하되 정규직 전환지원을 확대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비정규직법의 취지가 고용안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규직 전환비용을 보조해주되 최근 경기 상황을 고려해서 시행시기를 유예하는 게 적절하다는 것이다.

전지현 기자 gee105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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