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투기세력 좌시않겠다” 경고 안먹혀
전문가 “외환시장 작아 변동성 취약”지적
원·달러 환율이 다시 1500원대를 돌파하며 11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자 당국의 외환 관리 정책을 둘러싼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 당국은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매년 외환보유액을 대폭 늘려 가며 비상사태에 대비했지만 정작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환율 급등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 외환 관리 정책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외환보유액 10배 늘었지만 원화 가치는 급락=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2017억달러로 1997년 말(204억달러)과 비교하면 10배나 증가했다.
1997년 당시 함께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다른 아시아 국가 3곳 중 태국(1110억달러·이하 2008년 12월 말 기준)과 비교하면 두 배 규모이고 인도네시아(516억달러), 필리핀(375억달러)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외환보유액을 쌓아 놓았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중국(1조9460억달러), 일본(1조306억달러), 러시아(4271억달러), 대만(2917억달러), 인도(2477억달러)에 이어 세계 6위를 기록 중이다.
외환보유액이 많을수록 국제적인 금융위기에 대처할 능력이 뛰어나야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나라는 올 들어 통화가치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폭락하고 있다. 미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24일 현재 지난해 말 대비 16.9%나 폭락한 상황이다. 필리핀은 통화 절하율이 -1.6%, 태국도 -2.0%에 불과하다. 비교적 통화가치 하락폭이 큰 인도네시아도 -8.1% 수준이고 국가 부도가 난 아이슬란드는 통화가치가 오히려 5.6%나 절상됐다.
◆외환당국 그동안 뭐했나=많은 외환보유액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치솟자 외환 당국의 정책이 실패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환율 폭등과 관련해 투기세력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환율 급등세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환율은 지난 10일 이명박정부 2기 경제팀 출범 이후에만 135.3원이나 올랐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처럼 세계 6위의 외환보유액에도 불구하고 환율 급등을 당국이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 외환시장이 경제규모에 비해 너무 작아 변동성에 취약하다는 점을 꼽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우리나라의 외환시장은 현물환 기준으로 하루 100억달러 안팎이었는데 최근 하루 25억달러로 수준으로 급감한 상태다. 이 때문에 외환시장은 환투기나 실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환시장을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하루 거래량을 100억달러 이상으로 키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외환시장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부작용이 큰 만큼 미세 조정 외에는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된 의견이다.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경제조사실장은 “당장 통화 스와프의 만기를 연장하고 규모를 확대해서 시장에 안정감을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경상수지 흑자를 늘리기 위해 수출금융 지원을 강화하는 조치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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